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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Mar 11. 2022

<나이브스 아웃>(2019) 라이언 존슨

'Knives out', 범인의 트릭에 칼을 뽑아들다

[씨네리와인드|이하늘 리뷰어] <나이브스 아웃>(2019)은 개봉 이후, 많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로튼토마토 지수에서도 신선도 97%를 위치하며,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신선하다. 재밌는 스토리이다.라는 평점들이 개봉 당시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이 이처럼 미스터리 장르, 탐정이 나오는 장르에 2019년 당시 열광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 당시에 할리우드에서는 화려한 마블이나 sf 장르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 시기다. 하지만 나이브스 아웃은 그 영화들만 화면이 화려하지도 풍성하지도 않지만 스토리의 전개로 하여금 가장 클래식하게 사건의 중심, 도넛으로 관객들을 끌어당긴다. 마치 중력의 작용처럼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사건과 각각의 캐릭터에 집중하여 범인을 풀어나가는 영화인 <나이브스 아웃>에 집중한다. 사실 관객들은 다양한 영화 장르에서 이렇게 스토리에 집중해서 영화를 끌고 나가는 이러한 형태의 장르에 목말라있던 것은 아닐까  


매력적인 탐정의 등장, 우리는 왜 탐정에게 반하는가 

오랜 시간 동안 연재해온 코난이 이번에 극장판으로 <명탐정 코난 : 비색의 탄환>(2021)이 개봉을 한다. 어린 시절, 탐정 장르에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명탐정 코난>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고전 탐정영화들, 셜록 홈스 등을 즐겨보곤 했다. 사건을 파헤치고 제3의 인물로서 용의자를 찾아나가는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 것이, 탐정이라는 캐릭터는 언제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흔히 탐정영화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지금 영화는 다양한 장르물이 나오지만 탐정이 나오는 장르는 고전 장르에 멈춰있다. 하지만 <나이브스 아웃>은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라는 탐정의 등장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파헤쳐 나간다.  탐정은 사건의 현장에서 뛰어난 두뇌와 감각을 겸비한 탐정은 영화 속에서 까칠하면서도 날카로운 이미지로 사건의 최전방에 들어가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탐정'의 사전적 의미는 드러나지 않은 사정을 몰래 살펴 알아내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파헤치지 못했던 진실을 파헤치고 진실에 다가가는 사람이다. 이러한 탐정은 1900년대 초반 소설에서 등장했다. 우리가 흔히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셜록 이미지로 익숙한 셜록 홈스는 고전소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를 통해 명탐정 홈스를 창조해내며 추리소설의 장르의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그의 뒤를 이어 아가사 크리스티 또한 「나일강의 죽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등의 새로운 탐정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코난 도일의 탐정인 '셜록 홈스'와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속 탐정 '푸와로'는 같은 탐정이라도 사뭇 모습이 다르다. '셜록 홈스'의 경우에는 신사 같은 젠틀함과 날카로움, 두뇌의 회전율이 빠르고 증거 위주로 사건을 추리해나간다. 범인의 범행 방식과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범인의 습성 등을 파악하는 현재의 과학수사 방식을 차용한 수사 방식이다. 하지만 명탐정 '푸와로'의 경우에는 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아저씨 같은 캐릭터의 푸근함으로 인간미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다. '푸와로'는 사건을 해결할 때, 인적 수사의 방식으로 수사망에 올라온 용의자들의 인적 사항을 캐묻는 방식으로 지금의 프로파일러 형식의 탐정에 가깝다.


