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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Mar 04. 2022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에드워드 양

시대가 만든 아이들의 세계

237분. 근 4시간에 가까운 시간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의 러닝타임이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타이페이 3부작의 마지막 정점을 찍은 이 작품은 196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아이와 어른의 삶을 그려낸다. 시대의 조각난 퍼즐을 거대한 서사 안에서 끼워 맞춰나가는 영화의 흐름은 마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듯하다. 감독의 전작들 역시 러닝타임이 꽤 긴 편에 속하지만 이 작품은 특히나 길다. 최근 개봉한 <드라이브 마이 카>(2021)의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해피아워>(2015)가 장장 32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인 것을 생각하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그나마 적은 편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감독은 4시간가량 되는 시간 동안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던 걸까. 



1960년대, 카오스의 대만

시대는 변하고, 시대 속 인간의 군상 또한 바뀐다. 영화는 1959년 여름날의 한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시험지를 채점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학교에 방문해 담임과 면담하는 샤오쓰의 아버지의 롱샷 뒷모습으로. 어른들의 뒷모습 뒤에 이어지는 컷은 교실 밖에 앉아 기다리는 샤오쓰(장첸)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어른과 아이들의 간극이 넓어지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초반의 장면이다. 영화는 다시 1949년으로 돌아간다. 


“중국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자 수백만 명의 중국인이 국민당 정부를 쫓아 대만으로 피난 온다. 부모 세대는 자식의 안녕을 바랐지만, 그 시절 학생들은 불안한 미래로 인해 학생 갱단을 조직해 자신의 정체성을 과시하며 생존의지를 키워갔다.” 


1947년생인 에드워드 양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 속 퍼즐 한 조각을 꺼내 대서사에 끼워 맞춘다. 혼란스러웠던 대만의 자신과 같은 학생들의 모습을 재편집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12년의 시간이 흐르고, 영화는 1960년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영화의 로그라인을 간단히 말하면 주인공인 14살의 샤오쓰가 ‘소공원’ 파의 리더였던 허니의 연인인 밍을 만나는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한 문장만으로 그 시대의 뜨거움을 담기에는 부족하다. 소공원 파와 217 파로 나눠진 아이들은 서로의 힘을 과시하며, 각자의 아지트를 주축으로 세력을 뻗어 나간다. 밤이 된 학교, 학생 한 명이 배신을 했다는 이유로 돌로 머리를 내려치는 장면은 이들이 과연 14살의 아이들이 맞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관객들은 프레임 안에 담긴 장면들을 부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237분의 시간 동안 관객들은 그 세계에 동화되고야 만다. 이것이 감독이 관객에게 세계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전작들을 살펴보아도 서사를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느끼고 받아들이게 하는 방식을 주로 선택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역시 관객들은 그저 거대한 서사를 따라갈 뿐이다. 앞서 말한 장면에서 특히 아이들의 비정함과 잔인함이 드러난다. 이 세곈는 마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설계한 잔인한 마피아의 세계 <대부>(1972)의 돈 코를레오네(말론 브란도) 폭력성과도 닮아있다. 피도 눈물도 없지만 자신의 패밀리를 지키려고 애쓰는 소공원 파와 271 파가 존재하는 세계 속 샤오쓰는 그저 놀기를 좋아하는 14살의 소년이다. 소년은 소공원 파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놀지만, 주요한 임무를 맡은 캐릭터는 아니다. 샤오쓰가 주간반에서 야간반으로 옮겨가며, 그의 환경이 뒤바뀐다. 시간이 지날수록 패거리의 세계에 스며들고 동화된다. 그에 반해 집 안에서 소년의 위치는 옷장 안의 협소함처럼 미미하다. 자신의 방에서 분주하게 나갈 준비를 하는 가족들을 보는 샤오쓰의 시선 컷을 통해 집안과 자신의 상황을 분리시키는 모습을 알 수 있다. 집에서 샤오쓰를 보여주는 카메라는 커튼으로 인해 시야가 차단된 상태로 이는 샤오쓰가 시대를 보는 지금의 감정과 맞닿아있다. 야간반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샤오쓰는 집 안의 불을 껐다가 켜는 알 수 없는 행위를 반복하며 “눈이 잘 안보여서요.라는 말을 내뱉는다. 극의 초반부 샤오쓰는 시대의 비정함에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다. 어른들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의 경계에서. 이때 샤오쓰의 혼란스러운 세계에 빈틈을 헤집고 들어오는 한 소녀가 있다. 



