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홀하지 않은 노인

E. 어울리는 마음들 #02

by 우드노트
내가 그리는 60대의 모습이 있으신가요?


예전에는 나이 들면 고즈넉한 시골에 집 한 채 짓고 책 읽고 소일거리 하면서 보내고 싶어서 그 정도 돈을 벌어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몇 년 뒤면 60대가 되는 엄마 아빠를 보면 60대가 아주 노인이거나 한 나이가 아니게 된 것 같다. 시골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면서 지루하지 않을 만한 나이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돈을 잘 벌 수 있는 나이냐고 하면 그건 또 회사 임원진들을 보면 그 정도 나이대는 많이 없기에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물론 개인 건축 사무소를 차린다면야 사무소를 잘 운영해 왔었다는 전제하에 전성기를 맞을 수도 있다. 해외의 유명한 건축가들은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인 지금도 활발하게 세계 곳곳에 자신의 자식들을 낳고 있다. 스타 건축가가 되지 못했다면 아마도 건축이 아닌 다른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 분야에서 과장 정도의 연차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한창 일할 때이니 60대도 일로 가득 차버리겠다.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는데, 60대가 되려면 아직 30년을 더 일해야 하니 그 이상 더 일하는 것은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김승회 교수님 출연 기념으로 건축탐구 집을 넷플릭스를 통해 1화부터 몇 화를 보았다. 노인들만 나오는 게 아닌데 시골이나 교외에 살고 있으니 도시로부터 도망친 사람들 아닌가하는 편견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기보다는 도시를 삶의 선택지 중 하나로 보고 그걸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 나온다. 집이 예쁘기만 하지도 않고 심지어 불편해보이는 지점도 많은데, 불편하더라도 고치고 바꾸고 관리하고 산다. 도시의 뚱뚱한 건축가들이 뒤뚱뒤뚱 찾아가서 방송을 위해 이런저런 평가를 해주려고 하지만 역시 살아보지 않은 이가 쉽게 얘기하기는 어려운 모양인지 겉모습이나 공간적 활용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데에 그친다. 나머지 부분은 여느 휴먼 다큐멘터리처럼 그들의 삶의 모습으로 채워진다. 귀촌을 향한 작은 꿈이 싹트는 기분이 든다. 일단은 대리만족이다. 귀촌에도 많은 돈이 든다.


그럼 적어도 60대부터는 나에게 휴식을 선물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은 있어야겠다. 건축을 한다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양만 해도 되면 좋겠다. 기왕이면 그 일이 지금처럼 하기 싫은 일도 해야 되는 느낌이 아니라 거의 하고 싶은 일만 해도 되는 상황까지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스타는 못 되어도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아둬야 그럴 수 있겠다. 운동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레 짐작하는 노인들은 사교를 위해 사람들과 어울리고 활동은 적은 운동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보다는 나의 건강과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운동을 하고 싶다. 어려서는 어른들의 영역이라고 여겼던 라틴댄스를 이미 배우고 있으니, 수영이나 무술 같은 지속적인 자기 연마가 가능한 운동이 좋겠다. 르 꼬르뷔지에도 말년을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다 죽었다. 너무 몸이 늙기 전에 시작해야 어느 정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60대가 될 때까지 지겹도록 만나온 사람들과는 조금 멀리 떨어져도 좋겠다. 아무도 없는 곳보다는 모르는 사람들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해외도 재밌겠지만 안 된다면 지방의 소도시나 시골 마을도 좋다. 노인이 될수록 더 배타적인 경우도 있으니 국내가 나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라면 당연히 그럴 것 같긴 한데 혹시 아닐지도 모르니, 문화에 뒤쳐지지 않고 미술관이나 영화관, 음악 공연 같은 것들을 계속 즐겼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는 예술이 주는 카타르시스 같은 감정을 내가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감정 중에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으니 아마도 그럴 것이다. 옷도 좀 잘 입고 싶다.