<나이브스 아웃>에서의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는 현재의 프로파일러 형식의 '명탐정 푸와로'의 탐정 방식과 비슷한 수사 방식을 취한다. 가족들을 불러 인터뷰 형식으로 이야기를 듣고 그날의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나간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네가 범인인 것 같아'라는 마인드로 사람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한 명씩 제외한다. 그의 치밀한듯하지만 어딘가 허술한 모습을 보면 '명탐정 포와 조'의 모습과 심히 닮아있다. 007의 대명사 다니엘 크레이그의 지적인 이미지와 반대된 캐스팅으로 더욱 아이러니함을 자아낸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을 어린 시절 읽고 좋아했다는 감독의 취향이 반영된 캐릭터성이 아닐까 싶다.'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의 수사 방식은 인물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수사기법으로 그들의 심리와 행동양식으로 범인을 파악한다. 이를 따라가던 관객들은 마치 탐정이 된 듯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야?"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범인의 발자취, 누가 범인인가 who? 

 죽임을 당한 미스터리 작가 '할란(크리스토퍼 폴리머)', 과연 누가 그를 죽였을까? 하는 관심이 모인다.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할란이 죽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who"라는 것에 관심이 쏠린다. 어떠한 동기로 누가 죽인 것인가. 하지만 영화는 30분이 지나고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가 죽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시작한다. 2시간 분량의 영화에서 30분 만에 범인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나머지 1시간 30분은 범인의 시점에서 범행이 들킬지 말지에 대한 서스펜스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홈 머더, 집에서 일어나는 가족의 살인 사건은 한정된 공간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범인은 이 안에 있다.라는 것과 서술 트릭의 일부인 제일 먼저 배제되는 자 중에 범인이 있다는 특징을 끌고 간다. 러닝타임이 흐르는 중 마르타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며 관객들로 하여금 악의가 없는 마르타에게 감정이 이입되며, 마르타에 대한 신뢰가 쌓이게 된다. 영화는 '이제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가' 하는 '하우더닛(howdunnit)'과 '왜 범죄를 저질렀는가? 하는 '와이더닛(whydunnit)'의 관점에서 영화가 진행된다. 앞서 말한 '누가'에 초점을 맞춘 '후더닛(whodunnit)' 장르의 경우에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지만 '와이더닛'과 '하우더닛'의 경우 조금 더 복잡한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것과 조금 더 연관이 깊다. 현재에 와서는 영화를 풀어내는 방식이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가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전의 범인이 누구인가의 방식에서 조금 관점을 틀어 범인을 미리 알려주고 그 범행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다.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을 통해, 가족 간의 살인이 일어난 공간에서의 가족 간의 불화, 균열과 논쟁을 관객인 우리는 지켜보면서 '할란(크리스토퍼 폴리머)'의 가족보다 가족처럼 그를 아꼈던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라는 이민자 소녀, 이 가족의 외부인에게 조금 더 감정 이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남을 추락시키는 것에서 나오는 검열 

 '할란(크리스토퍼 폴리머)'의 유언으로 인해,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는 모든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그로 인해 그녀는 모두에게 주목의 시선을 받게 된다. 그녀가 이민자라는 사실과 이 집안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으로 할란의 가족들은 그녀에게 여러 개의 프레임을 씌운다. 간병인인데 유산상속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검열을 하고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혹시 자신의 아버지와 부적절한 관계 속에서 유산을 상속받은 것이 아니냐'라는 터무니없는 의견도 끌고 들어온다.  이러한 검열은 누군가를 추락시킬수도 새로운 프레임을 씌워서 나오지 못하게 할수도 있다. 검열이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감옥에 사람을 가두고 칼을 겨누고 있는 것과 같다. 가족들은 그녀를 끌어내리려고 하며, 그 과정 속에서 그녀는 혼란스러움을 가진다. 최근 들어 연예계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폭주기관차처럼 터지고 있다. 하나의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이 이 사건에 벌떼처럼 몰려들어 모든 부분들을 퍼즐처럼 끼워 맞추고 판단을 한다. 이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한 부분을 보고 판단하고 단정을 짓는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방송된 tvn에서 방영된 신작 시사 예능 '알쓸범잡'은 특정 대상을 향한 검열의 위험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방영이 되었다. 박지선 교수는 이에 '가용성 휴리스틱'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여 이야기를 하였는데, 여기서 '가용성 휴리스틱'이란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 모든 정보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눈에 띄는 일부만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뜻한다. 이는 지금의 세태인 하나의 사건이 터지면 거기에 누리꾼들이 달려든다. 일부의 요소로 판단되는 것은 마치 사람의 모든 부분을 무시하고 하나에만 집착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에 대해 가수 윤종신은 '누군가를 추락시키는 것에서 자신의 힘을 느끼며, 검열이란 힘을 과시하는 데서 나온다'라는 발언을 했다.


