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늘 Mar 11. 2022

<보건교사 안은영>(2020) 이경미

요란하고 신비로운 젤리의 세계

[씨네리와인드|이하늘 리뷰어] 어린 시절, 동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종종 해보았다. 동화 속에 나오는 나쁜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 될 거라고.  "이 세상 모든 악당들은 다 나빠! " 하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사실 악당에게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선과 악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모호하게 경계가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어른이 되는 과정 속에서 느끼게 됐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착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악당이 되기도 한다. 그런 악당은 순수한 어린아이들의 눈에는 용서하기 어려운 가가멜 같은 존재이다. 요즘 아이들이 가가멜의 존재에 대해서 잘 알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생각을 해보면 동화가 가장 말이 안 되는 이상하고 요란하고 신비로운 세계이다. 이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꿈을 꾸는 일들의 연속이다.                     


▲ 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


특별하지만 평범함을 꿈꾸는 젤리의 세계 속에서  

가장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인 학교, 학교는 초, 중, 고 10여 년의 시절을 함께 한 나의 성장통 같은 공간이다. 가장 크게 자라나지만 가장 약했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어린 나의 마음에 상처를 낸 가장 순수하지만 가장 숨겨야 하는 아킬레스 건 같은 존재이다. 아킬레스 건은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의 치부이자 가장 상처 어린 나의 그 시절 가장 아끼는 모습 중에 하나이다. '은영' 역시 자신만의 세계, 자신만의 아킬레스건이 있다. 요란스러운 젤리들을 보는 그녀의 삶은 무척이나 소란스럽다. 그러한 소란함 속에서 그녀는 마블에 나오는 이렇다 할 영웅이라기보다는 우리 삶의 밀접한 곳에서 가장 따뜻하게 마음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보건교사라는 직업도 그렇다. 고등학교 시절, 매번 소화불량이던 나는 점심시간만 끝나면 양호실로 달려가 소화제를 타곤 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그리 강하지 않았던 터라 걷다가 잘 넘어져 무릎에 작은 생채기를 내 부모님을 걱정시키기도 하고, 약을 달고 살았던 시절이 있다. 그때 보건실은 보호막 같은 존재였다. '은영'이 한문교사인 '인표(남주혁)'의 순수한 기운에 다시 힘을 얻는 것처럼 나에게는 보건실의 공기와 먼지, 하얀 베드가 그러했다.  


이 작품은 정세랑 작가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미스홍당무>, <비밀은 없다> 등의 이경미 감독이 연출을 맡아 구현해낸 세상이다. 요상하지만 사랑스러운 '은영'의 캐릭터는 보면 볼수록 인간미가 넘친다. 하지만 '은영'은 무척이나 외로운 인물, 그녀는 세상의 젤리들과 싸우지만 친구도 사랑도 잘 모르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는 한문 교사인 '인표(남주혁)'을 만나게 되면서 학교 안의 소동들을 같이 해결해 나간다. '은영'은 누구보다 특별하지만 누구보다 평범함을 꿈꾸는 이다. 그녀는 남들은 보지 못하는 젤리라는 이상한 형체의 무언가와 죽은 이를 보는 능력을 가진다. 누군가에게는 '은영(정유미)'의 그것이, 능력으로 여겨지지만 그녀에겐 보기 싫지만 매번 마주해야 하는 세상이다. 그녀에게는 젤리들을 무찌를 수 있는 무기가 존재한다. 바로, 비비탄 총알과 장난감 칼. 물론, 이 친구들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게임에서 보면 능력치나 레벨이 존재하듯이 이 무기들도 '은영'을 지켜주지만 어느 정도 능력치를 사용하면 멈춰버린다. 사람과 같은 이치다.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사용하면 기계든 사람이든 멈춰버리는 것 같은 이치이다. 그녀는 이 무기들로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젤리들을 무찌르고 없앤다.  



가장 순수한 학교, 그 안에 자리잡은 어둡고 습한 지하실 (feat. 6개의 에피소드) 

이 작품은 총 6개의 에피소드로 나뉘어져 있다. 키워드를 나눠서 설명해볼 수 있는데 총 3개의 키워드로 나눠진다. 사랑, 우정,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첫 번째 키워드인 1,2화는 오프닝 장면에 어떤 학생이 고백을 하려는 장면으로 시작을 하면서, 진행된다. '해파리 성아라'를 좋아하는 '오승권'은 그녀에 대한 마음을 품어오지만, 고백을 하지 못한다. '오승권'은 목덜미가 부어올라 빨갛게 부어오르는데 지하실에서 나온 젤리로 인해 목이 물려 그렇게 된다. 그 목덜미에서 나오게 된 하트젤리, 사랑하는 마음은 어떠한 시기에 생겨나는 게 아니라 갑자기 생겨나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 마음의 크기는 마치 충동적인 에너지와 같고, 그 에너지는 넘쳐흐른다. 누군가를 연모하는 마음,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닿는 곳에 악의 기운이 생겨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인정받지 못할 때, 생기게 되는 상실감이다.  


과연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 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


두 번째 키워드인 3,4화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친구 두명이 마치 남매처럼 너무나도 연결되어 있어 그 연결고리인 머리카락을 끊어주는 내용이다. '혼란'과 '럭키'는 서로에게 너무나 절친한 친구이다. 그 둘은 항상 붙어 다니고 떨어지지 않는다. '럭키'는 이름 그대로 운이 넘치는 친구고, '혼란' 또한 이름 그대로 혼란스러운 친구다. 둘이 붙어다니면서 치는 사고는 생각보다 더 큰 결과를 낳는다. 그런 둘을 보고 말을 하는 '은영' " 저렇게 붙어다니면 안좋은데.." 친구란 학생시절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나의 가장 내밀한 속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개인의 영역이 사라지고 친구들끼리 너무 의존하다보면 개인으로서 설자리가 부족해진다. 친구는 나와 같은 길 위에서 같은 시기에 같이 걸어가는 존재이다.  '나'로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3,4화 에피소드에서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과연 친구의 존재, 우정이란 무엇일까?                     


