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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Dec 09. 2021

참으로 어려운 그 마음

<주식하는 마음>, 홍진채


1. 2020년 말에 읽은 <주식하는 마음>


<주식하는 마음>은 2020년 10월 출간된 라쿤자산운용 홍진채 대표의 책이다. 저자의 주장을 정리해 보면 ‘투자에 실패할 수밖에 없게 진화된 우리 마음을 재설계하고, 투자의 원칙과 삶의 원칙을 통합하여, 현명한 투자자로 나아가는 합리적인 의사 결정의 메커니즘을 확립해 보자’는 것. 분명 여기저기 밑줄을 가득 치며 읽었던 좋은 책이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매우 안타깝게도 읽고 나서 저자의 조언을 실천한 부분이 거의 없었다. 뒤늦게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책에도 등장하는 제시 리버모어의 일화에 나오는 한 노인의 말, “알다시피, 지금은 강세장 아닌가!(You know, it’s a bull market!)”가 떠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이란 외부 충격으로 급격히 추락했던 증시가 막대한 유동성에 힘입어 한없이 가볍게 떠오르던 때. ‘4만 전자’가 ‘9만 전자’로 변하더니, 연말엔 반도체 빅사이클에 힘입어 ‘13만 전자’까지 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팽배했고, 2021년 1월 KOSPI 지수가 3000선을 돌파했다. 특별한 공부도, 초과 수익을 위한 별다른 노력을 할 필요도 없이 언론에 많이 노출되는 종목, 남들이 많이 사는 종목의 추세에 편승하기만 해도 쉽게 수익을 낼 수 있었던 ‘물수능’ 같은 장이었다.   



2. 2021년 말에 읽은 <주식하는 마음>


그리고 일 년 뒤. 주식 계좌의 상황은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사뭇 다르다. 2021년 한 해를 돌이켜보면 백신 보급이 급격하게 확대되면서 리오프닝, 가치주가 급부상하더니, 10년물 금리가 갑자기 널뛰기를 시작했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병목 현상은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고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으며, 위기 대응을 위해 급격히 불어난 부채 리스크를 낮추기 위한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이 가시화되었다. 불안한 매크로 환경 속에서 한국 시장의 지수는 박스권에 갇혀 정신없이 테마가 교체되는 종목 장세가 펼쳐지고 있는 반면, 미국 시장은 일시적 조정과 급격한 등락을 반복하면서도 연일 신고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유망 테마를 따라가려 하니 이미 늦고, 언젠가 돌아올 테마를 선점하려 하니 추세 하락하며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난도가 높은 시험 속에서 계좌 속 종목들은 점점 파란 불로 변해간다. 

  


3. 잊지 말아야 할 3가지 <주식하는 마음>


난도가 높은 시장을 만나고 보니, 일 년 전 읽어보고 강세장 속에서 바로 잊어버렸던 이 책의 조언들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투자를 하기 위해서라면 기본으로 갖춰야 할 습관과 사고방식이 가득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3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기록하기.   


의사결정을 기록하는 습관을 반드시 들여야 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록을 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과거의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현재를 평가해 잘못된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회전율 높은 매매를 반복한다면 문어나 침팬지가 주식 투자를 하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둘째, ‘반증 가능성’ 있는 질문하기.   


주식 책을 읽다가 칼 포퍼를 만날 줄은 몰랐다. 주식 시장은 가장 대표적인 복잡적응계(서로 연결된 다양한 요소에 의해 완성되므로 ‘복잡’하고, 경험에서 배우고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적응’적이라는 의미의 조직이나 구조, 시스템)의 성격을 띤다. 변수가 너무 많고, 어떤 변수가 있는지도 모르며, 각각의 행동 주체가 서로 영향을 받으며 의사 결정을 수정한다. 그 결과 예상한 투자 시나리오는 정말 다양한 경로로 틀릴 수 있다. 어떤 명제가 틀릴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반증 가능성이고, 반증 가능성은 과학철학자 칼 포퍼가 제시한 과학적 사고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의심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세계를 다루는 데 있어, '내가 어떤 이유로 틀렸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이후의 성공 확률을 개선하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한 원칙이 된다.   


셋째, 투자와 인생의 바벨 전략.   


바벨 전략은 가치주와 성장주를 섞는 것과 같은 포트폴리오 배분 차원의 리스크 관리로만 여겼었다. 그런데 저자는 나심 탈레브를 인용하면서 바벨 전략을 복잡계에서 좋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확률적 사고의 영역으로 설명한다. 투자에서 바벨 전략이란, 극단적으로 위험을 회피하는 선택과 극단적으로 위험을 추구하는 선택을 병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극단적인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를 매입하고, 극단적인 위험자산으로 옵션을 매수하는 전략을 들 수 있다(볼록 함수에서 옵션의 기댓값은 이론상 무한대에 수렴할 수 있다).  

 

그런데 확률분포 추론은 투자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해한 행위를 피하는 것만으로,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바로 오목 함수의 시스템이다. 하지만 지금 배워놓은 지식과 기술이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는 교육이나, 경비나 시간은 고정 비용인 반면 만족도의 상한은 상당히 높을 수 있는 여행은 함수가 볼록한 시스템이다. 만일 당신의 삶이 볼록 함수의 시스템처럼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다면 여가를 최대한 활용하여 업사이드가 큰 취미 생활이나 부업, 창업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리고 자본시장은 주식투자를 통하여 내가 직접 할 수 없는 리스크 높은 창업이나 혁신가들과 동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주식 투자는 위험 자산 베팅이 아니라 삶의 불확실성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훌륭한 전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좌표 평면에서 시각화해보면 이렇다. 좌 - 볼록 / 우 - 오목 © 나무위키


4. 2022년의 <주식하는 마음>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려운 장 속에서도 성공적인 투자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가짐이 잡힐 듯 말 듯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완독 한 바로 다음 날, 급격하게 빠졌던 장이 다시 폭등을 시작한다. 다시 찾아온 강세장인가. 아니면 더 큰 추락을 예고하는 데드 캣 바운스인가. 뭔지는 모르겠다만 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든 욕망에 못 이겨 하릴없이 매수-매도 버튼을 누른다. '주식하는 마음'이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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