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나를 짓는 일 #02
매일 25분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25분이 주어진다면. 하루에 나에게 추가로 주어지는 25분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하루를 재편해서 25분이 주어지는 것일까. 건축사사무소 직원이라는 직업상 하루하루를 똑같은 삶의 방식으로 운영할 자유가 별로 없는 터라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잠을 자거나 좋아하는 영상을 보는 등 나를 쉬게 할 수 있는 데에 쓸 것이다. 하지만 그 25분 동안은 내가 아무런 피로도 느끼지 않고 무적인 상태라고 가정하면 무엇을 하게 될까? 옥상에 캠핑의자를 끌고 올라가 그다지 생활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재미있는 책을 읽고, 쌀쌀한 날엔 목욕을 하고, 자주 하지 못하는 방 청소를 하고, 체력을 관리하기 위한 운동 이외에 정신 수양과 개인의 성취감을 위한 무술이나 테니스, 수영 같은 운동을 하고, 엄마가 마트에서 사다 놓는 반찬 말고 좀 그럴듯하거나 평소에 해볼 생각을 못 했던 요리를 해먹고, 집 근처에는 없지만 조금 산책하면 갈 수 있는 거리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린다든지,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 밑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듣다 온다든지, 보다 나은 먹고 살 길을 강구하며 코딩을 공부한다든지, 건축의 지덕체를 목표로 손 드로잉을 배워본다든지, 밤에는 칠 수 없으니 굳어만 가고 있는 손가락을 풀고 피아노를 친다든지, 새로운 악기를 배워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 25분의 시간이란 그런 뜻이었구나. 내가 하고 싶어 보이는 것들은 위에 적은 것과 같이 많지만, 그것들은 전부 지금도 조금만 노력하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서양에선 많이 쓴다는 뽀모도로 공부법에 의하면 인간은 25분 집중하고 5분 휴식할 때 가장 효율이 좋다고 한다. 사람은 그만큼 짧은 시간에도 집중할 수 있다는 거다. 나의 하루에는 비어있는 25분이 얼마든지 있다. 잠들기 전에 넷플릭스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날 수도 있고 꾸준히 되지는 못하겠지만 6시 칼퇴하는 날도 제법 있고 회사에서도 일이 바쁘지 않은 날은 25분 동안 딴짓을 한다고 눈치 주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25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보고 실천으로 옮기지 않은 것은 순전히 나의 게으름 때문이다. 게을렀다고 할 순 없지만 부지런하지도 않았던 대학과 대학원 생활 이후를 생각해 보면 너무 도전하는 것이 없었다. 위에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내가 평생 안 할 것 같았던 걸 해보자는 생각에 여자친구와 자이브 라틴댄스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재밌는 데다 운동도 꽤 돼서 관두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일주일 하루 저녁을 투자하는 것뿐임에도 가끔은 학원에 도착하기까지가 힘들기도 했지만 차차 안정이 되어 또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이번엔 조금 더 실생활에 도움이 되고 평소에 좀 생각하던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회사에서 현상설계공모에 제출하는 설계 설명서에 들어갈 짧은 문장글을 쓰는 데에 제법 애를 먹었다. 거기서 사용하는 언어들과 실생활 언어가 괴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 간격을 좁히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또 불안정한 정신을 일기를 쓰면서 정돈해 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종종 들었지만 막상 꾸준히 쓰는 데에는 늘 실패했다. 글을 쓰는 데에 익숙해지고자 하루 10분 생각하는 글쓰기를 결심했고 이제 세 달째 진행 중이다.
