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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Mar 25. 2022

<세월>(2021) 장민경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공허함으로 채워진 잃어버린 시간

[씨네리와인드|이하늘 리뷰어]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 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줘요.’ 1988년 발매한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앨범의 가사이다. 시간은 흐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그렇기에 다시 뒤돌아볼 수 없다. 영겁의 시간들이 쌓이고 그 행위가 반복되는 모든 세월은 그렇게 흘러간다. 제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상영작인 <세월>은 지나간 시간과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눈물 젖은 나날들로 남은 그날의 시간과 공기, 온도, 습도 우리는 고스란히 기억한다. 그날들의 기억을. 영화는 세월호 참사, 씨랜드 수련원 화재,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이한열 열사의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고 한상임 님 어머니 황명애, 99년 씨랜드 화재 참사 고 고가현, 나현 님 아버지 고석, 87년 고 이한열 님 어머니 배은심)에 귀를 기울인다. 누군가 들어줬음에도 이제는 다들 잊어가는 시간 속에서 아직 떠나간 이들을 잊지 못한 이들이 있다. 고인들의 부모님, 가족들이다.                      


▲ '세월'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팟캐스트 녹음 스튜디오에 4명의 부모가 나온다. 그들의 마음의 시간은 멈춰있지만 세상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속절없이 지나갔기에. 그때의 그 시간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 본다. ‘무뎌진다’는 말은 어쩌면 그 시간들을 보내오지 않은 자들의, 무게가 실리지 않은 폭력적이며, 경솔한 말일지도 모른다. 남겨진 가족은 부실공사와 일어나지 않았어도 되는 사건 속의 대응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높힌다. 하지만 유가족들에게 씌어진 프레임은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앞서 말한 4개의 사건, 사고는 참사다.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세상 밖으로 나와 소리치는 그들은 말한다. 부실 공사와 욕망의 눈이 만들어낸 이기적인 모습으로 인해 일어나지 않았어도 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 '세월' 스틸컷.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채 살아가는 시간은 채워지지 않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모래 시계를 본적이 있는가. 그 시계는 쓸려 내려가는 시간이 속절없이 다시 뒤집혀서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반복한다. 그 공허함은 다시금 슬픔의 시간으로 쌓인다. 세월호 참사는 선반의 자재가 잘 가라앉는 소재임을 알았어도, 씨랜드 수련원 화재는 부실공사와 자재들이 건축물의 양식을 따르지 않고 화재에 취약한 소재임을 알았어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은 그 연기 속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았어도,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정부의 욕망의 눈이 젊은 청년을 죽음으로 이끈 것을 알았음에도. 그렇게 우리는 같은 사고나 사건이 발생해도 미디어를 통해 스쳐간다. 하지만 이것을 바뀌기 위한 발걸음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는 것이 아닐까. 세월이 그저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그 세월이 지나가는 만큼 무엇이라도 변해야하지 않을까. 지나가는 시간만을 바라보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세월이 간 것이 아닌 세월을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변화의 움직임의 시작은 부당한 것을 인식하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 어쩌면 감독은 지나온 세월을 통해 앞으로 지나갈 시간을 두 눈을 크게 뜨고 잘 지켜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지 않도록.  



Director 장민경

Cast 황명애, 고석, 배은심, 유경근  



■ 상영기록

2021/09/11 10:00 메가박스 백석 컴포트 4관

2021/09/15 16:30 메가박스 백석 8관





*씨네리와인드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5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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