검열이란 자신의 기준, 선안에서 누군가를 재단하고 판단하는 과정으로 가장 무섭고 날카로운 칼을 뽑아들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가장 조심해야 하지만 최근 들어 터지는 모든 사건들에 사람들은 달려든다. 견고하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을 때, 원래의 모습은 기억하지 않은 채 깨진 유리조각을 자신의 입맛대로 붙이는 것이다. 이미 깨진 것은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 속에는 여러 가지 시선과 판단이라는 새로운 것이 들어와 붙이더라도 제대로 붙지 못하는 것이다.



수평과 수직관계의 전환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에게 쏠리는 관심은 '가족'이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 할란 가족이 감싸고 있던 외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같이 드러난다. 간병인으로 채용된 그녀에게 닿는 시선은 가족 중에 일부로 여겨지는 것이 아닌 수직 관계 속에서의 수평으로 둔감을 시키기 위한 거짓된 시선 속의 일부이다. 자신의 가족 공동체라는 테두리 안에 개인의 이익만을 강조하는 모든 이, 그로 인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할란(크리스토퍼 플리머)'의 진짜 범인은 유산 상속이라는 물질적인 욕구로 인해 핏빛의 욕망을 내보였다. 가장 순수하게 보살폈던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에게 쥐어진 돈은 정당한 것임이 분명하다. 감독은 집이라는 땅, 지반, 영역의 형태에서 '할란의 가족'을 미국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두고,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를 이민자로 두어 미국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디언의 영토를 차지한 역사적인 모습을 비판한다. 그들의 고유한 유산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엔딩 부분에서 '할란'의 집에서 자신만의 담요, 자신만의 머그잔을 들고 '할란 가족'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수평과 수직의 위계질서가 바뀌고 자신만의 관념과 문화로 만들어간 '마르타'의 고유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knives out , 칼을 뽑아 겨눈 곳에 있는 상대 

 '칼을 뽑다', '칼을 꺼내다'의 knives out, 과연 칼을 누가 뽑아서 겨눈 것일까 영화 내에서 할란의 대사를 인용하면, " 랜섬, 참 나를 많이 닮은 놈이야. 자신만만하고 멍청하고 참견 싫어하고, 뒤는 생각도 안 하고 인생을 게임처럼 살지. 그렇게 살면 인생의 차이를 모르게 돼. 무대 소품과 진짜 칼의 차이를" 사실은 칼을 뽑아들고 겨둔 두 상대, 마치 하나의 링 위에서 서로에게 겨둔 펜싱 선수들 같은 그들은 '할란'과 '랜섬'이다. 집을 지키는 수장과 그 집을 차지하고 싶은 손자의 대결, 하지만 인생의 페이지 위에서 진실과 거짓의 균열된 차이를 알고 있는 어른과 어른인척하는 애송이의 싸움은 결국, 자신의 뽑은 칼에 자신이 피를 본 '랜섬'의 싸움으로 끝이 난다. 칼이라는 것은 가장 날카롭다. 자신을 방어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찌를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이 영화 속에서 칼은 인생에서의 자신의 선택과도 비슷하다. 선택이 만들어낸 파장은 자신의 인생의 굴곡선에서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뽑아는 칼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자신의 판단이다. 하지만 '랜섬'이 뽑아든 칼날은 겨누어서는 안되는 상대에게 겨눈 인생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가짜 칼날이었다. 



*씨네리와인드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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