소녀의 세계에 들어간 소년

소녀의 이름은 밍(양정이). 14살의 소녀다. 흰색 하복 상의와 검은색 치마를 입은 앳된 모습의 단발머리 소녀는 소공원파의 보스인 허니의 연인이다. 하지만 허니는 217 파의 보스를 죽이고 은둔 중이다. 샤오쓰와 밍의 첫 만남은 보건실에서 이뤄졌다. 보건실에서 다리를 다친 밍을 마주친 샤오쓰, 교실에 소녀를 부축해 데려다주며 소년은 소녀의 세계에 천천히 진입했다. 뒷모습을 팔로우하는 카메라는 그들의 걸음 속도에 맞춰 천천히 따라간다. 발을 맞춰 걷는 샤오쓰와 밍의  모습은 풋풋함 그 자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여름날의 싱그러움처럼 둘 사이에는 초록빛이 감돈다. 하지만 소년의 발걸음은 조심스럽다. 학교 내에서는 밍과 샤오쓰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돈다. 은둔생활을 하던 허니가 소공원 파로 돌아오고 소녀와 소년의 사이에도 변화가 생긴다. 두 세력의 소용돌이 사이에서 샤오쓰는 큰 혼란을 느낀다. 허니는 271 파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소공원 파는 자신의 보스의 죽음에 분노하며, 반격 준비를 한다. 소공원 파 보스 허니의 연인이었던 밍 역시 그들에게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271 파의 아지트인 당구장에 급습해 살인을 하는 소공원 파는 일본의 잔재가 묻은 사무라이의 검을 휘두른다. 비가 추적이며 내리는 날, 그들이 급습한 아지트는 피의 흔적이 낭자하다. 범죄 영화에서 주요하게 나오는 클래식한 장면인 비가 내리는 상황 속에서 칼을 휘두르는 장면이 아이들의 것이라 쉬이 생각하기 힘들다. 샤오쓰는 혼돈 속에서 밍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이때, 에드워드 양의 탁월한 장면 설계가 눈에 띈다. 사운드를 이용한 깔끔한 연출력을 선보인다. 허니의 죽음 이후 학교에서 만난 밍과 샤오쓰. 축하의 행진을 알리는 트럼펫 연주가 오프 스크린으로 들려온다. 두 사람이 하는 대사의 내용은 허니의 죽음, 사운드와 상반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변의 트럼펫 소음으로 인해 대화 내용은 묻히고, 카메라는 처음 그들이 만났을 때처럼 밍과 샤오쓰의 걸음을 팔로우 한다. 트래킹 샷으로 설계된 이 장면의 전경에는 밍과 샤오쓰가 다투는 모습과 후경에 트럼펫을 연주하는 학생들로 미장센이 배치된 장면이다. 밍은 허니의 죽음 이후에도 보스의 연인처럼 태도를 일관한다.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샤오쓰의 조언에도 등을 돌린다. 소녀의 세계에 진입한 소년은 늪에 걸린 듯 허우적댄다. 트럼펫 소리에 묻힌 샤오쓰의 대사는 전달되지 않은 진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밍과 샤오쓰의 변화된 관계는 이후의 장면들에도 드러난다. 투 샷으로 등장하던 두 사람은 분할된 컷 안에서 단독 샷으로 보인다. 거리에 군인들이 다니는 혼란한 시대상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소년과 소녀. 밍의 행동에 주의를 주며 걱정을 하는 샤오쓰의 말에 밍은 그저 앞만 바라볼 뿐이다. 대화 사이에 섞인 덤프트럭이 움직이는 소리는 주변의 방해물에 의해 두 사람의 관계가 균열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소년의 세계는 소녀에 의해 균열되고 있었다. 



시대가 만든 괴물 

“학생들은 불안한 미래로 인해 학생 갱단을 조직해 자신의 정체성을 과시하며 생존의지를 키워갔다.”


