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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Jul 15. 2021

어쩌겠나, 살아야지

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1. 인간이 두려워하는 미래, 망각하는 죽음    


인간은 불안한 존재이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위험 앞에서 공포를 느끼지만, 유독 인간은 상시적이고 일상적인 불안에 빠져 살아간다.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안 심리는 저성장 시대에서 안정적인 근로소득을 기대할 수 없는 많은 개인투자자들의 패닉 바잉 현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확실한 미래에 생존하기 위해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경제적 자유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강박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더욱 부와 성공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불안이 커지면서 ‘나는 반드시 죽는다’라는 자명한 진리는 오히려 망각되기 쉽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땅 한 뼘을 더 차지하기 위해 끝없이 달리다 자기 키만 한 구덩이에 묻히고 마는 탐욕스럽고 가련한 인간’은 불안한 21세기의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2. 인간이 집착하는 두 갈래 길    


무한한 죽음이 필연적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인간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유한한 삶에 집착한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매일 찾을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가족, 친구)과 감각적 쾌락(성욕, 식욕)을 충족시켜가며 스스로를 위로할 것이고,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은 남들이 쉽사리 이룰 수 없는 거대한 이상과 성공(신, 민족, 국가, 진리, 인권, IPO..)을 이루고자 분투할 것이다.    


순간에 머무는 감각적 쾌락과 성공의 느낌이 조금 더 오래 남아있는 이상의 성취, 어느 방향이든 인간이 도달하기란 쉽지 않다. 별 의미 없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하루의 일과 속에 행복의 파랑새는 자주 집 밖으로 날아가 버리고, 그런 하루가 반복되면서 거대한 꿈은 어느 순간 희미해진 이상향이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운 좋게 성공한 소수를 빼면 많은 이들이 별 이룬 것도 없이 후회의 한숨 속에 어느덧 문 앞에 찾아온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다.      


3. 인간의 끊임없는 자기기만     


왜 없음(비존재)이 아닌 있음(존재)인가? 차가운 영겁의 우주 속에 생명, 심지어 의식 있는 존재가 나타난 이유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라는 카뮈의 말처럼 고민을 해봐도, 부조리로 가득 찬 세계와 인생에서 굳이 살아야 할 이유와 가치 따위를 찾기는 힘들다. 그저 우연히 세상에 굴러 떨어지고, 계속 구르다가, 먼지로 사라질 뿐이다. 그 어떤 이상도, 성공도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에게 살아야 할 이유와 존재하는 목적을 제공해 줄 수는 없다.     


모리 교수는 “의미 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중략)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봉사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것에 헌신해야 하네.”라고 세상에 남아 있는(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을 격려한다.     


그렇지만 ‘죽기 전에 후회하지 말고 자기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라’는 모리 교수의 마지막 강의는 ‘마흔 되기 전에 경제적 자유를 얻고 퇴사하라’는 미션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모든 성공이 그러하듯이 인생의 소소한 행복과 의미를 찾아내는 성공도 아무나 쉽사리 성취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노후에 파산하지는 말아야지’라고 걱정하면서 쥐꼬리만 한 월급이나마 저축하고 투자하는 것처럼, “오늘이 내가 죽을, 바로 그날인가?”라고 물으며 일상의 행복과 의미를 찾으려는 것도 비록 잘 안될지라도 계속 시도해야 하는 인간의 일이다. 무의미한 죽음까지의 여정에서 그런 끊임없는 자기기만이 없으면 자살하지 않고 굳이 살아갈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인생이란 걸어가는 그림자, 가련한 배우처럼
무대 위에서 한동안 거들먹거리고 안달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것.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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