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닉을 타고 (2)

by sunzero

(지난번에 쓰다 멈춘 ‘기타큐슈’ 여행기 후속 편이다.)


둘째 날은 비가 함께 시작했다. 지난밤에 내린 비가 그치지 않고 아침까지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밤사이 아이가 열이 나고 아팠다. 아이는 여행을 오기 전에 이미 감기에 걸려 있었다. 며칠 동안 약을 먹이고 휴식을 취해서 이 정도면 괜찮겠지, 했는데 첫날의 강행군 탓인지 몸이 회복된 게 아니었던 건지 탈이 나 버렸다.


나는 밤새 빨간색으로 물든 체온계를 보면서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물수건을 만들어서 몸을 닦아 주었다. 평소 감기에 걸려도 열은 잘 나지 않는 아이인데. 그러고 보니 일본생활은 한지 두 달째, 국제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째, 아플 만도 하구나, 싶었다. 어른도 낯선 해외살이가 힘들고 어려운데, 아직 열 살도 안 된 아이에겐 오죽했을까. 더구나 영어와 일본어로 가득한 학교 생활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이가 언어화하지 못한 어려움들이 몸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길. 그렇게 나는 잠든 아이를 간호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다.


다행히도 아침이 되자 아이의 열이 떨어졌다. 하지만 문제가 또 생겼으니, 내 컨디션이 말이 아니라는 거였다. 가만히 있어도 눈꺼풀이 감기고, 머리가 몽롱해졌다. 교대를 했던 남편의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조식을 먹은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오전 일정은 이대로 취소하자.”

모두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일 분 일 초가 아쉬운 여행에서 오전 일정을 통으로 날려버리는 게 속상했지만, 남은 일정을 위해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암막커튼을 치고 다 같이 잠이 들었다. 나가자고 떼를 쓰던 아이도 이내 잠이 들었다.

그렇게 가족이 강제 휴식과 낮잠을 취하고, 느지막이 일어나서 근처의 캐릭터 박물관을 구경했다. 호텔 주변을 거닐고 저녁을 사 먹는 것으로 그날의 일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하루를 허비한 것 같아서 아쉬웠지만, 진정한 ‘호캉스’였다고 서로에게 말하면서, 호텔 침구의 쿠션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고 애써 위로하면서, 가족들이 웃었다. 해열제와 낮잠 덕분인지, 아니면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알아서 인지 아이도 컨디션을 회복한 듯 보였다.


셋째 날이 되었다.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하다. 하늘도 쨍쨍해서 관광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자, 마지막을 불태워보자!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기타규슈역에서 로컬기차를 타고 ‘모지코’ 역으로 갔다. 모지코역은 가고시마 본선의 종점이자 출발역으로 1891년에 개업한 역이다. 현재의 목조건물인 역사(驛舍)는 1914년에 지었는데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일본 최초로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독특하고 예쁜 역사로 유명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들리는 곳이었다. 더욱이 가까운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간몬해협을 건너면 시모노세키로 바로 갈 수 있었다.

오늘 우리 가족의 코스도 이와 동일했다. 모지코역을 간단히 둘러본 후, 페리를 타고 시모노세키로 가서 ‘카이쿄칸(수족관)’과 ‘가라토 시장’을 구경하는 거였다. 수족관은 아이를 위한 코스였고, 자갈치 시장과 비슷한 가라토 시장은 어른들을 위한 코스였다. 결과적으로 두 코스 모두 아이와 어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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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건 시모노세키 카이쿄칸에서 보았던 돌고래쇼였다. 돌고래쇼가 금지되어 있는 한국과 다르게 일본은 국공립 아쿠아리움에서도 쇼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동물쇼를 금지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니, 아이는 돌고래의 마음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러게, 돌고래의 마음은 무엇일까. 누군가가 박수를 쳐주니까 기분이 좋을까, 사육사와의 교감에 어떤 감정이라는 게 생길까, 수족관이 넓고 커서 생활하기에 편할까, 어떤 물음표를 붙여봐도 제일 좋다고 할 것은 아마도 바다로 돌아가는 거겠지. 아이와 함께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자연관찰책 속 사진을 벗어나서 움직이는 돌고래와 수달과 아프리카 펭귄과 가오리와 산호초를 보면서.


카이쿄칸을 나와서 가라토 시장으로 갔다. 그리고 바다와 생물에 대해서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한 게 무색하리만큼, 싱싱한 회초밥을 사서 맛있게 먹었다. 하하. 방금 전까지 나누었던 대화들은 진짜 한여름날의 얼음처럼 녹아버렸다.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회초밥이 너무 맛있어서, 그리고 게살 튀김이 정말 환상적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해 본다. 후식으로 먹은 와플콘 아이스크림도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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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락을 즐기고 다시 페리를 타고 모지코로 건너와서 철도 박물관에 들렀다. 기차덕후 아이를 위한 마지막 코스였다. 역시나 그냥 못 지나가고 ‘어린이날’ 선물을 당겨서(?) 기차 레일과 기차를 사 주었다. 함박웃음 짓는 아이와 함께 로컬기차를 타고 호텔이 있는 고쿠라역으로 돌아갔다.


호텔에 맡긴 캐리어를 찾아서 특급열차를 타고 하카타 역에 내려서, 다시 공항선을 타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 내렸다. 캐리어를 끌고 한 참을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오니 이미 밤이었다. 2박 3일간의 여행이 그렇게 끝이 났다. 우당탕탕 첫 여행(유후인 편)처럼 기차를 놓치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가서 헤매지는 않았지만, 예상 못한 변수는 이번에도 존재했다. 일정을 변경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다시 여행을 이어갔다. 이렇게 또 하나 배우게 된다. 모든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하거나 망하는 게 아니라는 것. 내게 필요한 것은 계획을 바꿀 수 있는 유연함과 다시 그것에 적응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추동력이라는 것을. 일본에서의 두 번째 여행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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