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의 추억

by sunzero

긴긴 여름방학을 끝내고 아이가 개학을 했다. 무려 두 달이 넘는 기간이었다. 국제학교의 방학은 원래 이렇게 긴 건지, 처음에는 방학이 길어서 좋다던 아이도 나중에는 지쳐서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할 지경이었다. 같은 멘션에 사는 한국인 친구는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갔고, 그나마 연락이 되던 몇몇의 일본인 친구들은 일본 소학교에 입학해서 단기간이나마 학교를 다닌다고 했다.(소학교가 방학하기 전까지 다닐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인 친구뿐 아니라 한국인 친구 중에서도 그렇게 단기로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미국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들도 본국으로 돌아갔다. 길고 무더운 후쿠오카의 여름을 피해서 어디로든 떠난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의 첫여름방학이자 마지막 여름방학이었기에 일본에 남는 쪽을 선택했다. 계획은 창창했다. 장기 여행을 떠나고 싶고,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책을 읽고도 싶었고, (아이는 내키지 않아 했지만) 그동안 못한 공부(내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한국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공부해야 한다)를 더 보충하자고도 했다. 그중 몇 개는 실천을 했고, 몇 가지는 계획으로 끝났다.


먼저 여행을 다녀왔다. 국내선을 타고 ‘오키나와’로 말이다. 7월 초 5박 6일간의 여행이었다. 해안도로를 달려서 오키나와 북쪽의 츄라우미 수족관에 가서 ‘고래상어’를 봤다. 천장까지 닿은 큰 수조에서 고래상어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에 감탄과 경탄이 저절로 나왔다. 내 머리 위에서 헤엄치는 고래상어는 헤엄을 친다기보다는 하늘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래상어 주위에서 함께 유영하는 가오리들도 보았다. 날개를 쭉 펴고 활공하는 독수리처럼 몇 번의 날개 짓으로 바람과 파도와 물을 가르며 수영을 했었다. 유리 수조 아래에서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얼마만큼 하찮은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러다가 저 유리창을 깨서 바다로 저들을 돌려보내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다시 그러면 내가 이렇게 고래상어를 못 보겠지, 하는 아쉬움이 들다가. 마음이 수초처럼 흔들흔들거렸다. 커다란 등딱지를 가진 바다 거북이와 귀여운 펭귄, 수면 위로 날렵하게 점프하는 돌고래도 봤다. 언제 가도 좋은 수족관이었다.


나하 시내의 국제거리를 거닐고 남쪽으로 이동해서 슈리성에도 다녀왔다. 햇볕이 너무 쨍쨍해서 정수리가 따가운 날이었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발갛게 익고, 등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슈리성 돌담길의 풍경은 좋았다. 오키나와에 얼마 안 남은 류큐왕국의 문화재였는데, 국제거리에서 방문했던 도자기박물관에서 본 인터뷰가 생각나기도 했었다. 일본 도자기가 아니라, ‘오키나와’ 도자기라고 말하는 인터뷰어의 말은, 이곳이 지닌 역사적, 정치적 상황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몇 년 전에 오키나와 출신 소설가와 대담을 했었는데, 그때 생각이 나기도 했고 말이다. 역시나 일본어가 아니라 ‘오키나와 언어’로 글을 쓴다고 강조했었는데, 단순히 로컬에 대한 강한 의식이라고 여기기에는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힌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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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왔고, 방학이 끝나기 전에 ‘나가사키’ 여행을 한 번 더 계획했다. 8월에는 광복절이 있으니, 그즈음에 나가사키 평화공원과 원폭자료관, 원폭조선인희생자 추모비에 가고 싶었다.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를 가는 기차와 숙소를 알아보는 도중에, 미야자키 현에 7.1 강도의 지진이 왔다. 모든 뉴스와 언론에서 여행을 자제하라고 했고, 한국 영사관에서는 재외국민에게 연속해서 긴급문자를 보내왔다. 우리 가족의 여행 계획도 스톱이었다.

그리고는 재난방지 준비에 들어갔다.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이 왔을 때의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면서, 이곳에서 준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하기로 했다. 가방에 여권과 재류카드, 현금을 넣어서 언제든지 들고나갈 수 있게 했다. 지진과 쓰나미가 와서 교통이 마비되고, 물류 이동이 정지되었을 때를 가정하면서 물과 쌀을 샀다. 지진 다음 날 찾은 마트에서 이미 페트병에 든 2L짜리 물이 동난 것을 보고 놀랐었다. 편의점과 자판기를 돌면서 물을 확보했다. 쌀은 5kg짜리와 2kg짜리를 아마존 재팬에서 구입했는데,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은 5일 뒤에 도착했었다. 2kg 쌀은 주문한 지 2주가 지났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오지 않았다. 주문이 많아서 추후에 온다는 안내 메일만 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아니 정신을 부여잡고 지진대비를 했었다. 간간히 한국에서 오는 지인들과 가족들의 안부 연락에는 괜찮다, 걱정 마라, 일본은 건물의 내진설계가 잘 돼서 안전하다,며 큰 소리를 쳤지만. 내심 일주일간은 불안했었다. 다행히 일주일 동안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난카이 트로프 지진 경계주의보는 해제되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지진 주기를 봤을 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여행은 취소되고, 지진대비 준비를 하면서 남은 방학을 보냈다. 여행을 못 가서 아쉬웠고, 방학이 길어서 지루했으며, 지진이 날까 봐 조바심이 일었다. 그럼에도 하늘은 속절없이 맑고, 아이는 긴 방학이 지겨워서 나가자고 성화였다.

"그래, 나가자. 나가."

래시가드와 구명조끼, 타월, 튜브를 챙겨서 가까운 모모치해변으로 갔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해변이 있었는데, 그동안 먼 곳만 생각했었다. 관광객과 거주인들 사이에 섞여서 우리도 수영을 했다. 파도타기를 하고, 해초를 모아서 해초케이크와 조개케이크를 만들고, 소금기 어린 바닷물을 마시면서 잠수를 하고. 튜브에 앉아서 둥둥 떠다니고 있노라면, 이곳이 휴양지나 다름없었다. 세 식구 바다수영하고, 간단하게 타올로 몸을 닦은 뒤 집에 와서 씻고 정리를 했었다. 일주일에 두 번을 하기도 하고, 한 번을 하기도 하고. 지척에 바다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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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번 여름방학에 한 일 중에는 저녁 산책도 있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주로 집에 있고, 해 질 녘이나 해가 완전히 진 밤에 가족이 산책을 했다. 해안가를 따라 걷노라면 삼삼오오 모여서 노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다. 해변가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꼬마들과 가족들도 있었다. 그렇게 산책을 하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벤치 앉아 먹는 것도 우리 가족의 루틴 중 하나가 되었다. 가로등 아래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보면서 누가 누가 키가 큰가, 누가 제일 뚱뚱한가, 날씬한가 따위를 논하면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었다. 깜깜한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저것이 별인가, 인공위성인가, 외계인이 보내는 신호인가를 가지고 궤변과 열변을 토하기도 했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까마득하게 멀게 느껴졌던 여름방학이 끝이 났다. 여름방학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아이였는데, 나의 여름방학도 끝난 기분이다. ‘여름방학’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의 풋풋하고 낭만적인 느낌, 그런 단어와는 먼 방학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글로 써 놓고 보니 많은 것을 한 느낌이다. 이래서 일기를 써야 하나 보다,라는 초등학생 같은 생각을 하면서 여름방학 일기를 끝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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