▲ 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


세 번째 키워드인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은영의 죽은 친구 강선과 옮을 먹는 백혜민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다. 생을 반복하는 옮을 먹는 혜민과 죽음을 맞이한 은영의 친구 강선, 사실 삶과 죽음은 순환되어 있는 구역이다. 건설업체에서 일을 하다가 죽은 강선과 조선시대부터 생을 반복해서 이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혜민은 '은영'의 마음 속에서 가장 슬픈 마음이 된다. 소멸해야 하는 그와 삶을 반복해야 하는 그녀, 결국 '은영'은 친구는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혜민'에게는 수술을 통해, 새 삶을 주고자 한다. 생이 시작되면, 죽음이 반복되듯이 삶과 죽음은 떨어질 수 없는 영역이다. 옮을 먹는 학생은 계속 태어나는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 삶을 선택해 이후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죽은 은영의 친구는 소멸되어 새로운 생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에피소드는 이렇게 6개로 나눠져 있지만 가장 큰 덩어리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한 마음에 감정들이 붙어서 젤리들이 생겨나는 것이고, 그 젤리의 세상을 보는 것은 은영의 몫이다. 



과연 생과 사의 굴레는 어디쯤일까?   

                  

▲ 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


어두컴컴하게 자리 잡은 어둠 사이로 책상 아래 몸을 파고든 채, 울리는 야자의 종소리를 듣고 깨어보면 어느새 밤 9시, 10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하루종일 책상 의자에 앉아 있어 굽어버린 허리를 피려 소리를 내다보면 우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책상에 있는 샤프가 굴러 떨어지고 옆자리로 보이는 퀭한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그런 시절과 공간을 함께한 학교는 나의 가장 어린 마음이 성장한 공간이자 가장 치열했던 감정의 한 구석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가장 주요한 공간인 학교는 그렇게 학생들의 공간이다. 원작 소설의 작가인 정세랑 작가가 학교로 설정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존재할 테지만, 학교는 가장 순수하고, 우리가 아직 자아를 모두 성립하지 못한 시기에 있는 학생들이 있는 공간이기에 설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공간에서의 기운은 가장 때묻지 않은 기운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학교 지하실은 그런 기운에서 가장 내면에 숨겨져 있는 어두운 공간을 의미해서 그곳에서 젤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의 마음은 겉보기에는 선함을 보여줘야 하지만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악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지하실은 어둡고 음침하며, 끝없이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 습한 공간이다. 학생들의 가장 내밀한 어두운 마음이 숨겨져 있는 악한 마음과 싸우는 '은영, 은영의 눈에 보이는 젤리의 세상은 이상하면서도 기묘하다. 그 신비로운 세상 속에서 보는 젤리의 세상은 마냥 아름답지는 않지만 무척이나 동화적이다.  



이제 나는 젤리의 세상이 무섭지 않아요!  

'은영'은 학교 내의 검은 세력과 맞서 싸운다. 젤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더욱 속마음을 알아채기 쉽지 않다. 작품의 엔딩 부분에서 드러나는 일광과 화수 언니의 정체! 믿었던 사람의 배신은 관객들에게도 큰 충격을 준다. 은영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었던 화수 언니는 지속적으로 은영의 옆을 지키는 존재지만, 이후에 그녀가 은영을 학교로 가게 한 이유를 듣는 순간 은영만큼의 배신감을 관객도 느끼게 된다. 은영의 세계 속에서. 젤리란 눈에 보이며, 여러 가지 형체로 존재해서 물리칠 수 있는 동화적이고 어쩌면 환상적인 존재지만, 현실 속에서의 젤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은영조차도 그것들을 물리칠 수 없게 만들었다. 오히려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는 젤리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내게 숨겼나요?" - 은영 


은영이 바라보는 젤리의 세상은 과연 무엇일까? 6화가 되어 은영은 평생 동안 봐오던 젤리가 안 보이는 시점이 생긴다. 그 이유는 뭘까? 젤리를 보는 '은영'은 누구보다도 순수한 존재다. 누군가에게 곁을 주기 힘들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필요성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함께 생겨난 해프닝을 해결해가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과 자신의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낼 줄줄 아는 어른으로 다시 성장한 것이다. 흔히 어린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그만큼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기에 그러한 신비롭고 이상한 것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은영'의 마음은 누구보다 순수했지만 어른으로 성장했다 


"평범한 것이 좋아요" - 은영 

"나쁘지만 않으면 이상한게 좋아요"- 인표                     


▲ 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


그들의 이 대화는 요상하다. 평범한 것이 좋다는 은영과 나쁘지 않다면 이상한 게 더 좋다는 인표, 바라보는 관점, 시선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젤리의 세상을 보는 은영은 '평범함'을 꿈꾼다. '은영'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제 감당하기 힘든 젤리의 세상이 아니라 같이 맞서 싸울 사람이 있는 요상한 세계이며, 형형색색의 빛이 튀어올라 자리 잡은 요란하고 신비한 세상이다. 누군가, 나의 삶에서 나의 세계를 같이 봐줄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맞서싸우기에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씨네리와인드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4795


작가의 이전글 <셔터 아일랜드>(2010) 마틴 스콜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