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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Mar 25. 2022

<컨버세이션>(2021) 김덕중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진심'이 담긴 말들의 숨바꼭질

[씨네리와인드|이하늘 객원기자] 컨버세이션, 왠지 모르게 프란시드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컨버세이션」(1974)가 떠오른다. 진 해크만 주연의 도청을 하면서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공감을 하게 되는 그 영화가. 하지만 김덕중 감독의 <컨버세이션>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들어줄 상대가 없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오프닝 세 명의 여자가 거실 테이블에 앉아있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자신들이 과거에 다녀왔던 프랑스 유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어딘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바람이 빠져버린 풍선처럼 공허함만이 가득 남는다. 극 중의 조은지, 김소이, 송은지 배우는 20분가량의 롱테이크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저 카메라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샷으로 대화를 기록할 뿐이다. 하지만 단순한 샷의 구성에 관객들은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 영화는 대화와 대화 사이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 '컨버세이션'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극 중 은영(조은지 분)이 택시를 타고 가는 씬 또한 마찬가지다. 대화를 거는 대상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때문에 유추할 뿐이다. 어떤 감정으로 이야기를 뱉어내는지. 배우가 대화를 거는 상대가 화면상에 드러나지 않기에 혼자서 독백을 하는 장면처럼 보이는 효과가 생긴다. 지속적으로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말이 대화가 아닌 말인 느낌으로. 영화는 이러한 형식을 지속해나간다. 캐릭터들이 말을 하지만 그 문장은 마치 허공을 떠도는 발이 없는 문장과 같다. 그렇기에 던졌던 말이 다시 튕겨 나오는 듯한 느낌을 지닌다. 특히 은영과 승진(박종환 분)의 씬에서 서로의 마음을 간보려고 하는 영화관 장면이 그러하다. 분명 서로의 진심은 아닌데, 내뱉는 말들은 아프게 하는 말이다. 그 말들은 관계를 정의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고,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 과정인데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것을 배제시킨다.                     


▲ '컨버세이션'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샷들을 살펴보면, 인물들을 프레임에 함께 배치시켜 프레임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 마주 보는 형태로 캐릭터가 배치된 것이 아닌 관객과 눈이 마주친다. 하지만 속사정을 모르는 관객 또한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다. 말과 말들이 뒤엉킨 자리에는 어딘가 숨겨진 ‘진심’이라는 아이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은영과 승진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가 뒤범벅된 채 나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의미 없는 대화의 연속이 아닌 진심을 찾는 과정의 연속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승진은 묻는다. ‘나 어떤 것 같아?’ 진실 게임 속에서 두 사람의 진심은 맞닿아 있음에도 어긋나는 이유는 그 진심이라는 친구를 숨겨두었기에. 허공에 흩날리는 문장들처럼 주워 담기에는 너무 숨겨져 있어서 실제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매일 매일을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나의 진짜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앞서 말한 코폴라의 <컨버세이션>도 도청을 통해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김덕중 감독 또한 일상적인 언어 속에 섞인 진짜를 발굴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시선이 오가는 것 속에서 서로의 대화가 이어지기를. 영화는 이런 식의 구성을 통해서 6명의 배우 조은지, 박종환, 곽민규, 김소이, 송은지, 곽진무 배우의 대화에 주목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다보면 흘러가는 대화들 속의 진심을 발굴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심을 말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날서있기에 쉽게 못 보는 것일지도. 이 영화는 서로의 대화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영화다.



Director 김덕중

Cast 조은지, 박종환, 곽민규, 김소이, 송은지, 곽진무



■ 상영기록

2021/10/09 16:30 CGV센텀시티 4관

2021/10/10 15: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2021/10/11 19: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2021/10/13 2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씨네리와인드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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