옷도 좀 잘 입고 싶다는 얘기를 적다 보니 60대에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 알게 된 것 같다. 삶과 일에 치여서 다른 많은 것들에 소홀해져버린 모습의 60대라면 나는 그 사람을 노인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소홀해지지 않으면 그 정신의 굳건한 심지가 연륜을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60대건 70대건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을 계속 실천하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되면 어쩌면 누군가에게 어른 같은 존재가 되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루해하지 않는 노인


'회고'라는 주제로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새 직장(리틀캐빈클럽)에 들어가 여러 모임에 나가기도 하고, 직장 동료들과 서로 알아가기 위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말년에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관한 질문을 종종 받았다. 의외로 질문받았을 때 처음 떠오른 나의 대답은 바닷가에 가서 수영하면서 살 수 있는데 동시에 그림이나 음악 같은 걸 만들면 그걸 누군가 전시하거나 공연해 주기를 요청받는 삶이었다. 수영이야 동거인의 오랜 꿈이기도 하거니와 르 꼬르뷔지에 같은 예술계 거장들의 삶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을 차용해 온 듯한데, 계속 일하고 싶다가 아니라 전시나 공연 같은 직간접으로 사람들이 나를 찾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내가 새삼스러웠다. 어느 보험회사 임원이 말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66년생의 평균 기대 수명이 101살인 시대라고 하고, 항간에는 90년대생은 앞으로 평균 120살을 살게 된다는 도시 괴담도 있으니 앞선 글을 적었을 때의 내가 생각하는 60대와 지금의 60대는 전혀 다른 나이라고 느껴진다. 그래서 '소홀함'을 넘어서 타인과의 관계를 전제하는 내 사고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자기 동기가 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경쟁에 관해 글을 쓸 때도 느꼈지만 나는 외부에서 동기를 찾는 것에 익숙한 사람인가 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기보다는 여태까지 내가 열심히 쌓아 올린 시간에 대한 인정을 받고 싶다. 물론 세상에는 건강한 자기 동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모습도 있고, 외부의 동기가 건전하게 작동하는 경우도 분명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어떻게 더 잘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로 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여한 적 있는가?」라는 솔깃한 제목의 책에 관심을 가진 것도 그 고민 때문이다. 건축 일을 하는 동안도 회사와 소장님의 성공을 위해 일하기는 했지만, 내적인 창작 욕구가 반영된 작업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열심히 쌓아 올린 브랜드의 작동에 윤활유를 바르고 그 브랜드의 성격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파운더와 이 브랜드의 성공이 나의 업무에 가장 큰 목표이기도 하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어떤 인정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이 60대의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확실치 않긴 하지만 말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독서가 직장과 꽤 멀어진 새 집에서의 출퇴근으로 인해 가속되고 있다. 그렇게 새로 읽게 되는 책들을 통해 역시나 근면 성실한 루틴 속의 삶이 소홀해지는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홀하지 않다는 것 역시 스스로 비교 대상으로 삼기는 어렵기에 외부에서 비롯된 동기이기도 하다. 당분간은 생활의 모든 것들이 새로운 편이라 그럴 일 없을 것 같지만, 몇 년 전 30대를 넘어가면서 지속적으로 느끼고 있는 점이 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행실이 소홀해진다기보다 세상이 주는 자극들에 지루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여한 적 있는가?」에서 작가는 어떤 일에 1만 명 중의 1명의 최고 전문가가 되기는 쉽지 않지만, 100명 중의 1명 * 100명 중의 1명이 되는 것은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커뮤니티 모임 브랜드를 운영하는 건축사'처럼(?) 세상에 둘은 없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는 한다는 말이다. 아직 그 특별함이 세상에 어떤 식으로 유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이 주는 자극들에 지루해지지 않고 거기서 새로움과 즐거움을 발견한다면 60세가 되어도 1/100 * 1/100 * 1/100 * ...을 반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건축을 하지 않고 있는 변화된 내가 희망하는 60세는 그때가 되어서야 소홀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기보다 지금부터 지루함을 경계해서 꾸준히 새롭고 내일을 향한 희망의 밧줄을 꽉 쥐고 있는 노인이다. 아니, 애초에 기대 수명이 120세인데 60대를 노인이라 부를 수는 없다. 80대에도 너무 많은 것을 지루해하지 않는 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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