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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Mar 05. 2022

<리코리쉬 피자>(2022) 폴 토마스 앤더슨

PTA의 로맨스, 어리숙한 사랑의 달리기

“이건 정말 사소한 일이야. 생쥐 머리를 한 소녀에겐 말이야.” 폴 토마스 앤더슨의 신작 <리코리쉬 피자>(2022)의 예고편에는 데이비드 보위의 ‘Life On Mars’ 노래가 흘러나온다. PTA의 로맨스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다. 전작인 <팬텀 스레드>(2018)부터 <마스터>(2013), <펀치 드렁크 러브>(2003)에 이르기까지 PTA의 로맨스는 색다른 모습으로 변주를 거쳐, 2022년 드디어 <리코리쉬 피자>에 도달했다. 마치 ‘Life On Mars’에서 달에 착륙한다는 가사처럼. <펀치 드렁크 러브>의 어리숙했던 배리(아담 샌들러)와 레나(에밀리 왓슨)가 서로를 향해 얼굴을 마주했던 실루엣의 이미지는 영화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1973년의 샌 페르난도 밸리를 배경으로 찬란한 청춘을 다루는 <리코리쉬 피자> 역시, 개리(쿠퍼 호프만)와 알라나(알라나 하임)의 어리숙한 달리기로 발자취를 남기며 서서히 착륙을 시도한다.  



‘July Tree’처럼 뜨거운 여름의 한복판에서

<리코리쉬 피자>에는 1970년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도어스의 ‘Peace Frog’와 폴 매카트니와 윙스의 ‘Let Me Roll’, 크리스 노먼과 수지 콰트로의 ‘Stumbin’ in’까지. 총  20여 곡이 넘는 노래가 삽입되었다. 그중에서도 니나 사이먼의 노래 ‘July Tree’는 영화의 청량한 분위기와 썩 잘 어울린다. 초록빛이 가득한 7월의 뜨거운 여름, 그 한복판에서 만나는 15살 개리와 25살의 알라나. 화장실에서 머리를 넘기는 개리는 얼굴에 여드름이 울긋불긋하게 피어난 15살의 혈기왕성한 학생이다. 졸업앨범 사진을 찍으면서 거울을 보는 소년의 모습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개리를 따라가던 카메라는 졸업사진을 찍어주는 대행사 타이니 토스에서 일하는 25살 알라나에게 향한다. 프레임의 왼쪽으로 걸어가던 알라나와 프레임의 오른쪽으로 걸어가는 개리는 이내 한 프레임 안에 담긴다. 알라나에게 첫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하는 개리는 패기는 그녀를 당황하게 만든다. 차가운 현실이 얼굴에 닿는 순간 알라나는 말한다. “난 15살 아이랑 데이트 안 해.” 


졸업사진을 찍는 강당에서 카메라는 두 사람의 동선을 끝까지 따라간다. 개리의 끝없는 구애에 알라나는 밀어내지만 그녀가 뒤를 돈 순간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있다. 알라나 역시 개리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 것. 약속 장소인 더 칵에 앉아있는 개리, 뒷문으로 알라나가 들어온다. 이제 두 사람의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하지만 운명적인 마주침도 잠시, 나이 차이라는 현실 앞에서 회전목마처럼 그저 주위를 맴도는 개리와 알라나. 회전목마의 운영시간이 종료되면 말에서 내려야만 한다. 열꽃처럼 피어난 뜨거운 마음을 숨기고 서로에게 다가선다. PTA의 이런 이미지는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도 보인다. 황홀한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는 배리의 모습처럼 개리와 알라나 또한 그러하다. 다이얼을 돌리고 수화기 너머로 상대의 음성을 기다리는 전화 역시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알라나가 우연한 계기로 랜스라는 남자를 만나 데이트를 할 기회를 얻는데, 개리는 질투를 느끼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개리는 알라나의 집에 전화를 걸어 랜스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막상 알라나가 전화를 받자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어버린다. 알라나에게 다시 걸려온 전화에 개리는 아무 말도 없이 그녀의 숨소리만 듣는다. 알라나 역시 수화기 너머로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개리인 것을 눈치채고, 수화기를 들고 침묵한다. 뜨거워서 더 불안하고 설레는 감정들은 수화기를 통해 넘어온다. 수화기를 붙들고 있는 두 사람을 보여주는 교차편집은 가히 명장면으로 꼽힌다. 개리 역시 수 포에란츠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 엇갈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프레임 안에서 그들이 달리는 방향성과 닮아있다. 



