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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Mar 11. 2022

<셔터 아일랜드>(2010) 마틴 스콜세지

정렬되지 않은 기억의 퍼즐, A-Z까지


[씨네리와인드|이하늘 리뷰어]


미지의 섬으로의 도착 

'섬'이라는 공간은 육지와 바다의 경계로서 고립적이라고도 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독립적이라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예로부터 섬은 신비로운 공간, 상상이 가득하게 이뤄지는 공간으로 상징이 되었다. 육지에 비해서 인구수도 적고 가장 작은 공동체를 이뤄가면서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그러한 의미가 부여된 터이다.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영화의 초반부에 배를 타고, 미지의 섬 '셔터 아일랜드'에 도착한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무척이나 폐쇄적으로 보인다. 매우 작은 공간, 그곳을 뒤덮인 안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의 시야에서 무언가 감춰져 있는 진실의 이면처럼도 보인다. 정신병원에서 실종된 환자를 찾는 것, 연방 보완관인 그에게 맡겨진 임무이다. 하지만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이 지닌 이질감은 하나의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섬의 정신병원, 도대체 실종된 환자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억압된 규율 아래서 구역을 나눠서 통제된 정신병원에 수감된 그들의 눈에는 생명력을 찾아볼 수 없다. 생명력이 사라진 그곳에 발을 내린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의 눈에 들어온 환자들은 마치 메마른 토양처럼 생기가 없어진 좀비들과 같다. 

 

"도착"이라는 단어는 뭔가의 종결, 끝과 같은 단어로 들리지만, 우리가 가는 인생의 길에는 종착지가 없듯이 어디론가 발을 내리고 도착을 하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배에서 착륙을 한 그가 마주한 새로운 시작은 흔적을 찾는 일이다. 실종된 환자의 발자취, 하지만 병원 내에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영화는 오프닝에 누군가가 계속 지켜보는 듯한 관전자의 시점으로 뭔가 미스터리에 가득 찬 느낌이 가득하다.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 속 오버룩 호텔에 들어가는 것처럼 신의 시점으로 보는 듯한 버드 아이뷰 앵글의 부감 롱 샷을 쓰면서 셔터 아일랜드라는 빠져나올 수 없는 섬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묘함을 불러일으킨다. 도착을 하고 시선을 마주친 환자들의 주고받는 시선들의 조합은 마치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모두 쏠리는 듯한 시선을 준다. 카메라의 시선과 음향의 효과는 그가 방문한 이곳이 익숙한 공간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수감자들은 전부 그를 응시한다. 



기억의 파편화, 기억의 편집이 가능한가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셔터 아일랜드에 도착해서 이상한 소리와 기억들을 겪는다. 비가 내려 고립된 셔터 아일랜드에서 수감자가 탈출한 사건에 대한 탐색은 뭔가 지워진 것 같은, 맞지 않은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연방보안관인 그는 실종된 수감자 '레이첼'을 찾으려 하지만 잠에 들 때마다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마치 섬광과도 같은 꿈은 자신의 기억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기억 같기도 하다. 이 기억 속에 그는 아내를 만나고 아내는 자신을 끌어안으면서 재로 변한다. 그녀는 계속 테디에게 이 섬을 벗어나라고 외치고, 이 섬의 모든 환자들은 이 섬에서 도망을 가야 한다고 그에게 말을 건넨다. 또한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나치를 죽이는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와 아내에 대한 기억은 카메라 무빙, 달리 인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계속 들어간다. 그의 아내는 레이첼과 앤디스 래디스라는 환자를 찾으라고 계속 말한다.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초반부에 말한 아내가 죽게 된 이유인 아내를 살인한 방화범을 찾으려고 하는 그의 모습과 기억을 보면 관객들 또한 이제 혼란함에 빠진다. 과연 그는 누구를 찾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수사를 하면서 지속되는 이상하게 울리는 사운드 음은 갑자기 사운드가 뚝 끊기거나 웅장해지는 듯한 장황함을 만들어낸다. 수사를 지속할수록 미궁에 빠져버리는 그는 이런 말을 내뱉는다. "여태껏 진실은 한마디도 못 들었네"

 

과연 그가 수사하는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진실은 마치 섬을 뒤덮고 있는 안개처럼 감싸 안고 드러나지 않는다. 미스터리 영화가 가지고 있는 플롯 구조의 변형은 비순차적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어떤 시간대에 이뤄진 것인가하는 혼란스러움과 테디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이 동화가 되는 구조를 가지게 만든다.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와 무리를 지어 다니는 쥐 떼 사이를 돌파해서 지나다니는 그의 모습은 모든 사람들이 테디에게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또한, 섬의 파도와 비는 모든 진실을 쓸어버려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만든다. 그가 수사하던 중에 만난 '하진 의사'는 셔터 아일랜드의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로 그곳의 무자비함에서 탈출을 했다고 말을 한다. 그녀는 정신병원에서 정신병 판정을 받으면 빠져나갈 수 없이 그곳에서 계속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뇌는 공포, 자비심, 수면 등을 조정하는데 이런 뇌 치료를 통해 기억을 없애서 사람을 조정하고 좀비를 만들어내는 셔터 아일랜드의 등대에 대해 말하는데 마치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꿈속에 나오는 전쟁 중 나치들처럼 무자비하게 사람을 통제하고 좀비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과연 통제할 수 있는 것일까, 테디의 사건의 수사 과정은 우리를 등대의 진실의 이면까지 이끌어 간다. 등대의 높은 꼭대기에 숨겨진 것을 파헤치는 것. 동화 속에 나오는 등대의 탑 꼭대기는 매번 부정적인 것을 상징했다. '오로라 공주'의 물레, '라푼젤'의 탑등 그곳에 비극적인 것이 숨겨져 있고, 그 속에서 탈출을 하려고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셔터 아일랜드의 등대도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이 될지 테디의 발걸음을 관객도 발맞추어 걸어들어간다. 그 탑의 꼭대기 위로.


