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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Dec 16. 2021

자본주의는 정말 바뀔 수 있을까

<자본주의 대전환>, 리베카 헨더슨


1. Disaster is coming.


겨울이 아니라 재난이 다가오고 있다. 정말 전기차와 친환경 발전으로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있을까? 에코백과 텀블러를 들고나가는 것은 정말 지구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 아니면 아무 힘도 없는 개인들에게 죄책감과 책임감만 던져주는 일일까? 친환경 성장, 지속 가능한 발전은 멸망으로 가는 길을 가리는 위선적인 희망에 불과할까?


기후 위기라는 전대미문의 리스크 앞에서 자본은 고민에 빠져있다. 혹자는 자본주의의 한계와 종말을 이야기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끝없이 순환되는 소비를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의 동력을 멈추기란 아마도 불가능해 보인다. 대신, 지구와 자본 사이 선택의 기로에서 서있는 인류에게 자본은 ESG라는 새로운 변화의 동력을 제시한다.



2. 다시 상상해 보는 자본주의


레베카 헨더슨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강의를 책으로 펴낸 <자본주의 대전환>의 영어 원제는 'Reimagining Capitalism in a World on Fire'. 저자는 '통제받지 않는 자유 시장'으로 상징되는 현실 자본주의를 1) 공유가치, 2) 목적 지향성, 3) 재무 재설계, 4) 자율 규제, 5) 포용 사회 건설의 요소로 다시 정의하고, 인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저자의 주장을 조금 더 정리해 보면, 1) 주주의 단기적인 이익만이 아닌 모든 이해관계자의 장기적인 이익을 고려하여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고, 2) 기업은 이익 증가만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새로운 목적을 확립해야 하며, 3) 올바른 투자를 판별하고 장려하기 위해 기존의 재무제표를 재설계하고, 4) 생태적·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는 무임승차자들을 제재할 자율 협력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며, 5) 정부는 포용적인 제도와 민주주의의 확립으로 이를 뒷받침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기업-정부 차원을 넘나드는 저자의 논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과 희망에 가득 차 있으며, 실제 현장에서 기업들의 변화를 이끌고 참여한 실무 경험 사례들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책의 마지막, 필연적인 죽음을 앞둔 인간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제대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은 경영 서적의 영역을 넘어선 큰 울림까지 준다.


하지만 인생이던 세상일이던 어떻게 뜻한 바대로 올바르게 움직일 수 있겠는가. ESG와 새로운 자본주의에 관한 풍성한 논의를 담은 이 책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을 덧붙여 본다.



3. 리스크 회피를 위한 ESG


아동 노동 착취 논란이 있었던 나이키나 팜유 생산으로 인한 산림 파괴가 논란이 된 유니레버의 공급망 문제는 기업 내부의 경영개선 노력이 아닌 외부에서 불거진 이슈에 대응한 사례였다. ESG는 경제적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ESG는 환경, 사회 노동, 기업 지배 구조 등의 정성적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기업의 경영 리스크가 줄어들었다는 결과론적인 판단이지, 기업(=자본)이 도덕적 의무를 부담하면서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4. 불확실한 기준과 신뢰할 수 없는 평가


자본시장 개방 이후 국가 간 상이한 회계기준을 통일하자는 취지로 IASB(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설립된 것이 지난 2001년의 일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IFRS는 국내에서 2011년에야 비로소 전면 적용되었다. 그리고 불과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신뢰성 있는 ESG 평가에 관한 논의가 분분하다(지난 2021.12.1. 산업통상자원부는 'K-ESG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했다).


각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ESG 요소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어느 국가에서는 천연가스가, 다른 국가에서는 원자력이 탄소 중립 목표를 더 효율적으로 이룰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미국에는 첨예한 인종 간 불평등 문제가 우리나라에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무노조 경영을 하는 테슬라는 환경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 노동 분야에서는 같은 평가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보편타당하게 통용될 수 있는 일관된 ESG 평가가 가능한 것일까? 지역별로 다른 개별적 지표가 글로벌하게는 단일한 등급으로 병합되었을 때 ESG 평가의 공적 정확성과 신뢰도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5. 답은 기업의 돈과 효율에 있다


ESG는 결국 욕망으로 추동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가면일 뿐 자본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ESG 경영이든 임팩트 투자이든 기업은 이익을, 투자자는 시장 수익률 이상을 추구한다. 기업은 환경, 사회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소극적으로는 정치적- 사회적 압박에서 나오는 외부 리스크를 회피하고, 적극적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내는 것이지, "땅 파서 장사하는 기업"이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ESG 열풍은 한편으로는 공공성을 추구하는 정부의 능력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팬데믹이 국가의 귀환을 알렸다고는 하지만 다국적 기업은 위기 속에서 더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팬데믹이 언젠가 썰물처럼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거대한 국가채무만큼이나 급격하게 증가된 플랫폼 기업들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제도를 설계하고 재정정책을 수행하는 정부의 역할에 한계가 존재한다면,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기업 스스로 환경을 보전하고 사업 구조를 바꾸도록 유도하는 시장의 논리를 재설계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ESG라는 자본주의의 자구책으로 과연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마도 2100년쯤 '그린 스완'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자본은 안도하며 자가 증식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혹여나 지구의 생태 시스템이 붕괴된다면? 자본은 살고 싶어도 더 이상 움직일 터전이 없다. 숙주를 다 죽여버린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신세처럼 말이다.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결과를 내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부디 지구와 인류를 삼켜버리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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