서로를 향한 달리기 

‘판 엑스포 청소년 축제’가 열리고 개리는 부푼 꿈을 안고 물침대를 판매하러 가고, 그곳에서 알라나를 만난다. 랜스와의 데이트로 알라나와 개리의 사이는 어색하다. 개리가 갑자기 경찰에게 끌려가게 된다. 알라나는 프레임의 오른쪽 방향으로 경찰서를 향해 달리기를 시작한다. 달리기는 영화의 메인 플롯을 관통하는 포인트인데, 두 캐릭터가 프레임 내에서 달리는 방향성은 서로에게 향하는 타이밍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알라나는 경찰서 복도 의자에 손이 묶인 개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간다. 오해가 생겨 경찰서에 끌려간 개리는 바로 풀려난다. 알라나와 개리는 서로를 발견하고 포옹을 한다. 유리에 반사된 그들의 모습.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알라나와 개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도로를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한다. 프레임의 왼쪽으로 달리는 두 사람은 이제야 마음을 인정하고 어리숙한 달리기를 시작한다. 이후에 ‘팻 버니’라는 물침대 사업을 동업하는 개리와 알라나. 사업을 확장시키면서 그들의 관계는 변화된다. 단골 고객도 늘어나면서 서로의 사업 파트너가 되는데, 프레임에서 서로를 향한 달리기는 이제 점점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팻 버니’ 사업은 정부의 금수조치로 인해 적신호가 켜지게 된다. 한 국가가 다른 특정 국가에 대해 직간접 교역, 투자, 금융거래 등 모든 부분의 경제교류를 중단하는 정부의 금수조치는 석유 관련 판매를 금지시켰다. 물침대의 비닐이 석유로 만들어졌기에 판매가 금지되는 항목에 포함된 것이다. 사업이 실패하고 개리는 달린다. “세상에 종말이 왔어.” 석유의 가격 상승으로 거리에 멈춰 선 차들 사이를 달리는 개리는 프레임의 왼쪽을 향해 달린다. 영화는 이처럼 1970년대의 의상과 노래, 정책들을 곳곳에 배치해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일으킨다. PTA 감독의 유년 시절의 감각들이 응집된 <리코리쉬 피자>는 그렇기에 더 아름답고 독창적으로 다가온다. 개리와 알라나는 서로를 향한 달리기가 아닌 타이밍이 맞지 않은 달리기를 지속한다. 알라나가 개리를 향해 달리면 개리를 달리지 않고, 개리가 알라나를 향해 달리면 알라나는 달리지 않는다. 그들의 어리숙한 달리기는 서로의 마음에 생치기를 남긴다. 알라나는 개리의 설득으로 시작한 배우 오디션을 다니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잭 홀든(숀 펜)을 만난다. 더 칵으로 잭을 데려간 알라나는 개리를 만난다. 순수함이 가득했던 공간은 질투와 분노로 가득 찬 공간이 되어버린다. 알라나를 향해 치기 어린 질투를 드러내는 개리는 15살의 나이답게 순수하고 귀엽다. 붉게 변해버린 개리의 모습을 알아차리지만 알라나는 잭과 함께 그가 출연한 도곡산 다리 속 오토바이 장면을 재연하기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오토바이의 출발과 함께 떨어진 알라나를 보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개리의 모습은 솔직하기에 더 아름답다. PTA는 두 캐릭터가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계해 감정의 굴곡을 표현했다. 출발선과 도착점이 정해져있지 않던 달리기는 결국 상대라는 목표지점을 설정하고 달려가는 사랑의 어리숙한 모습이 반영되었다. 



리코리쉬 피자가 등장하지 않는 <리코리쉬 피자>

영화 속에는 리코리쉬 피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의 엔딩에 가까워져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달려가는 개리와 알라나만 존재할 뿐이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1970년대를 상징하는 리코리쉬 피자처럼 두 사람의 풋풋했던 사랑이 자신의 유년 시절을 상징한다는 것. 프레임의 왼쪽 방향으로 뛰는 개리와 프레임의 오른쪽으로 뛰는 알라나. 과거 경찰서를 향해 뛰는 알라나와 지금의 모습, 잔디밭에서 알라나를 향해 뛰는 개리와 지금의 모습을 교차편집한다. 핀볼장 안에서 키스를 하는 두 사람은 “안녕” 인사를 나눈다. 모든 조건과 나이에 상관없이 그저 서로를 위해 뛴 두 사람은 시대의 열정적인 모습과 닮아있다. 데이비드 보위의 ‘Life On Mars’ 노래처럼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감정에서부터 발현되고, 리코리쉬 피자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다. PTA가 덧칠한 1973년의 샌 페르난도 밸리의 여름은 싱그럽고 뜨겁고 아름답다. 그렇기에 그들의 조건 없는 어리숙한 달리기가 계속 기억나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은 아트나인 아트나이너로 작성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iframe_url_utf8=%2FArticleRead.nhn%253Fclubid%3D25494727%2526articleid%3D9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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