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늘 Mar 25. 2022

<육상의 전설>(2021) 김태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어린 소녀를 보며 뛰는 달리기

[씨네리와인드|이하늘 리뷰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면 결승선이 저만치 보인다. 멀리 보이는 결승선을 손을 뻗어 잡아보려, 있는 힘껏 애를 쓰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더 멀어져 보일 뿐이다. 목구멍에서부터 피의 저릿한 비린내가 신물이 올라오듯 올라오고, 이마를 타고 내려온 땀은 이내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그렇게 육상의 전설이라고 불리었던 누군가. <육상의 전설>의 주인공 우리는 갑작스러운 이모의 죽음으로 장례식장에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 이모가 ‘육상의 전설’이었다는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 듣게 된다. 육상의 꿈을 꾸었지만 삼촌의 뒷바라지 때문에 이루지 못한 꿈으로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는 이모. 우리의 눈에 이모의 노란 운동화가 눈에 띈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온 우리는 무작정 달린다. 달리던 도중 자신의 앞을 지나쳐가는 어떤 소녀, 그 소녀를 따라 한 대문 앞에 도착한다. 낯익은 대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어린 날의 이모가 육상을 하고 싶다고 오빠에게 말을 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모의 말은 무시되고, 우리는 욱하는 마음에 신고 있던 신발을 이모의 오빠(우리의 외삼촌)에게 던지고 그로 인해 외삼촌은 벽돌을 맞고 쓰러진다.                      


▲ '육상의 전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스틸컷


그와 함께 다시 현실로 복귀한 우리는 장례식장에서 눈을 뜬다. 다시금 현실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과거가 바뀌면서 외삼촌의 존재도 사라지고, 이모의 과거도 바뀌었지만 다시 이모의 삶에는 고난이 생겨 육상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 알게 된다. 다시금 우리는 이모의 노란색 운동화를 신고 과거로 뛰어간다. 이모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영화는 이런 식으로 주인공인 우리가 이모가 이루지 못한 육상선수의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 과거와 현실을 오가면서 진행된다. 과거-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이모의 노란색 운동화. 이것은 꿈에 대한 깊은 염원과 현실 세계의 허무함을 평행세계로 연결해준다. 과거 속의 이모는 계속 달려간다. 결승선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 트랙을 그저 뛰고 또 뛸 뿐이다. 그런 과거 속에서 우리는 계속 이모가 달릴 수 있도록 하나씩 비튼다. 그 우연이 변동됨에 따라 이모의 인생도 달라진다. 이런 요소들의 등장은 무거운 극적 진행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가 뛰는 과정 속에서 달라지는 이모의 삶을 관객들도 기대하게 만들고 그 기대 속에서 희망이 생기게 한다.                      


▲ '육상의 전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스틸컷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라고 했던가. 우리가 이모의 과거를 바꾸더라도 계속 도달하는 장소는 이모의 장례식장이다. 이모의 죽음을 바꿀 수도 이모를 뛰어난 육상선수로 만들 수도 없이 그저 시간을 늘려놓았을 뿐이다. 꿈에 대한 염원을 조금이라도 더 실행시킬 수 있도록. 결국 이모는 대학교까지 들어가고 육상선수로도 활동했지만 기록이 좋지 못해 포기한다. 하지만 한 가지 변화한 것은 이제는 노란색 운동화가 사라졌다는 것. 어쩌면 그 운동화는 이모가 삶을 떠나기 직전까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대 여성에게 꿈을 이룬다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의 마법과도 같은 일로 이모는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우리가 과거 속의 이모를 위해 왜 그렇게까지 이모의 삶을 바꾸려고 뛰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지금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다른 여성의 삶을 응원해주고 싶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과거에 비해 현재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크게 변화하였지만 아직도 그 인식이나 고정관념은 뿌리 내려져 있다. 이모를 향해 뛰었던 우리의 쿵쿵거리는 발걸음은 아마 현재의 자신을 반영한 발걸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삶을 지속시키기 위한 무한한 발걸음이 되어서.  




Director 김태은  

Cast 김도이


■ 상영기록

2021/08/29 14:30

2021/08/30 18:00



*씨네리와인드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5135


작가의 이전글 <소금과 호수>(2021) 조예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