세 달은 해야 습관이 될 수 있다는 운영자님의 따뜻한 상술에 넘어가(농담) 세 달째가 되었다. 처음에는 재미로 즐기며 했지만 쉽게 질리기도 하고 역시나 게으른 탓에 가끔은 쓰기 싫을 때도 있다. 이제는 세 달은 할 줄 아는 인간이 되고 싶어서 오기로 버티고 있다. 물론 이제는 내가 글을 쓰는 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 감을 잡아가고 있어서 오늘 내가 얼마만큼 쓰고 싶은지를 계량하여 글의 분량을 조절하고 있다. 역시나 라틴 댄스를 추고 온 날에는 근무하랴 집중해서 춤 배우랴 활동량이 많다 보니 할 말이 많은 주제여도 글을 길게 쓰기 힘들어진다. 최근에는 글을 쓰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싶어졌다. 과감하게 갑자기 끝나는 글 같은 것도 써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끝!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말
분명 글쓰기 챌린지를 석 달을 했는데 세 달이면 습관이 된다는 챌린지 운영자님의 말처럼 습관이 되지는 못했지만 몸과 뇌에 글쓰던 흔적이 남아서인지 다시 브런치로 돌아왔으니 이것도 대단한 일이다.
이제는 삶에 제법 루틴이 생겨가고 있다. 아마도 삶의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조금 더 쉽게 습관들을 새로 세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9시 출근인 동거인과 템포를 맞추기 위해 같이 7시에 일어나서 동거인이 준비를 하는 동안 15분간 소위 카즈하 운동이라고 유행했던 것을 따라하고(꽤나 고강도), 씻고 동거인을 배웅한 뒤 계란이나 사과 같은 것을 주워먹는다. 그리고 나면 지금 이 글이든 따로 기획하고 있는 글이든 글쓰기를 하다가 1시간 조금 넘는 시간을 책을 읽으며 출근한다(지하철은 40분 정도). 칼퇴하는 경우 집에 와서 저녁을 준비하면서 간단한 정리를 하고 동거인이 돌아오면 같이 밥을 먹으며 간단한 영상을 본다. 그 후 글을 쓰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은 아직 조금 자유롭게 하려고 하고 있다. 10시면 동거인이 씻을 시간이기에 그때는 소파에서 책을 읽는다. 그리고 나도 씻고 잠이 든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이제는 처음 듣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이 많이 사용한다. 아마도 말 자체가 형용 모순이기 때문에 재밌기도 하고, 너무 겸손하지도 너무 거만하지도 너무 시대에 뒤쳐지지도 않기에 자신을 표현할 때 많이 쓰는 듯 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게으르거나 그냥 완벽주의자일 순 있어도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건 존재하기 힘들다. 게으르면 완벽을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없고 완벽을 지향하면 게으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를 뭐하러 길게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어렴풋한 말로 그럴 수 있다고 나를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25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게으름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완벽을 지향한다면 역시 25분 동안 게으름을 탈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데 시간을 쓸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두 번째 25분을 이용하고 있다. 오늘도 아침 루틴을 했고, 여전히 당장 뭘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면서 보내긴 하지만 그럼에도 치열한 근무 시간을 보내고, 저녁엔 오랜만에 건축학과로 전과해왔던 형을 만나 서로의 지나간 삶의 시간들을 되짚으며 미래를 이야기하느라 꽤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지만 그래도 25분 정도의 시간을 글을 쓰면서 머리속을 정리하는 데에 쓸 에너지는 있다. 온라인 회고모임에 참여한 어느 멤버는 글을 쓰는 시간을 거의 쉬는 시간 취급하셨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제는 아주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글에 완벽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 글은 당연히 완벽하지 않지만 어쨌든 '글을 쓰는 나'라는 완벽을 향해 가는 작은 부분을 행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게으름은 벗어나야 했다. 그걸 만년의(?) 내가 비로소 깨닫는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안내를 따라 떠돌다 우연히 만난 영상에서 어느 변호사님이 말한 '시작하고-보완하고-계속하고'라는 말이 자꾸 귀에 맴돈다. 그 말은 얼마나 간단하며 얼마나 지켜내기 힘든가. 그래도, 25분들을 모으고 모아서 60개의 이미 썼던 글이 시작되어 있다. 그리고 글쓰기 챌린지 네이버 밴드에서 개인 네이버 블로그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한 번, 그리고 브런치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보완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추가로 채워나갈 남은 오십 몇 개의 글들은 미래의 25분들로 채워 계속되어야 한다. 나는 꽤 게을렀고, 완벽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글을 썼으니 작가랍시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25분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