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형평성, time is not my friend

C. 나를 짓는 일 #03

by 우드노트
시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신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시간의 문제는 내게 노동의 문제로 다가온다. 시간은 항상 존재하고 모두에게 공평한데, '시간이 없다'거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노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노동에 대비하여 나머지 시간의 가치는 결정된다. 그렇기에 '그따위 일을 하기에는 시간이 없다'거나 '그것 참 (내 시간을 들이기에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군' 같은 행위의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자신의 시간을 분배할 수 있다. 거기서부터 시간의 불공평이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52시간제와 같이 일주일 중의 근무시간을 법으로 한정해야 할 정도로 노동량이 많은 나라다. 어떤 나라는 우리나라의 여느 회사와 퇴근시간이 같으면서도 주 4일만 근무하며, 심지어는 중간에 2시간이나 낮잠자는 시간(시에스타)이 있다. 천천히 살면 좋겠다. 내 노동 외의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살고 싶다. 좀 더 가치 없게 느껴지는 일에도 충분히 내 정성과 시간을 소비하면서 살고 싶다. 남의 돈을 받고 일하는 세계 각국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지나치게 노동 강도가 높다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이와 같은 전국민적인 노오력(노동 강도)을 통해 우리나라는 이제 소위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G7에 초대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는 조금씩 노동의 강도를 낮추고 질적인 측면을 고민해봐도 좋을 듯 한데, 돈을 주는 입장들은 그렇지만은 않은 듯 하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같은 돈을 주면서 근무량을 줄이는데에 자본가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회사만 해도 근무시간 변화와 임금 인상이 설계비에 선행하여 대표님이 힘들다고 푸념을 한다. 문화가 바뀌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나는 개인의 노력으로 나에게 주어진 '이미 불공평해진 시간'을 또 알뜰히 쓸 방법을 강구하여 본다.


여분의 시간을 최대한 많이 만들기 위해 나는 정해진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노동하려고 노력한다. 설계와 디자인의 실제적 능력과는 별도로, 프로그램이나 툴을 다루는 데에 개인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왔다. 예컨대 설계 도면 제작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캐드라는 프로그램은 move라는 명령을 하기 위해 단축키 m을 누르도록 설정되어있다. 나는 오른손을 마우스에서 떼거나, 키보드 왼손의 자리에서 멀리 있는 m을 왼손이 누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move를 v로 설정하는 등 할 수 있는 최선의 세팅을 마쳐두었고 이미 그런 일에 익숙하다. 숫자를 왼손으로 입력하기 위해 키보드 좌측에 숫자패드만 있는 usb 키보드를 별도로 두었음은 내 정성에 자부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외국인들은 window키와 화살표 키를 누르면 창이 화면의 한 쪽으로 정분할 된다는 사실을 모르며, 한국인이 Alt + Tab 정도의 단순한 단축키를 쓰는 모습만 봐도 놀라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 또한 놀라버렸다. 우리는 이 정도를 준비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시간이 모자란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과연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살다가 외국생활을 하게 되는 사람들은 너무나 느긋한 그 나라 사람들의 행정처리나 서비스직 근무 태만 같은 문화의 차이에 불편과 답답함을 느끼고 결국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시간이 촉박한 사회에 익숙해서 그들의 느긋함을 이해 못하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본인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그만큼 다른 사람의 느긋함에 불편을 느끼는 것이리라. 조금 불편하더라도 나의 시간은 소중하고 남의 시간은 소중하지 않게 여기지 않도록 신경써야 하겠다.


서른이 다가온다. 한국인에게 서른 하면 누구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이겠으나, 나의 경우에는 시간에 관한 음악을 생각하면 늘 솔직 담백한 가사를 적는 빈지노의 'Imagine Time'이 떠오른다. 서른이 다가오고 직장에 다니며 일을 하다보니 점점 더 가사에 공감이 간다. 시간의 문제는 항상 내게 반갑지 만은 않다. 시간은 내 친구가 아니라네.



시간을 배우며 커왔네/빠르고 향긋해 서른/All of sudden, 여섯 살은 커서/1,2,3,4,5,6에 5를 곱하길 배워

...

시간을 미워하게 됐어/여행 가고 좀 자는 게 왜/왜 못가 왜 못하는지에 대해

I worked hard and worked hard and played man

...

Time is not my friend, not my friend/시간은 아냐, 내 시간은 아니라네





시간을 짓는 일


시간이 내 친구가 아니라고 느끼던 때가 고작 몇 년 전의 일인데, 서른을 넘어가면서는 어느덧 나도 삶의 안정화 비슷한 걸 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보다 시간을 잘 쓰는 방법과, 잘 쓰지 못했을 때의 초조함이나 자괴감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는 조금 더 나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잘 시간을 쓰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나 이미 너무 잘 쓰고 있지만 그것을 잘 사용한 채로 흘려보내는 사람들과 회고를 이야기하는 커뮤니티 사업에 들어온 것이 꽤 적절한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내가 누군가의 시간을 대신 사용해 줄 수도 없기 때문에 시간을 짓는 일은 자연히 개인의 몫이다. 그 생각을 하고 나면 시간을 짓는다는 다소 추상적인 말이 모든 개인의 책임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인 것처럼 우리 모두는 '어떤 인생이 시간을 잘 지은 인생인가'를 실험하고 있는 실험체들일지도 모른다. 친구는 어떤 사람이 잘 살고 있는지, 잘 지내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을 '안정되어' 보인다는 말로 갈음한듯한 말을 했었다. 집이 바람불면 무너져서는 안되듯이 견고히 쌓아올린 안정된 시간들이 인생이라는 집을 튼튼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 지낸다=안정'이란 개념은 단순한 언어적 동치가 아니라 꽤 괜찮은 비유같다.


커뮤니티 사업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파는 일이다. 공간 업계에서는 '체류 시간' 비즈니스라는 말을 쓰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츠타야 서점 같은 곳이 단순히 책과 DVD를 대여하고 파는 곳이 아니라, 그곳에 머물면서 겪는 모든 문화적인 체험을 파는 곳이라는 개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얼마나 머물게 하느냐다. 커뮤니티 사업에는 정해진 공간은 없으니, 그때그때 사람들이 모여있는 그 시간을 상품으로 다룬다.


호소다 다카히로의 책에서 본 단어로는 '제로 시간' 비즈니스라는 것도 있다. 수면, 통근, 대기 등 소비자가 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 틈새의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수면시간을 미용시간으로 관점을 바꾸어보는 것으로 그 시간에 착용하는 미용 기기나 바르는 화장품의 수면 시간에의 효능을 강조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호소다는 그 제로 시간은 소비자가 의식하지 못하던 시간이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데, 나는 의식하지 못하던 시간마저 자본주의에 휘둘리게 하니 열받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어쨌든 우리는 무엇이든 저절로 이루어지는 자동이나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을 잘 쓰고 있다고 합리화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으니 사업 구상과 브레인스토밍의 방식으로까지 대두될 수 있는 것이다.


마감에 쫓기고 야근이 덕지덕지 달라붙었던 모습, 어떤 행복한 시간을 보내더라도 그 순간을 즐긴다기 보다 일상을 잊지 못하고 방지턱에 걸린 듯 덜컹거리던 모습과 같은 안쓰러운 시절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어떻게 설계할지를 궁리할 여유까지 부리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에는 진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표현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고 그걸 충분히 꾸준히 해내서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선보일 수 있는 레벨까지 가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건축하지 않는 건축가'라는 형용모순의 어구와도 제법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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