 


1960년대 미국의 정신병 치료

20세기 초는 정신의학에 대한 제대로 된 정립이 되지 않았던 시기이다. 1900년대에는 정신의학이라는 분야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고, 치료를 하지 못하고 아픈 환자들을 이상한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9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정신병 치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그중에서도 '전두엽 절제술'이라는 분야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미국으로 전두엽 절제술이 들여온 것은, 1936년 제임스 와츠 (James Watts) 신경정신과 의사 월터 프리먼(Walter Freeman)의사에 의해 수술이 들여오게 되었다. 이는 전두엽 신경을 절제한 침팬지 실험을 한지 3개월 만에 인간에게 시술된 위험한 실험이었다. 전두엽 신경이 절제된 침팬지의 모습에서 행동과 지적 능력, 즉 폭력성이 많이 사라진 것을 보고 인간에게 시술이 된 것이다. '전두엽 절제술'은 말 그대로 뇌의 일부분인 전두엽을 절제해서 치료를 한다는 명목하에 이러한 치료법이 생겨났다. 이 수술을 하게 되면 폭력적이고 난폭하던 환자가 얌전해진다는 가설이 존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두엽은 인지사고능력을 담당하는 영역으로서 이 부분을 절개하게 되면 환자들의 폭력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좀비가 되어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시계에서 초침이 멈춘 것처럼 그렇게 멈춰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이 수술에 대한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이 수술을 금한다는 여론이 나왔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의학적인 지식이 발전되지 못한 그 시절에 그 수술을 강행했던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를 보면 그 시절의 정신의학에 대한 시대적인 배경과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켄 케시가 1962년에 발표한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잭 니콜슨 주연으로 소동을 피워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살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 보면 맥 머피(잭니콜슨)는 폭력적인 성향을 띠는 이로, 정신병원 내에서는 문제를 일삼는 환자로 등장한다. 이에 병원 측에서는 그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시행하는 것이 영화의 엔딩 부분에 나오게 되는데, 마치 감옥과도 같이 자유를 잃어버린 환자들과 맥머피가 보인다. '맥머피(잭니콜슨)'는 그 수술을 받고, 생명력을 잃은 좀비가 된다. 맥머피는 가장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는 새였다. 그런 맥머피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올라갔다. 뻐꾸기 둥지라는 곳, 즉 뻐꾸기는 자신의 알을 다른 둥지에 낳는 새이다. 이러한 뻐꾸기의 특성상, 맥머피가 뻐꾸기 둥지로 날아가는 새라면 얼마 되지 못해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보호받지 못해 생명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둥지, 집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점으로 보이고, 그 당시의 의학과 사람을 판단했던 행태에 대한 문제점을 사회적으로 꼬집는 것으로 느껴진다. '전두엽 절제술'은 인간에게 행했던 의술로 남아있지만 이것의 비윤리적인 행위가 아닌가에 대한 의문점이 자리 잡는다. <셔터 아일랜드>(2010)에서도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두엽 절제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는 대사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등대에서는 좀비를 만들어낸다는 말과 함께. 그들은 감정의 교류를 할 수 없고, 느낄 수조차 없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은 그러한 정서적인 교류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교류는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작용을 하지만 그러한 곳을 담당하는 '전두엽'을 제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이라는 선을 잘라내버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밀로스 포먼

 

환상 속의 그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기억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일부의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모든 기억을 기억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이 일부 기억이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 부분 부분들만을 간직한 채 살아갈 뿐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아도 극히 일부분, 초등학교 시절의 운동회에서 김밥과 치킨을 먹었던 일들, 부모님이 줄다리기하는 나를 위해 환하게 웃음을 보여줬던 일들의 잔상만이 남을 뿐이다. '기억'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서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기억은 하나의 순차적인 선로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 부분부분 선로가 망가진 곳에 가져와 채워 넣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자신의 아내가 자식들을 익사시켜 죽이고 그런 아내를 자신이 죽였다는 괴물 같은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제2의 자아를 만들어냈다. 자신이 연방보완관이고 정신병원이 있는 셔터 아일랜드로 와서 자신의 아내를 죽인 방화범을 찾는다는 설정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설정들로 자신의 일부 가지고 있던 실제 기억들과 자신이 만들어낸 기억들 사이에서의 모습을 조작함으로써 그 사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괴물로 평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선한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 

  

 영화의 후반부에서 '테디'는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 나서 위의 대사를 말한다. 괴물이라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들 속의 잘못된 부분들을 말할 것이고, 선한 사람이라는 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제2의 자아에서의 연방보안관인 영웅의 캐릭터일 것이다. 설령 그것이 실제가 아니더라도. '테디'는 자신이 괴물이 되는 모습을 보지 않고 자신의 삶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렸다. 파편화된 모든 기억을 다시 재조립하여 탄생한 인물이 되어 실제의 자신은 죽더라도 생명을 연장하는 '전두엽 절제술'은 하지 않았지만 결국 좀비와 같은 인물이 된 것이다. 엔딩 부분에서 결국 모든 미스터리가 풀리고, 의사들이 그의 제2의 캐릭터를 만나며 연극을 한 것이 밝혀졌고 그도 기억을 되찾았지만 다시금 그는 테디로 돌아온다. 그가 치료가 되지 않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어쩌면 자신의 괴물 같은 모습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그 모습을 견디기에는 자신이 너무나 흉측하게 변해있기에, 기억의 파편화된 굴레 안에서 계속 변주하면서 테디 다니엘스라는 모습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씨네리와인드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4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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