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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Nov 29. 2021

다른 세상을 상상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재커리 D. 카터

   


1. 생각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


죽어서 이름을 남긴 사람은 많지만, 생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21년 인류는 어떤 생각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을까? 민주주의, 자유주의, 과학주의, 인본주의 등 여러 생각을 떠올려 볼 수 있겠지만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 가장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무래도 경제일 것이고, 경제학자 중에서도 케인스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없었다(적어도 30년 전이라면 마르크스를 꼽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사회주의는 잊힌 꿈이 되었다).     


혹자는 케인스 경제학 역시 미국으로 치면 루스벨트부터 닉슨에 이르기까지만 호황을 누리고 사라진 사조라고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케인스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자이자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확립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밀턴 프리드먼 역시 다음과 같이 시인한 바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우리 중에 케인스주의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케인스는 1차 대전의 후유증과 대공황으로 신음하던 세계 경제의 구원자였고, 금본위제를 역사의 유물로 만든 혁신가였으며, 그의 생각에 힘입어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은 2021년 코로나 팬데믹에 기꺼이 두려움 없이 유동성 공급을 퍼부을 수 있었다. 케인스 경제학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우리는 여전히 그의 시대를 살고 있다.      


2. 케인스, 고전파 경제학의 환상을 깨부수다


케인스주의를 간단히 정의하면, 다음과 같은 명제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의 효율성만으로는 완전 고용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
정부는 재정 지출을 통하여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완전 고용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케인스는 간명한 수식을 바탕으로 한 효율적인 시장의 자기 정화 능력을 믿었던 고전파 경제학의 환상을 깨부수었다. 과거 영국 재무부는 경기 둔화 속에서도 과거 대영제국의 영광을 쫓아 금본위제를 복귀시키고(그 결정을 한 당시 재무장관은 바로 윈스턴 처칠이었다), 국민들에게는 높은 실업률과 임금 하락에 대한 인내심을 요구하며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에 의해 결국에는 경기가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경기 사이클의 순환 동안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을 마냥 방치되어야 할까? 케인스는 불경기를 맞이하여 국가는 건전한 재정을 유지하여야 하고, 국민들은 근검절약(저축) 해야 한다는 당시의 경제학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죽게 될 것이다.”(<통화 개혁론> 중에서)   

  

케인스에게 고전파 경제학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은 “공급이 곧 수요를 창출한다.”라고 요약되는 세이의 법칙이었다. 세이의 법칙은 상품 생산은 노동자와 공급자가 생산된 모든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충분한 소득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한다.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사람들은 생산된 모든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품의 공급과잉이란 일어날 수 없다. 

     

무슨 궤변인가 싶지만, 이는 수요-공급 시장을 어느 정도 긴 시간 간격의 사이클로 바라보느냐의 문제이다. 물론 자본가들은 특정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총체적인 공급 과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잉 상품은 제때 소비가 되지 않을 경우 점차 가격이 떨어질 것이고, 공급 과잉은 사라질 것이다. 이런 세이의 법칙을 믿는 사람에게 장기 실업이나 불황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다 지나갈 일'에 불과했다.    

 

노동 시장도 마찬가지다. 고금리로 기업의 비용이 증가하거나 디플레이션으로 상품에 대한 수요가 줄면 기업은 임금을 삭감하는 방법으로 비용을 줄인다. 하이에크의 스승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물가가 하락하면 노동자들에게 이전만큼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임금 삭감이 근로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이 이러한 임금 삭감에 반대한다면 기업은 직원을 해고하거나 회사 문을 닫게 될 것이므로 노동조합의 존재가 높은 실업률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고전파 경제학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 고전파 경제학의 아름다운 세상에서 결코 있을 수 없었던 전 세계의 장기 불황은 현실로 나타났다. 그러한 현실을 바라보며 케인스는 1) 저축과 투자가 변동 금리를 통하여 자동적으로 연결되고, 2) 임금과 물가가 재화와 용역의 수요에 맞춰 가변적으로 정해진다는 본 고전파 경제학의 환상을 파헤쳤다. 먼저, 가계의 저축과 기업의 투자는 완전히 다른 이유와 목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절대 금리라는 단일한 변수를 통하여 조화롭게 연결될 수 없다. 가계 저축이 기업의 투자를 초과하면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기업은 종업원들을 해고함으로써 이에 대응한다. 그러면 아무도 신규 고용이나 생산 확대에 투자하지 않고, 소득이 줄어든 가계의 소비는 더욱 위축되는 저축과 투자의 (나쁜) 균형이 이루어지고, 실업이 고착화되는 정체 상태가 지속된다. 이러한 케인스의 분석이 바로 저축도, 투자도 없이 경기 침체와 공황이 지속되던 1930년대의 세계 경제였다.  

