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엠 프롬 사우스 코리아

by sunzero

하나.

언젠가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중국, 한국, 일본 어린이들이 다 같이 노는데 공통의 소통어는 영어였다. 간단한 단어를 말하면서 놀다가, 화가 나면 자국어로 소리를 쳤다. 상대가 못 알아들어도 표정과 목소리를 통해 화가 났다는 걸 알았다.

“아엠 쏘리.”

바로 사과하고 술래를 뽑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사인이 안 맞았는지 각 나라의 자국어로 말했다. 아이들이 주먹과 가위, 보자기를 낸 상태로 일제히 웃었다. 그러고는 누가 말하기도 전에 일제히 “짠깨뽀(じゃんけんぽん)”를 외쳤다. 일본에서 만났으니 가위바위보 정도는 일본어로 하는 것으로!


둘.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1km 정도를 걸어가야 나온다. 편의점 천국이라는 일본이지만 주택가 깊숙이까지 편의점이 들어온 것은 아니다. 한국처럼 배달이 잘 되는 곳이 아니어서(쿠팡과 배달의 민족이 그립다.), 간단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라도 1km를 걸어가야 한다.

그날도 다리 건너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8차선 교차로 앞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키가 엄청 크고 멋지게 생긴 남자가 나와 아이에게 인사를 했다. 누구지? 난 처음 보는데? 아이가 아는 사람이란다. 엥? 어떻게? 하니까 남자와 (남자의) 딸아이, 그리고 우리 집 아이가 같이 놀이터에서 축구를 했다고 한다.(놀이터 친구는 이렇게 생기는 거다.)

그렇게 넷이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남자는 우크라이나에서 왔고, 규슈 지역의 다른 곳에 살다가 올 초에 후쿠오카로 왔다고 했다. 후쿠오카 타워 근처에서 일한다고. 뭐 나는 한국에서 왔고, 오늘 바람이 많이 부는데, 그래도 햇볕은 좋고……(블라블라, 더듬더듬). 듣고 있던 아이가 작은 소리로 내게 말했다.

“엄마, 러시아랑 전쟁 나서 도망친 게 아닐까?”

아이의 눈동자가 호기심과 걱정으로 순간 출렁였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일본에 오래 살았으니 전쟁을 피해서 망명한 것 같지는 않고, 처음 본 상황에서 그런 질문을 하는 건 당연히 실례이니 아이에게는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답변하고 끝냈다.

생각해 보면 NHK 뉴스를 틀면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동해안에 쐈다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데, 나는 한국에서 전쟁과는 멀게 살았고, 누군가가 내게 노스코리아에서 왔냐 물으면 당황할게 뻔하니까.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해 보게 된다.


셋.

역시나 비슷한 상황은 계속된다. 아이랑 같은 반에 M이라는 친구가 있었다.(지금은 전학을 갔다.) 아이랑 친해서 엄마끼리 따로 연락해서 놀이터에서 놀고, 우리 집에도 온 적이 있다.

M은 일본인 엄마와 영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살다가 작년에 일본에 왔다. 그 말을 아이를 통해서 들었음에도, 막상 M을 만나자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그 질문을, 자동기술법에 따라 하고 말았다.

“웨얼 어유 프롬?”

M이 이렇게 답했다.

“저는 반은 영국인이고 반은 일본인인데 거의 영국인에 가까워요. 런던에서 더 오래 살았거든요.”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반으로 가르는 시늉을 하면서 half와 almost를 써서 대답하는 M 앞에서 마흔 넘은 내가 부끄러운 건 무슨 이유일까. 아무리 할 말이 없어도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었어, 하고 후회하다가 괜찮은 척하면서 넘겼다.

그러다가 영어와 일본어를 잘하는 M을 보며 M엄마에게 두 가지 언어를 잘해서 좋겠어요,라고 하니 “준(우리 집 아이)도 두 가지 언어를 하잖아요. 영어와 한국어.” 하면서 웃는데 역시나 멍청한 말을 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넷.

아이와 같은 반에 모리셔스에서 온 친구, K가 있다. 어느 하굣길에 K와 준, K아빠, 내가 함께 걷게 되었다. K아빠는 지난번 공원에서 한 같은 반 친구 생일 파티 때 보고 두 번째였다. 큰 덩치만큼이나 목소리가 크고 엄청 유쾌하셨다. 지나가는 학생들과 모두 하이파이브를 하고 굿바이 인사를 하시는 분. 유쾌한 에너지가 좋으면서도 “음, 부담스럽군.” 하면서 지극히 내향형인 나는 인사만 했었다.

그날은 같이 교문을 나서게 되었고 아이들이 바다 쪽으로 난 산책길로 스쿠터를 타고 달려갔기에 나는 K아빠랑 걸음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안녕, 준 마덜. 너는 한국에서 왔지? 우린 모리셔스에서 왔어. 너 모리셔스 알아?”

“이름만 알고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잘 몰라, 미안해.”

“아니야 전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내가 알려줄게.”

그때부터 스몰토크 아니 빅토크의 시작이었다. 나는 모리셔스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졌으며 사람들이 친절하고 상냥한지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는 K가족들이 대륙을 이동하면서 몇 년씩 살고 있다는 것도. K어머니는 현재 아이가 다니고 있는 국제학교의 보조교사인데 그렇게 대륙별로 이직을 하면서 온 가족이 여행하듯 살고 있다고 했다. 아시아는 일본이 처음인데 이곳이 참 좋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어려운 수학 문제집을 풀고 매일 공부하는 게 아니라 바다에 뛰어들고 자연을 느끼면서 살아야 된다고. 내 영어실력을 모르는 K아빠가 빠르고 빠르게 말했지만 저 뜻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K아빠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누구나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대단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영어 실력이 조금 더 뛰어나다면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싶은데. 한국 공교육의 전형적인 영어 수업을 받은 나는 말하기보다 듣기 실력이 훨씬 뛰어났고, 간간히 추임새가 섞인 맞장구를 쳐 주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실은 내색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K아빠가 고마웠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 참 듣고 난 후에 내가 입을 열었다.

“다음에는 한국에서도 살아봐. 부산도 후쿠오카랑 느낌이 비슷해.”

“진짜? 근데 전쟁 나는 거 아니야?”

K아빠가 물었다.

“아, 한국 사람들은 다 안전하게 살고 있어.”

언제나 다리에서 만났던 우크라이나 남자가 생각나서 나는 웃었다. 내 웃음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K아빠도 함께 웃었다.


KakaoTalk_20240917_131615861.jpg
KakaoTalk_20240917_132314130.jpg


매거진의 이전글아픈 것보다 더 힘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