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택배가 온다. 필요한 생필품을 대부분 현지에서 조달하고 있지만, 쓰던 제품을 꼭 써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화장품을 들 수 있는데, 건성의 예민한 피부를 가진 나는 화장품을 바꾸면 꼭 트러블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때는 유행하는 화장품을 친구 따라 사 봤고, 생일 선물로 받은 화장품을 써 본 적도 있었다. 몸 상태가 좋을 때는 잘 넘어갔지만, 조금이라도 안 좋은 날은 여지없이 탈이 났다. 피부과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은 후에야 트러블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일본에서 새 화장품을 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드럭 스토어와 쇼핑몰 진열대를 화려하게 채우고 있는 영롱한 화장품들이 내게는 그저 빛 좋은 개살구 일 뿐인 것이다.
한국어로 쓰인 책도 마찬가지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는 책 읽기가 취미이다. 한국에선 학교 도서관, 지역 공공도서관, 서점을 방문해서 책을 빌리고 사서 읽었다. 나 역시 관심사에 따라 여러 종류의 책들을 동시에 읽었기에, 책을 사고 빌리는 일이 중요했다. 일본에 오기 전부터 가장 크게 고민한 부분이 바로 책일 정도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어 까막눈인 우리 모자(母子)에게 일본의 수많은 책들은 역시나 빛 좋은 개살구였다.
결국 한국의 어머니 집으로 일본에 있는 내가 생필품들을 주문했다. 어머니는 시기를 달리해서 오는 택배들을 모아두셨다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일본으로 보내주셨다. 내가 주문한 물건과 주문하지 않은 물건까지 다 담으셔서. 비행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넌 택배가 오는 날이면 나는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상자 안에 든 물건이 무엇일지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택배상자를 받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아니라 이웃에게 택배를 부탁할 일이 생겼다. 멸치와 김, 미역과 같은 건어물을 생협 조합원인 이웃에게 대신 사달라고 해서였다. 흔쾌히 부탁을 들어준 이웃에게 감사하면서 박스가 올 날을 기다렸다.
딩동. 매번 우리 집에 오는 우체국 직원분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문 앞에 서 계셨다. 인터폰으로 얼굴을 확인한 아이가 뛰어가서 문을 열었다. 상자는 아이 혼자서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도대체 뭘 넣었길래, 이렇게 큰 게 왔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택배상자를 열었다.
세상에! 상자 안에는 나의 육아동지이자 이웃사촌인 네 사람의 마음과 사랑이 담뿍 담겨 있었다. 한 사람에게 부탁한 택배 상자를 네 사람이서 준비했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기분이 또 달랐다.
먼저 생협 조합원인 A가 내가 주문한 건어물과 천연조미료들을 받아서 정리했다. 그러자 B가 우체국 택배상자를 가져와서 주문한 물건들을 넣었다. B가 상자를 가져온다는 소식에 나는 또 다른 생필품들을 B의 집으로 보냈고, B는 그 물건까지 다 정리해서 넣었다. C와 D가 합세하였다. 그녀들은 내가 주문하지 않은 과자(한정판으로 나온 과자와 내가 먹고 싶어 한 과자)와 봉지라면(스낵면과 짜파게티, 비빔면을 골고루)을 사서 박스에 넣었다. 김치, 고춧가루 운운했던 내 이야기가 생각났다면서 C가 김치양념장을 만들어서 진공포장 후 꽝꽝 얼려서 넣었다. 그것도 세 봉지나. B가 박스를 A에게 전달했고, A는 박스를 우체국 직원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네 사람의 손을 거친 택배 박스가 후쿠오카에 온 것이다. 박스에 가득 담긴 그녀들의 마음씀씀이에 순간이나마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무언가를 부탁한 일이 언제였던가 싶었다. 아니, 가족에게 조차 나는 무언가를 잘 부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 된다는 생각이 뼛속까지 새겨진 사람. 누군가에게 민폐가 될 만한 일은 사전에 차단해 버리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가리켜 누군가는 책임감이 강하고 독립심이 있다고 했으며, 누군가는 냉정하고 쌀쌀맞아 보인다고 했다. 반면 나는 누군가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거절하는 일이 불편해서 누군가의 부탁이나 제안을 쉽게 수용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나였기에 그녀들에게 택배상자를 부탁한 일은 택배상자의 무게를 넘어서서 꽤나 어렵고 큰 일이었다. 그녀들이 나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은근한 기대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그녀들을 꽤나 신뢰하고 있었고, 의지하고 있었으며, 나의 벗이자 다정한 이웃으로 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부탁'을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내가 그녀들을 좋아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사랑이 떠난 뒤에 사랑을 알게 되었다는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처럼 후쿠오카에 오고 나서야 상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인지, 큭.
상자 속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라면은 라면끼리, 건어물은 건어물끼리, 한국어로 된 책은 책장 한편에 모아 두었다. 그리고 슈퍼에서 무를 사 와서 양념장을 넣어 깍두기를 만들었다. 음식 솜씨가 좋은 그녀가 만든 양념장은 깍두기의 풍미를 살게 했다. 갓 지은 밥과 함께 먹으니 밥과 김치가 전부 달았다.
나의 다정한 이웃들과 가족이 보내 준 택배상자들. 그 택배만큼 나도 넉넉한 마음으로 그녀들에게, 가족에게 무언가를 보내고 싶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탁받은 일을 거절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지면서.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담긴 상자를 주고받다 보면 내 마음의 크기도 더 크고 단단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