    

이러한 불황에 대한 케인스의 해법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이야기이다. 가계와 기업의 수요가 없다면 그 수요를 만들면 된다는 것(그렇다. '소득주도성장'). 고용이 증가하면 소득이 증가하고,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증가한다. 그 수요는 누가 만들까? 그런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정부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케인스는 ‘재무부가 낡은 가방에 돈을 가득 담아 쓰레기로 가득 찬 폐광 여러 곳에 묻고 기업들이 마음대로 파가도록 놔둔다고 하자. 기업들이 돈을 파가기 위해 사람들을 고용하면서 실업은 사라지고, 사회 전체의 실질 소득과 부가 커진다. 그러나 돈을 파묻고 파가는 것보다 주택을 건설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비유를 들면서, 적극적인 정부의 재정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케인스의 충고는 미국으로 건너가 보이지 않는 손 따위를 믿지 않고 직접 경기 순환과 싸우는 큰 정부를 탄생시켰다. 경기가 둔화되면, 일시적인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 삭감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킨다. 경기가 과열되면, 지출을 줄이고 세금과 금리를 올린다. 정부 예산은 이런 과정을 통해 다시 균형을 찾는다. 허상의 시장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정부가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을 보장하는 ‘재정 통제 fiscal control’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3. 자본주의는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이후 역사가 알려주듯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전성기를 이끌며 승승장구하던 케인스주의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 앞에서 힘을 잃고,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자리를 내준다. 하지만 케인스주의는 2008년 금융위기와 2021년 코로나 팬데믹 등의 경제 위기를 겪으며 양적 완화 정책으로 화려한 복귀를 알렸고, 주권 국가가 자국 통화로 지출을 행하는데 세수나 균형 재정은 제약이 되지 않으며, 국가는 모든 국민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최종고용자가 되어야 한다는 현대통화이론(MMT)으로도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케인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저널리스트 재커리 D. 카터의 평전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전쟁의 참화와 팽배한 제국주의가 세계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던 1920년대와 이어지는 대공황이라는 위기의 시절에 경제학이라는 생각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나간 한 사람의 삶을 상세하게 추적하는 책이다. 하지만 케인스의 소소한 개인사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시대의 역사를 모두 담으려는 의욕이 지나쳐 지나치게 두꺼운 책이 되어 버렸고,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독자들 중에 이 책을 완독 할 수 있을만한 의지를 갖춘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도 경제 위기가 다가올 때마다 언급되는 인물이자,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꿈을 가지고, 경제로 세계를 변혁시킨 사상가를 더 자세히 알아가고 싶다면 이 책은 매혹적인 탐구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현대적 자본주의가 단순히 삶의 기준을 유지할 뿐 아니라, 우리를 경제적 우려에서 해방해줄 경제적 천국으로 서서히 인도해주리라 믿어 왔다. 이제 우리는 그 자본주의가 정말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목적지로 우리를 이끌 수 있을지 의심을 품게 되었다. 참을만한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이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은 종착역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케인스의 말처럼, 현실의 자본주의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는 독자라면 다시 한번 케인스의 삶과 생각을 돌아보며 의심의 근거와 현실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을 탐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체인지 그라운드 <싱큐베이션> 11기 세 번째 도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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