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쇼핑몰 화장실에 있었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미장원에 다녀온 직후였다. 앞 머리카락을 잘라준 건 좋은데, 옆 머리카락은 왜 이렇게 자른 건지. 층 하나 없이 똑같은 길이로 자른 옆 머리카락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리다가, 그래도 이 정도면 깔끔하고 단정하지, 뭐, 하고 애써 위로를 하고 있었다.
삐삐삐, 삐삐삐삐.
순간, 화장실 안의 모든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머리카락이 쭈뼛서도록 만드는 위협적이며 신경질적인 소리였다. 손을 씻고 있던 여자, 화장을 하고 있던 여자, 옷을 고쳐 입던 여자들이 일제히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그녀들처럼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긴급재난문자]
긴급 지진 속보: 강한 흔들림에 대비하십시오. 침착하게 주위의 안전한 장소를 찾으십시오. (일본 기상청)
지진이었다. 재난문자를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투정 부리던 머리모양 따위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지금 여기 혼자 있는데. 이 쇼핑몰에서 가장 가까운 대피소는 어디지? 사람들을 따라가면 되나. 일본어도 안 되는데 안내방송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짧은 순간동안 진짜 백만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더불어 속이 쓰리면서 위액이 역류하는 게 느껴졌다. 긴장하면 나오는 습관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손에 꼭 쥔 채 심호흡을 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고는 주위를 살펴봤다.
화장실 안의 여자들은 스마트폰을 확인하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쇼핑몰도 이전과 똑같았다. 옷 가게에는 손님과 점원이 옷을 고르고 있고, 카페에는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커피와 케이크를 먹고 마시는 중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지만 크게 목소리를 높이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다.
뭐지? 이들은 왜 이렇게 침착하지? 그러고 보니 재난문자는 받았지만 쇼핑몰이 지진의 여파로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땅이, 건물이 흔들리는 걸 느끼지 못했다. 괜찮다. 여기는 안전하다. 그런 생각들을 암기과목 외우듯 스스로에게 주입시켰다. 아니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집에는 남편과 아이가 있었다.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괜찮아?”
남편이 전화를 받자마자 외쳤다.
“지진문자 받았지? 쇼핑몰은 괜찮았는데. 집은?”
“엄마~ 우리 집이 흔들렸어.”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가 수화기를 빼앗아서 말했다.
“진짜? 많이 놀랐지? 괜찮아?”
“내가 에그박사 책에 스티커 붙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닥이 막 움직였어.”
아이의 목소리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엄마, 어디야. 빨리 집에 와.”
“응, 엄마 얼른 집에 갈게.”
남편과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곤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멘션이 조금 흔들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도 놀랬지만 침착하게 잘 대응했다고 말이다.
지난 4월에도 후쿠오카에 지진이 왔었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재난안내문자가 왔었다. 삐삐, 삐삐삐삐. 사정없이 울리던 알람소리에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었다. 안내 문자가 오고 몇 초 후에 집이 흔들렸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바닥에 얼른 주저앉았다. 꿀렁꿀렁. 바다 위에 있는 작은 배처럼 집이 흔들렸다. 바닥이 흔들리고, 벽이 흔들리고. 몇 초 안 되는 시간이 몇 분인 것처럼 길게 느껴졌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쇼핑몰 밖으로 나왔다. 아직 오후의 햇볕이 머리 위에서 작열하고 있었다. 뜨겁고 뜨거운 햇볕은 지진 따위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힘을 자랑했다. 양산을 든 사람, 모자를 쓴 사람들이 길을 지나갔다. 도로 위에선 자동차들이 어딘가로 달려갔다. 쇼핑몰 안이나, 밖이나 사람들의 행동은 침착했고 단정했다.
같은 문자를 받고, 같은 일을 경험했는데 왜 이토록 다른 것인지. 이곳에서 나고 자라서 살고 있는 이들은 재난을 일상으로 경험하기에 무디어진 것일까. 어릴 때부터 대피 훈련을 받고, 재난 교육을 받으며, 대피소 위치를 숙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저 흘러가는 일상일 뿐일까. 누구에게 묻지도 못하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버스를 탔다.
버스 안은 시원했고,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서 창밖만 쳐다봤다. 그들과 함께 창밖을 보다가 생각났다. 아니다. 그 누구도 자연재해 앞에서 초연할 수 없다.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기에 무력해질 뿐이다. 무력해지지 않으려고 신사를 가고, 절에 가며, 사당을 짓고, 부적을 만들며, 주문을 외울 뿐이다.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신사와 절과 사당과 무당과 부적과 회당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애써 담담한 척 하지만 그들도 나처럼 불안해하고 있겠지. 긴급재난안내 문자를 아무리 빨리 전송한다 해도 자연재해를 막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나 혼자 애쓰는 게 아닌 것 같아서, 나 혼자 떨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서.
그렇게 집에 왔다. 일본 뉴스와 언론은 긴급재난방송을 편성해하고 있었다. 미야자키 현 앞바다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일어났고, ‘난카이 해곡 지진 임시정보(거대지진 주의)’를 발표했다.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에선 지진 발생 후에 쓰나미가 올 수 있으니 가구 고정 및 대피 경로 확인 등 지진대비를 점검하라고 했다.
밤이 늦도록 지진 관련 뉴스를 찾아보다가 잠이 들었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아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상상력을 자르기 위해, 허공에 대고 가위질을 했다. 잘못된 상상력이 공포를 만든다고 수전손택이 말했던가. 언젠가 읽은 책 구절을 떠올리면서 나는 이번에도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덥고 긴 여름밤을 보내고 다시 아침이 왔다. 밤 사이에 여진은 없었다. 오늘도 햇볕은 쨍쨍 내리쬐고 높은 습도는 숨을 막히게 한다. 저 멀리 보이는 흰 구름은 야속하도록 아름답다. 어제의 긴급재난문자는 어제로 끝인 걸까. 내가 후쿠오카에 있는 동안 나는 몇 번의 긴급재난문자를 더 받게 될까. 부디 바라는 것이라면 부산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안전하게 지낼 수 있길. 지진으로 인해 이곳 사람들이 피해받는 일이 없길. 작지만 큰 기도를 간절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