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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Nov 25. 2021

삶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우리 삶에 철학이 필요할 때가 있을까

1. 이터널스의 존재 이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신작 <이터널스>는 타노스의 핑거스냅 이후 지나치게 거대해진 이야기의 공간을 지탱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마블의 고심이 엿보이는 작품이다(솔직히 평범하다). 많은 히어로물의 빌런이 그렇듯이 이 영화에도 반전이 숨겨져 있는데, 이 설정 하나만큼은 꽤 흥미롭다(강 스포있습니다).


외계 종족 이터널스는 우주의 창조주 셸레스티얼 아리솀의 명에 따라 지난 수천 년 동안 데비안츠라는 악으로부터 지구 문명을 수호해 온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터널스는 지구에 지적 생명체인 인류가 생겨나고, 자신들이 인류를 데비안츠로부터 보호해 온 것이 모두 지적 생명체를 자양분으로 삼아 행성에서 새로운 셸레스티얼을 부화(emergence)시키려는 아리솀의 계획임을 알게 된다. 데비안츠나 이터널스나 인류나 모두 전능한 존재의 큰 그림을 구성하는 지극히 작은 퍼즐 조각이자 일종의 알고리즘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2. 알 수 없는 거대한 질문들


히어로물다운 황당한 설정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인류는 굳이 코믹스가 아니더라도 이런 장르의 이야기들을 오랫동안 믿어왔다. 고대 인도인들은 세상이 거대한 거북이 등딱지 위에 서 있는 네 마리 코끼리 등 위에 있는 반구체의 형태라고 생각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여신 누트가 온몸으로 편평한 대지를 에워싸고 있다고 믿었고, 고대 중국인들은 우주 거인 반고가 하늘과 땅을 가른 뒤 그의 몸이 세상 만물로 변했고 여신 여와가 흙을 재료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과학적 사고라고는 할 수 없었던 고대인들의 망상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현대의 우주론도 황당하기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태초에 ‘큰 꽝’이 있었고, 우주가 팽창하며 수소 원자가 나타났으며, 수소가 핵융합을 거쳐 별이 생기고, 별이 초신성 되어 폭발하면서 다른 무거운 원자가 생기고... 과학적 관측을 통하여 이런 가설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믿기는 하지만, 과학은 여전히 우주가 왜 생겼는지, 무엇이 우주를 구성하는지, 우주 팽창의 결말은 무엇인지 등 수많은 질문의 답을 알지 못한다.


3. 갈 곳 없는 철학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종교가 있기 이전에도 인류는 호기심이 가득했고 항상 질문을 던졌다. 500만 년 전 나무 위에서 처음 지상으로 내려온 라미두스 원인도 사냥과 번식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문득 자신의 죽음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렇게 인류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던졌던 질문들이 모여 철학이 되었고, 철학은 오랫동안 ‘만학(萬學)의 왕’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하지만 오늘날 철학은 영지를 모두 잃고 광야를 떠도는 리어 왕 같은 신세다. 합리적 이성과 관측으로 무장한 과학에게 ‘진리’의 영역을 빼앗기고, 자본주의 체제 속 경쟁에서 살아남기 급급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철학이란 한가로운 자들의 지적 유희로 여겨진다. 결국 오늘날 출판시장에서 철학이 설자리는 과거의 철학자들이 던진 심오한 질문들이 알고 보면 당신의 현재 삶에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자기 계발서와 같은 영역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유명론이니 실재론이니 하는 전통적인 철학 체계나 초등학생에게 상대성이론을 설명하기보다 이해하기 더 어려운 현대 분석철학 등은 이런 자기 계발적 철학에 등장할 이유가 없다. 오늘을 살아가는 철학자들이 아니라 옛날 옛적으로 돌아가 좋고, 올바르고, 행복한 삶을 고민했던 고대 그리스나 헬레니즘 철학자들을 다룬 책들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4. 철학 하는 자세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오늘날 철학에 대해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책이다. 삶을 살아내는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필체로 전달한다(거기다 김영하라는 국내 최고 인기 작가의 홍보까지 곁들여졌다). 하지만 쉽게 쓴 철학 책을 쉽게 읽는 데에만 그친다면 읽되 한 줄도 실천하지 않는 자기 계발서 독서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 될 것이다. 부디 이 책을 통해 철학이란 렌즈를 끼었으니, 돈과 성공의 매트릭스에 갇혀 바라본 세상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전혀 모르고 지냈던 나 자신의 감정과도 조금 더 친숙해지고, 스쳐 지나가던 주위의 작은 것들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받아들이도록 시도해보려 한다.


다시 마블로 돌아가면, 이터널스는 자신들이 오로지 셀레스티얼의 부화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새로운 의지와 소명을 가지고 수천 년 동안 지켜온 인류를 다시 구하는 선택을 한다.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세상 속에 던져진 우리이지만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삶의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 그런 시지프스 같은 이터널스의 선택이 결국 철학 하는 자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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