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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Mar 25. 2022

<자매들의 밤>(2020) 김보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가깝기에 더 말하지 못한

[씨네리와인드|이하늘 리뷰어] 다섯 명의 자매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큰 언니 혜정의 집에. 큰 오빠의 칠순잔치와 함께 해외여행 선물을 보내주려고 한다. 혜정은 어린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가서 돈도 벌고, 힘든 삶을 살았다. 그런 큰 언니의 고생을 아는 동생들도 언니의 말이라면 잘 듣는다. 그런데 큰오빠의 해외여행지에 관해 막내 정희는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꺼낸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막내 동생 정희가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다른 동생들도 정희의 사정을 알고 있는 눈치다. ‘가족’이라는 단어의 공동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많은 것을 숨기기도 한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예상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더 가깝고 내밀한 사이이기에 더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의 괴리가 발생할 때, 그것을 부정하고 더 믿기 힘든 것처럼.                     


▲ '자매들의 밤' 스틸컷.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막내 정희의 모습은 극 중 초반에서 자주 언급된다. 더운 날씨임에도 스타킹을 신는다던가, 수박을 먹다가 큰오빠가 준 수박이라고 말하자 뱉는 행위를 한다. 하지만 그녀가 그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 관객들은 정희의 사정을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혜정은 하와이로 큰 오빠를 보내주는 계획에 동생들이 좋아하지 않자, 화를 낸다. 사실 큰오빠와 다섯 명의 자매들은 배가 다른 형제다. 그런데도 혜정은 오빠를 챙긴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못마땅해하는 동생들이다. 사실은 이러했다. 정희가 어린 시절, 큰오빠와 단둘이 남아있고 다른 언니들은 서울로 돈을 벌러 갔을 때 그 집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난 것. 어린 정희에게는 남자가 그러한 연유로 트라우마로 남았다. 나이가 들어서야 그때 그 행위가 무슨 뜻이었는지 알게 된 정희는 정신과 상담도 다니면서 그 사건의 흔적을 지우려고 애쓴다. 하지만 혜정은 알지 못한 사실이다.

                     

▲ '자매들의 밤' 스틸컷.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어린 정희의 진실 사이에 불편한 감정을 보여준다. 정희는 말한다. ‘나도 같이 서울에 데려가 달라고 했잖아.’라고. 그 말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혜정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정희를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 그녀를 남겨둔 선택을 했던 것이었지만 양날의 검이었음을 몇십 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자매들의 밤은 그렇게 지나간다. 저녁식사 시간에 자매들 사이에는 말하지 못한 응어리가 느껴진다. 어쩌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관계에서 온 허무함과 미안함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자매들은 잠에 들고, 혜정은 가슴이 답답한지 밖으로 나온다. 그때 같이 따라 나오는 정희, 혜정의 이명에 귀를 파준다. 커다란 사건이 전개되는 방식이 아닌 자매들 사이의 말하지 못했던 꼭꼭 숨겨두었던 그 진실 속에, 어쩌면 너무 서로를 위하느라 놓치고 지나간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들이 존재한다. 멀리서 사물을 바라볼 때는 그 사물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지 못하지만, 가까이에서 그 사물을 바라볼 때면 내가 보지 못하던 사연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나이가 들면 눈도 침침해지고 귀에 이명 소리도 들리고 장기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어쩌면 돋보기가, 보청기가 필요하게 된 그 순간들이 내가 젊은 날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더 자세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시절에는 너무 많은 것을 보려 멀리 보았기에. 지나가는 자매들의 밤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Director 김보람

Cast 강애심


■ 상영기록

* 온라인 상영작  



*씨네리와인드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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