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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Jul 21. 2021

무례한 시대를 숙고하며 건너는 법

악셀하케, <무례한 시대를품위 있게건너는 법>

무례함이라는 전염병


2017년 독일에서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는 품위가 상실된 언행과 현상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대표적인 광란의 사례로 “인간적 품위가 결여된 한 남자가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지 못한 세상”을 든다. 비록 도널드 트럼프는 재선에 실패했지만 그가 해온 수많은 불쾌하거나 어이없는 언행들은 무례한 당당함으로 남아 우리 시대에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타인, 낯선 집단에 대한 증오와 혐오, 차별과 몰이해의 발언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 세상. 저자는 인간이 자기 아집과 부족주의의 함정에 빠져서 만들어낸 무례한 시대를 건너기 위해 ‘품위’라는 고루한 단어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품위의 일상성

     

저자가 말하는 품위 있는 삶이란 매우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노약자들을 위해 서서 가거나, 틈을 내서 아픈 친구를 방문하거나, 새치기하지 않거나, 장례식에 남아 유족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이 바로 품위이다. 큰 의미 없는 단순한 일들을 실천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품위가 없는 사람은 평범한 보통의 삶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거나 고통에 동참하지 않는다. 그리고 품위를 잃은 사회적 동물들이 모여 자신이 속한 사회를 무례함이 넘치는 세렝게티로 만든다. 전 미국 대통령은 그런 무례한 세렝게티의 알파메일 고릴라 같은 존재였으며, 그를 닮은 무례한 지도자들이 세계 곳곳에 등장한다. 포퓰리즘은 타인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는 무례함이 낳은 정치공학의 결과물이다. 

 

불안한 인간

    

그렇다면 오늘의 일상에서 품위가 사라져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IT 혁명 속에 사라져 가는 일자리, 소셜미디어가 촉발한 확증편향과 반향실 효과, 낯선 외국인에 대한 집단적 분노.. 이 모든 현상의 기반에는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평범한 인간은 확실성이 보장된 집단과 세계에 속하여 그 안에서 안정을 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불투명하고 통제되지 않는 미래 앞에 많은 이들은 “불안하고 무기력하며 방향성을 잃은 데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기분을 느낀다. 안전과 자아 존중감이 사라진 인간은 한낱 무리에서 떨어진 동물에 불과하다. 타인이 그저 내가 누려야 할 성공과 행복의 경쟁자로만 보이는,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서 인간은 두려움이란 단순한 감정을 쫓아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렵고 무례한 질주의 끝에는 약자를 혐오하거나, 낯선 이를 배척하는 자기 중심주의와 부족주의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무례함에 빠진 동물


품위를 잃어가며 우리 사회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인간들의 반문명적인 질주를 어떻게 멈출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주변 사람들의 악하고 검은 마음을 엿보지 말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목표를 향해 너만의 길을 걸어가라.”)와 알베르 카뮈(“부조리한 운명에 대항하여 싸우려면 사람들이 연대 의식을 되찾아야 한다.”),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며 타인의 상황과 생각에 감정을 이입할 자유”)의 저작을 찾으며 우리 시대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하고, 모두가 사회 속에서 각자의 생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끼며 지금까지 문명을 구축하여 왔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인간들이 공존하기 위해 타인에 대한 책임이라는 도덕성이 발현되어 문명을 지탱했다. 도덕이라는 지지대를 잃는 순간 문명은 혼란에 빠지고 인간은 무례함에 빠진 동물과 같은 자연 상태로 돌아가버리고 말 것이다.      


숙고하는 삶


그런 의미에서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은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지 않을까. 저자는 무례한 시대를 건너는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확실한 해법을 내려주지 않는다. 그 해법은 독자가 스스로 자아를 통제하고 타인과 연대하려는 숙고의 태도를 견지하며 자신의 일상 속에서 찾아갈 수밖에 없다. 존 롤스의 말처럼 같은 시대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란 “서로의 운명을 공유” 하고 있는 존재들이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평범한 인간들이 모여 차별, 배제, 혐오가 아닌 연대, 포용, 공존의 세상을 만든다. 


품위란 다른 이들과 기본적인 연대 의식을 느끼는 것이며,
우리 모두가 생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또한 삶에 대한 문제의식은 크든 작든 모두 동일하게 중요하며,
이를 일상의 모든 상황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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