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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Mar 12. 2022

<소공녀>(2018) 전고운

행복이 뭐 별거 있나요? 별거 없음이 별거가 되는 세상 속에서



▲ '소공녀' 포스터.  © 광화문시네마


[씨네리와인드|이하늘 리뷰어] 소설 소공녀는 세라가 아버지를 출장을 간 아버지를 기다린다. 그런 아버지를 기다리며 그는 상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이 소설은 상상의 세계를 꿈꿨던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나는 공주야. 공주처럼 품위를 지킬거야”  


아버지의 죽음으로 ‘거지 고아’가 된 세라. 세라의 상상의 세계는 고되고 힘든 현실을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동화와 현실의 간극을 좁힌 세라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가질 수 있었던 행복이었다. 어린 시절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왜 동화 속의 주인공은 현실 속에서 도피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이건 도피가 아닌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하나의 마법 지팡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소공녀를 보고 영화 <소공녀>의 이야기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위스키 한잔할래요? 

‘위스키’는 상류층의 술이었다. 서민들이 흔히 접하기 힘든 술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주로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에 삼겹살을 먹으면서 삶의 고된 현실을 견뎌내고는 했다. 그 현실은 소주 한잔의 쌉쌀함으로 채워졌다. 술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보내주는 어쩌면 그들에게는 마법의 묘약이었다. 하지만 영화 <소공녀> 속에서의 ‘미소(이솜)’은 집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홈리스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홈리스고 조금 동화적으로 말하면 주거공간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한 명의 유랑자다. 그녀는 가사 도우미일을 하며, 한잔의 위스키, 담배 한 갑만 있다면 하루의 행복을 느끼는 이이다. 위스키의 독함은 목을 강타한다. 40도가 넘는 그 독한 술은, 그 알딸딸함은 현실 세계에서 온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하나의 소소한 행복이였다.                     


▲ 소공녀  © 광화문시네마


담배의 연기처럼 날아간 뿌연 나의 미래, 하지만 나는 상관없어 

‘현실’은 뭘까? ‘현실’은 내 생각에 버텨내고 살아내는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어둠이고 미래는 아직 보이지 않는 빛이다. 그 중간 사이에 산 현실은 오늘이고 지금의 시간이다. 현실은 곧 과거가 된다. 우리는 과거에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실 과거를 판단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도 기억의 왜곡이 된다. 담배의 연기는 매번 영화 속에서 환상으로 가는 문이 되었다.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미소는 집에서 지내다가 월세를 낼 돈이 없어서 쫓겨난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하나의 캐리어뿐. 친구의 집을 전전하고 남자 친구인 ‘한솔’과의 연애를 하지만 그녀는 현실을 마구 비관하지는 않는다. 고된 현실의 벽이 그녀를 계속 밀어붙이는데도 그녀는 그 벽이 막힌 곳으로 가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 사실 길이라는 게 하나만 있지는 않으니. 



캐리어,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것을 고른다면 

당신은 캐리어 안에 무언가를 담을 수 있다면 무엇을 담을 것인가 나는 음.. 사실 크게 생각나지는 않지만 노트북과 에어팟은 꼭 챙길것이다. 영화를 보는것, 글을 쓰는 것, 노래를 듣는 행복을 포기할수는 없기에. 그 행복은 시간이 지나도 내 추억 속 캐리어에 담기게 될 것이다.                     


▲ 소공녀  © 광화문시네마


영화 <소공녀> 속의 ‘미소’의 모습은 소설 <소공녀>의 세라의 모습과 무척이나 비슷하다! 마법의 주문을 외워 자신의 삶 속에서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것. 사실 우리가 물질적인 행복은 채울 수 있더라도 정신적인 행복을 채울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당당하게 그럴 수 있다고 외칠 수 있는가. 그 대답에 대해서는 나는 당당하게 대답을 할 수는 없다. ‘미소’라는 이름처럼 그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행복의 깊이를 총량 한다면 사람마다 깊이를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 깊이로 파악하는 것보다는 색깔로 보는 게 더 좋을 것이다. 감정은 어느 정도의 폭으로 가지고 있느냐보다 어느 정도의 진함의 강도로 파악하는 편이 더 좋을 테니까. 나의 색은 초록색이려나  



’미소’의 선택은 옳은 걸까 

영화의 제목만큼이나 ‘미소’가 추구하는 행복이나 모든 것들은 마치 현실에는 없는 것 같은 환상처럼 보인다. 집도 가지고 있지 않은 채, 직업도 고정적이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전고운 감독이 그려내는 미소의 모습은 마치 없는 가상의 캐릭터 같다. 맞다. 사실 영화 속의 모든 캐릭터는 가상이다. 하지만 미소가 현실의 인물과 맞닿아있고 우리가 그 캐릭터에 이입을 하는 이유는 현실과 동화의 간극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미소가 욜로(YOLO)만을 추구하는 인물이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하여금 돈을 벌고 하루의 마지막의 끝자락에서 행복을 즐기는 모습은 마치 우리의 삶의 미시적인 형태와 비슷해 보인다.                      


▲ 소공녀   © 광화문시네마


사실 영화 <소공녀> 속 ‘미소’가 추구하는 모습은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담배 한 갑과 위스키 한잔이지만 우리의 삶으로 빗대어 거시적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는 즉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는 우리의 삶에서 소소하게 우리가 행복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게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미소’의 남자 친구 ‘한솔’이나 주변 친구들을 보면 어느정도 미소보다는 경제적인 우위에 있지만 행복한가?라고 말하기에는 거리가 있다. 그것을 조금 더 큰 개념으로 보았을 때 우리의 삶 속에서 뭔가의 행복의 피라미드를 만든다면 어쩌면 행복이라는 것의 가장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적인 요소가 아닌 개인의 정신적인 자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몹시도 추상적이고 묘하게 끌리는 아름다운 단어다. 아름다움이나 끌리는 단어도 뭔가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 어려운 느낌이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게 다들 다를 테니까. 행복은 순간의 감정이다. 순간의 영원성을 바라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미소의 선택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다. 그저 선택은 자신의 몫일뿐. 


당신이 500ml 병에 행복을 채운다면 그 색은 무슨 색일까? 노란색, 파란색, 핑크색 그 색은 여러분이 판단하길 바란다! 



*씨네리와인드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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