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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Jul 26. 2021

종말보다 진실을

마이클 셸런버거,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21세기 종말의 기사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종말에 매혹된다. 비록 코로나19라는 팬데믹에 시달리고 있긴 하지만 기근, 핵과 냉전, 전염병과 같은 위기를 나름 잘 극복해 온 인류의 미래를 가장 위협하는 종말의 기사는 단연 기후변화이다. 특히 전 지구에 몰아닥친 가뭄과 폭우, 폭염에 휩싸인 올해 여름을 보내며 미래세대의 생존을 걱정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뜨거워진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개인이라면 소비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며 종이 빨대와 텀블러를 쓰는 것에서 시작해서, 더 적극적으로는 육류 소비를 줄이고 비건 식단을 알아볼 수도 있고, 친환경 전기차를 구매할 수도 있다. 국가는 자발적으로든, 탄소 배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압력에 못 이겨서이든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원전을 폐쇄시키는 에너지 전환 정책의 실시에 앞장설 것이다. 


거짓된 종말의 예언자들


 하지만 이러한 지구를 구하려는 노력에 대해 2002년 청정에너지 전환 운동인 ‘뉴 아폴로 프로젝트’를 주도해 미국의 그린 뉴딜 정책의 토대를 마련한 환경, 에너지 정책 전문가이자 2008년 타임지가 선정한 ‘환경 영웅’ 마이클 셸런버거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첫째, 환경종말론자들이 외치는 “2050 거주불능 지구”와 같은 시나리오는 극단적이고 반과학적인 종말론에 불과하다. 둘째, 에너지 효율과 밀도가 떨어지는 신재생 에너지의 활용은 오히려 기후변화를 악화시킬 뿐이다. 셋째, 선진국들은 환경을 무기로 저개발국들의 발전을 가로막는 ‘환경식민주의’의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세계의 ‘지속가능한 가난’ 상태를 고착시키려 한다. 저자는 극단적인 환경운동의 기반에는 인류 역사와 문명에 대한 부정적 관점인 멜서스주의가 깃들어 있으며, 멜서스주의를 신봉하는 과학자, 활동가, 언론인들이 ‘환경이라는 거짓 신을 유사 종교로 믿는 잃어버린 영혼’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자연을 거스르는 환경운동


 저자는 다양한 맥락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고정관념에 균열을 가하고 환경운동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데, 아마존 산림을 보호하려는 규제가 오히려 경작과 산림 개발을 촉진하고, 기후 변화 대응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채식주의는 혐오라는 감정적 반발에서 비롯된 도덕적 오만을 내포하고 있으며, 저개발국의 저숙련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서 오히려 비윤리적으로 여겨지는 다국적 기업의 제품을 소비해야 하고, 에너지밀도를 높이고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통해 오히려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다는 등의 주류 환경주의에 대한 비판 내용은 자못 충격적이다. 특히 신재생에너지는 “간헐적 에너지라서 그것을 뒷받침해 줄 같은 용량의 발전 설비가 필요”하고, “에너지 밀도가 낮아서 더 많은 토지와 송전선, 발전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술적 해결이 불가능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과 같다는 7~9장의 내용은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정치적 논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한계


 파격적인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빼곡한 논거와 각주 목록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다음과 같은 의심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성장의 한계”란 없으며, 경제발전만이 가난과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기후와 같은 불확실한 복잡계에서 극단적인 위기(그린스완)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확률은 없을까? 환경운동가, 언론인,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 관여한 과학자들을 인류 문명에 혐오감을 가진 반휴머니스트로 매도하는 것은 인신공격의 오류가 아닐까?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사실, 주장, 논증이 “현재 이용 가능한 최고의 과학 지식”에 근거하고 있고, 자신은 주류 과학을 옹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의 문명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지구를 이해할만한 지식을 쌓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지옥으로 가는 길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것 중 일부는 좋은 의도에서 비롯된다.”(영화 <쥬라기 공원> 중)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선의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잘못된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면 설익은 선의는 세상을 더 뜨거운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해가며 요트를 끌고 스웨덴에서 뉴욕 유엔본부로 향한 그레타 툰베리의 사례처럼 말이다. 종말을 막는다는 확고한 신념을 쌓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구하는 진실을 찾기 시작하는 일이 이 책의 독서를 마친 독자의 몫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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