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Comes First

A. 선을 그어 나가는 마음 #03

by 우드노트



나를 성장시킨 어떤 관계가 있으신가요?


외할아버지가 내게 가장 자주 해주셨던 얘기는 'Money comes first!'였다. 돈이 없는 사람이 돈이 최고라고 말하는 것은 어쩐지 실패담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돈이 없는 것 자체가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 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외할아버지의 인생에 관한 얘기는 누구도 자세히 해주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당신은 미국에서 자라셨다. 부모님의 버림을 받고 청소년기에 한국으로 돌아와 부자인 친척 집에서 자라며 좋은 대학도 나오셨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아마도 IMF 이후로 대기업은 그만두시게 된 것 같다. 돈에 관한 이야기는 쉽고 짧게 요약되지만 무려 80여 년에 걸친 장엄한 이야기다. 나는 내가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될 것이라는 미래를 깊게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아왔기에 할아버지의 말씀을 건성으로 들었다. 술을 많이 드시던 할아버지처럼 살고 싶지는 않아서 였는지 그 말이 마치 어떤 역작용을 하는 부적인 양 오히려 돈에 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살았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방송을 보고 돈 욕심으로 인해 망하는 온갖 이야기들을 접했으니 당연히 다들 나처럼 돈이라는 존재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리라고 믿었다. 사회에 나와서 남의 돈을 받으며 일하다 보니 돈이 최고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야 실감한다. 사람들 모두가 경제적 자유라는 이야기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해왔지만 의미있는 성장은 결국 스스로 이뤄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내가 지나쳐 온 나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의 어떤 말들은 조금 더 귀담아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Money comes first가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인지 곱씹어 봤으면 어땠을까. 지금은 아파서 왜소해지신 외할아버지 말씀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돈은 인생에서 여태까지의 나의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고 앞으로도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나는 아마도 조금씩 계속 성장할 테다.







성장과 돈의 굴레를 쓰고서


지난 3월에는 리틀캐빈클럽에서 주관한 머니 마인드셋 워크샵에 운영 보조 및 콘텐츠용 사진 촬영 차 참가했다. 약간의 수업을 진행하고 모임을 이끌어주신 캐빈지기님은 내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리해보고 그것을 위해 평생 내가 얼마를 벌어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따지고 생각해보기를 권했다. 이런 얘기가 너무 막연하게 느껴지는 나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간에는 정상적인 경제 흐름 속 인플레이션과 나의 임금 상승률을 포함해 앞으로의 벌이와 기존 자산을 합쳐 노후 대비가 가능한지를 따져보는 엑셀파일 같은 것도 돌아다니니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쳐야 돈을 모으고 제대로 마주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돈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즐거운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돈 버는 것이 즐거워 사업을 키우고 성장하며 살기도 하니 말이다. 나의 경우는 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어찌나 싫어했는지 다른 글들에 비해 위 글의 길이가 민망할 정도로 짧다. 경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써 돈이 싫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어쩐지 기분이 찌뿌둥하고 부담스러운 것은 아마도 돈이 싫다기 보다는 돈을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돈이 우선되어 벌어지는 인간성이 결여된 사건과 행태들 때문일 것이다. 돈은 돈 자체로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우열로 인해서만 가치가 생기는 근본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다. 공정한 경쟁을 빙자해 자본주의가 자행한 비극들이 성인이 된 지금 내 눈에는 말 그대로 도처에 널부러져 있다. 그걸 애써 무시하고 강인함의 탈을 쓰는 것이 나는 어째선지 지난 글을 쓸 때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걸 잘 해내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들에게 동경과 동시에 연민을 느낀다.


주변이나 항간에서 입에 올리는 돈의 액수와 내가 생각하는 가용 범위의 내 돈의 액수는 여전히 꽤 차이가 난다. 나이는 먹고 있지만 그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가는 데에도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더 악착같은 태도를 가져야 극복할 수 있는 차이일 테다. 씀씀이에서도 생활에서도 악착같이 부자의 마음으로 살려고 해 본다. 하지만 더 악착같은 미래를 그려봐도 당장은 뚜렷한 성장의 기미가 안 보인다. 그래서 따라하고 싶지 않은 표정을 짓는 악착같은 사람들을 따라하는 대신 개인의 성장을 이루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 개인의 성장도 다른 사람들은 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시나 눈에 띄는 변곡점은 없다. 성장과 돈의 굴레를 쓰고서 어느 시점까지 달려가야 하는 걸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맞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지 고삐를 잘 잡고 있는 것, 그리고 방향이 틀렸을 때 방향을 틀어도 고꾸라지지 않을 체력과 기술을 기르는 것뿐이다.


그런데 최근 읽은 「동료에게 말 걸기」에는 금붕어에 관한 비유가 나온다. 어항이라는 담론 속 우리가 금붕어라는 이해하기 쉬운 비유인데, 일반적으로 그렇게 비유하는 것은 쉽지만 그 비유가 우리 사유를 지나치게 가둘 수 있다는 지적이 덧붙여져 있다.

어항 속 금붕어 비유는 구조와 주체를 분리하고 구조를 마치 불변의 배경처럼 여기게 하며, 주체를 어항 안의 포획된 존재로 상정함으로써 행위자들 간의 구조적 비대칭성을 전제한다. 이는 의도치 않게 변화의 가능성을 묘사할 수도 사유할 수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항을 깨고 나갈 수는 없을 지 모르지만, 어항의 정체를 파악하고 어항 안에서, 그리고 안팎에서 행위자로서 변화된 행동을 추구하는 것은 인정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행위자로써 앞으로 무엇을 행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되 기대를 버릴 정도로 좌절하지는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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