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인생이라는 건축 #02
좋은 대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의도하면 하루에 한 마디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것을 보면 대화는 일상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하는 행위다. 그것이 소소한 재미이든 일확천금이든 간에 우리는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대화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서 무언가를 항상 얻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대화를 하면 에너지를 주거나 받거나 주고받게 된다. 나는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를 좋은 대화라고 생각한다. 한쪽만 주고 한쪽은 받는 대화에는 배려와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 상대 또한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제하고 대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대화를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에는 무한정 긍정적이지 않은 진지함을 지닌 사람들이 나를 배려하고 사랑해준다고 느낀다. 아마도 내가 그런 성격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무한정 긍정적이지 않음을 우리가 다 알고 있음에도 이유 없이 무한정 긍정적인 사람은 어리석거나 다른 방식으로 도피하고 있는 것이니 경계해야 한다. 진지함은(웃기기 위한 진지한 태도를 포함하는 의미이므로 유머나 위트의 부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대화하고 함께하는 상대에 얼마나 열심인지가 일면에 드러나는 모습이니 상대가 내게 그러하다면 취하고 싶은 사람이 된다.
이렇게 나와 대화하는 사람들은 친구, 애인, 가족, 직장동료 정도이다. 기본적으로 의무감을 전제로 대화해야 하는 직장동료들과도 진지하게 대화할 때도 있는 것을 보면 특정 상황이나 그때그때의 노력이 좋은 대화를 만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좋은 사람과 하는 대화라면 어떤 형태의 것이어도 좋은 대화가 될 수 있다. 지치고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좋은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그것이 농담이든 술 마시고 풀어내는 어설픈 개똥철학이든 간에 무한정 긍정적인 사람의 위로나 진지하지 못한 사람의 번지르르한 궤변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좋지 못한 대화와 구별된다. 다시 말하면 대화는 역시 상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사람에 관한 것이기에 상황이나 맥락이 아니라 대상 그 자체이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좋은 대화를 하기 위한 큰 그림인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그리고 만나면 서로의 변화와 성장을 지속적으로 관심가지고 응원하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계속 만나게 될 친구들이 있다. 가까운 사이였어서 가끔 연락해서 보지만 그 가끔마다 너무 오래 지나버린 그들의 발자취를 쫓아가다가 보면 만남의 시간이 다 지나버리는 친구들이 있다. 평생 볼 일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게 일이든 삶의 갈피를 찾고자 하는 나의 개인적 참여 희망이든)회고모임이라는 형식으로 우연하고 새롭게 만나게 되는 인연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만남은 차와 커피와 술을 비롯한 먹거리들을 제외하면 모두 신체발부를 통한 언어적 비언어적 대화들로 채워진다.
서울의 진짜 도심과는 물리적으로 떨어진 곳에 살게 된 지금은 과연 나의 모든 대화들은 기존의 그리고 새로운 인간관계들에게 얼만큼 매력적인지 고민하게 된다. 나의 심지는 변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느끼게 될 나의 미묘한 말투와 언어의 변화, 긴장감-자신감과 풍기는 분위기 같은 요소들의 변화가 자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쓰인다. 그리고 성공 여부 같은 것과는 다르지만 결국 내가 목표로 하는 방향이 있고 그것을 향해서 가는 길 안에 있는지 그저 헤매고 있는지의 차이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내가 느끼는 매력적인 사람은 자신이 목표하는 바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존재하고, 그 길 위에 있다. 그러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좋은 대화가 된다.
말하기라는 기능을 공부하고 연습해서라도 익혀야겠다는 각오로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자신의 모든 진심을 전수하겠다는 느낌을 주는 유튜버는 없어 도서관에 갔다. 우습게도 말을 배우러 도서관을 가는 신세다. 거기서 공적인 말하기를 중심으로 다루는 정연주 아나운서의 『말을 잘한다는 것』이라는 책을 집었다. 긴장도를 낮추는 것과 발성 자체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복식 호흡부터, 청자의 다양성과 내 말에 대한 윤리적 책임까지가 말을 잘하는 것에 포함된다는 내용까지 작은 책에 폭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인상깊었던 내용 중 하나는 1-2초 정도의 pause는 관객은 전혀 정적으로 느끼지 못하니 여유를 가지라는 것이었다. 내 말할 때의 긴장도는 내 인생에 대한 초조함과 같아서 내 말에 지루함을 느낄까봐 빨리 말하고 끊임없이 이전 단어를 다음 단어가 쫓아간다. 좋은 대화는 여유로운 정신과 호흡에서 나오는 것 같다.
작든 크든 사람들이 나에게 주는 관심은 그만큼의 에너지이며 너무 감사하지만, 과연 내가 그 에너지에 보답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가는 사람 안 잡고 오는 사람 안 막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던 내가 이런 고민을 하기까지 무수한 철없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이제는 그 온기에 얼마나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내가 나를 얼마나 존중할 수 있는지의 척도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인간 본연의 활동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대화'를 잘 하고 싶다. 공적인 말하는 자리에서도 빼지 않고 해보고, 이불킥하게 되더라도 부딪히면서 배워야 잘 배울 수 있다는 걸 오프라인 모임들을 나가 직접 말을 하면서 몸소 느끼고 있다. 언젠간 말과 대화에 자신감이 있는 나를 만나길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