소공원 파와 217 파는 시대가 만든 괴물이다. 부모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른들처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살인과 폭력을 가득 품은 아이들로 성장했다. 에드워드 양은 자신의 어린 시절이었던 1960년대를 무자비하지만 아름다운 시대로 담아냈다. 영화의 오프닝으로 돌아와 샤오쓰와 캣은 영화 촬영 현장을 몰래 지켜본다. 부감으로 보이는 촬영 현장에서 시작하는 장면은 틸트 업 되며 아이들이 천장에서 촬영 현장을 보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동경하며,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어른과 아이의 세계는 넘기 힘든 선이다. 메인 플롯인 샤오쓰의 이야기를 제외하고도 서브플롯에는 샤오쓰의 아버지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 그는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른의 모습이다. 학교에서 교사와 면담을 하고 돌아오는 샤오쓰 아버지와 샤오쓰가 자전거를 끌고 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롱테이크는 이야기의 축을 담당하는 중심적인 이야기다. “사람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라는 샤오쓰의 아버지 말에 샤오쓰는 오히려 “세상에는 그런 일이 많아요”라며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듯 말한다. 어딘가로 끌려가서 추궁을 받는 샤오쓰의 아버지는 어떤 상황인지 항의조차 하지 않고 순응하는 캐릭터로 샤오쓰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다. 영화 속에서 어른들은 현실에 순응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하며, 반항하고 대항하는 태도를 보인다. 군인들이 거리를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혼란스러운 시대상은 아이들을 점차 괴물로 키워냈다. 


괴물이 되어가는 샤오쓰의 내면에서는 점차 각성이 시작된다. 마음속에 피어난 불신과 반항의 목소리는 소년의 행보를 변화시킨다. 지속적으로 나온 선생님과 샤오쓰 아버지의 면담은 앞서 말한 부모 세대가 자식의 안녕을 바라는 행동이다. 샤오쓰를 야간반에서 주간 반으로 옮기고자 노력하는 샤오쓰의 아버지. 하지만 샤오쓰는 이제 오프닝에서처럼 교실 밖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학생이 아니다. 소공원 카페를 찾아온 동급생 친구로 인해 밍에 대한 추문을 들은 샤오쓰는 이제 자신의 품에 있던 단검의 칼집을 서서히 뽑기 시작한다. 풀 샷에서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샤오쓰의 표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야기가 끝나고 카메라 앞으로 다가오는 소년은 무언가 비장하다. 무엇을 향해 대항하는 것일까.



세상에 대항하는 샤오쓰

샤오쓰는 가슴속에 품고 있던 단검을 검 집에서 뽑아든다. 샤오쓰의 친구 캣이 천장에서 발견한 단검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일본인 여자의 검이다. “여자는 이 검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샤오쓰와 캣의 물음에 대답해 줄 단검의 주인은 없다. 주인 없는 단검은 샤오쓰에게 양도되었을 뿐이다. 검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 외친다. 그 물음에 샤오쓰는 대답한다. 어둠이 내린 밤, 샤오쓰는 거리에서 밍을 만난다.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다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고 몸싸움이 시작된다. 발화의 시작점은 알 수 없다. 그저 무언가에 화가 나있는 샤오쓰가 프레임 안에 존재할 뿐이다. 허니를 잊지 못하는 밍에게 샤오쓰는 그만 잊고 새로운 삶을 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밍은 말한다. “난 이 세상과 같아. 세상은 바꿀 수 없어.” 불변과 고정을 상징하는 밍은 세상이다. 하나의 세계이며, 과거의 무한한 영광이다. 그에 반해 샤오쓰는 과거로부터 벗어나려는 인물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려는 미래의 불안전한 축복을 지닌다. “넌 희망이 없어. 뻔뻔한 계집” 미래는 과거를 살해한다. 밍은 샤오쓰가 뽑아든 단검에 찔려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단순한 치정 멜로가 아닌 하나의 세계에 대항하는 아이의 모습은 실로 비정하다. 카메라는 두 인물의 동선을 팔로우하다가 샤오쓰가 살해를 하며 풀샷으로 빠져나온다. 밍은 과거 소공원파의 보스 허니의 연인으로 권력의 옆에서 기생하며, 과거를 영광으로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오프닝에 비춰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모습의 소녀는 이제 샤오쓰 앞에서 피를 흘린다. 


샤오쓰의 살해로 가족들은 이사를 갈 준비를 한다. 그때 라디오에서 문학과 합격생 발표자 명단 속에 샤오쓰의 이름도 함께 들려온다. 이를 들은 어머니의 뒷모습은 표정이 없어서 더욱 슬프다. 어른들이 바란 아이들의 안녕처럼 샤오쓰가 주간반으로 가게 되어, 소공원파에 어울려 놀지 않았다면 하나의 세계를 죽이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엔딩 크레딧까지 이어지는 사람들의 이름에 여운이 남는다. 과거의 무한한 영광을 향해 칼을 뽑아든 어린 소년은 이제 없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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