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라고.

by sunzero

그동안 일본 여행을 몇 번 했지만 내가 아는 일본 문화나 생활은 대부분 만화책과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배운 게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이 되지 않던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지금처럼 유튜브를 통해 일본여행 브이로그를 보거나, 틱톡이나 트위터로 실시간 유행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건 비디오 대여점의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던 만화책을 대여해서 읽는 거였다.


그렇다. 나는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어.”라는 대사로 유명한 <꽃보다 남자>를 만화책 <오렌지 보이>로 먼저 접한 세대이다. 종이 지면에 납작하게 눌러있던 츠카사(더 정확히는 '황보명'으로 만났다.)가 곱슬 거리는 파마머리를 한 입체적 인물 구준표로 브라운관에 나타났을 때, 세상에 츠카사가 말을 하는구나, 하고 놀랐고, 내가 읽은 <오렌지 보이>가 해적판이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으니까. 뭐, 그렇게 읽은 만화책들이 그 책뿐이겠냐 만은.


그렇기에 후쿠오카에 와서 ‘라멘’을 먹었을 때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에서 포뇨와 소스케가 먹는 밥에 올려진 분홍색 고기를 만화적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인지 라멘 위에 분홍색 고기가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심야식당>, <고독한 미식가>에는 하루 묵은 카레가 맛있다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식당 중 ‘100시간 카레’라는 곳이 존재했다. <러브레터>를 비롯한 이와이슌지 영화나 <너에게 닿기를> 풍의 순정만화에는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남녀 학생이 나오는데, 이 역시 편의점만큼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읽은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에선 접한 내용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상상력에서 나온 게 아니라 실생활을 바탕으로 한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진짜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최근에 겪은 일로 갈무리해 보고자 한다.


후쿠오카에 와서 좋은 점 중 하나는 푸른 하늘과 날씨이다. 내가 살던 부산보다 연중 기온이 높고, 황사가 없어서 봄철에도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니 진짜 쨍한 하늘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산책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구름을 살펴보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정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있었다. 날씨와 기후, 지형이 구름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적 지식이 없지만 이제까지 본 구름과는 모양이 달랐다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지평선에 맞닿아서 길게 늘어선 구름들, 아이스크림 콘을 잘라 놓은 것처럼 높이높이 쌓인 구름들, 실타래처럼 흩어지는 구름들, 형이상학적으로 생긴 구름까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에서 본 구름들이 또 한 번 화면을 뚫고 나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 감독은 저런 하늘을 보고, 그런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구나. 나는 산책길에서 이런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리고 구름 사진을 찍으면서 나만의 구름 컬렉션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날씨가 점점 더 더워졌다. 뭉게구름들을 뚫고 햇볕들이 직선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만화책과 애니메이션들이 소환되었다. 쨍한 햇볕 아래에서 흰 티셔츠를 입고 바다를 뛰노는 소년, 소녀들. 까르르 거리는 웃음소리. 바람 곁에 흩날리는 긴 생머리카락과 싱그러운 표정들. 나는 청춘영화의 엔딩 장면이 실사로 재현되기를, 일본의 한 여름이 만화처럼 펼쳐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간과하게 있었으니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에는 ‘습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거였다. 연애를 줄글로 배운 사람처럼 문화를 화면으로 습득한 나의 한계는 여기서 드러나고 말았다. 일본의 여름은, 그러니까 후쿠오카의 여름은 너무너무 더웠다. 며칠 전에도 더웠고, 지금도 더우며, 내일도 더울 예정이었다. 35도의 기온이 38도 이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습도가 존재하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흐르고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날씨. 그때서야 나는 여름에 일본 여행을 기피한다는 인터넷 글을 본 게 떠올랐다.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오전 시간에는 대부분 집에 있게 되었다. 그러다 외출을 하게 되면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선크림을 얼굴과 목에 덕지덕지 바르고, 양팔에 토시를 착용했다. 팔 토시라니. 한국에서는 전혀 하지 않던, 왠지 뒷산이라도 올라야 할 것 같은, 그 촌스러운 스포츠용 팔 토시를 스스로 끼고 있다니. 지인들이 보면 놀릴 것 같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맨살이 햇볕에 노출되면 까맣게 타는 것은 고사하고 따갑고 쓰릴 정도니까. 이건 패션이 아니라 살기 위한 생존필수템인 것이다.


그렇게 지금 나는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가고 있다.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에서 봤던 상큼한 여름 대신에 팔토시를 하고서. 기미가 생길까봐 선크림을 두 번, 세 번 바르면서. 그럼에도 이 여름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내가 이곳에서 보낼 처음이자 마지막 여름이기 때문일 것이다. 밈이 되어 버린 그 문구를 미래의 나는, 2024년의 여름을 추억하면서 쓰고 있지 않을까?


여름이었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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