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떼 섬 한가운데에 우뚝 세워져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연인들이 이곳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누구나 영화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 어디서나 들리는 성당의 종소리는 발걸음 조차 차분하게 걷게 하고 딴생각하고 있는 정신을 올곧게 만들어준다. 이처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800년 전부터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2019년 4월 15일. 부활절을 며칠 앞둔 날에 대성당은 불길에 휩싸여 무너지고 말았다.
그 날에 나는 엑상프로방스에서 부활절을 준비하며 성주간을 보내고 있었다. 엑상 프로방스와 아를의 모든 신부님들이 엑스 대성당에 모여 일치를 다짐하는 미사가 있을 예정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을 예상한 나는 누구보다 먼저 대성당 앞쪽에 앉아서 미사를 기다렸다. 그때 내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내랑 파리에 갔는데 노트르담 대성당에 들어가도 되냐는 거였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대성당인데 굳이 나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아마도 내 친구는 개신교 신자이기에 성당에 한 발짝 내딛기가 조심스러웠나 보다. 나는 편안하게 성당에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했고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마침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평일 저녁 미사가 봉헌되고 있었는지 그 친구는 미사에도 참석해서 가톨릭 예배가 어떤지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문자로 친구에게 가톨릭 예배 방식이며 그 의미를 하나하나 알려주기 시작했다. 신부님의 복음이 봉독 되고 강론이 시작할 때쯤 그 친구는 미사 도중에 경비원으로부터 쫓겨났다고 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서 쫓겨났는지, 외국인이라서 쫓겨났는지 이유를 모른 상태로 갑자기 쫓겨났다고 했다. 그리고 몇 분뒤 성당 지붕 한가운데에서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화염이 휩싸인 것이다.
나는 친구로부터 화재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금방 불이 꺼질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가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해줄 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세계적인 관광지이며 세계문화유산인데 화재 대비 시스템은 충분히 갖추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엑스 대성당에서 충분히 미사를 드리고 나온 나는, 세계 곳곳에서 뜨는 긴급 뉴스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화재 진화는커녕 성당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미사를 마친 엑상프로방스와 아를의 신부님들은 걱정 어린 표정을 하며 대성당이 어떻게 되는 거냐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파리 노르트담 대성당에서 가장 높은 첨탑이 무너졌고 지붕은 전소됐다. 지붕이 목재로 지어진 탓에 불길이 쉽게 번졌으며, 대성당 벽면은 현재 건축 방법과 달리 철근 없이 지어졌기 때문에 붕괴될 위험이 있어서 쉽게 화재 진압을 하지도 못했다. 결국 하루라는 시간이 거의 다 가서야 불길은 잡혔고 검게 그을린 대성당의 초라한 모습이 드러났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무너지면서 파리에 사는 시민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울기까지 했다. 프랑스의 자존심이 무너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슬퍼하기만 하던 파리 시민들이, 노트르담 대성당이 가장 잘 보이는 거리와 광장에 나와 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프랑스 전역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합류했고 저마다 갖고 있던 묵주를 들고 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성가를 부르며 기도를 했다. 전 세계 언론은 이 광경에 주목했다. 프랑스는 분명 종교 분리법으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있고 종교는 사적인 영역인데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기도는 하루에 끝나지 않았다. 1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나면서도 매일 프랑스 전국의 성당들은 화재가 난 시간(19시 50분)에 타종을 했고 파리 시내 곳곳에선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기도하고 성가를 부른 다음 파리 거리를 행진했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픔을 마냥 두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내려는 모습에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 그동안 나는 프랑스가 믿음이 없는 빈껍데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태어나서 가톨릭 세례를 받지만 성당에 나가지 않고 스스로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껍데기만 보고 속을 바라보지 못한 나의 큰 잘못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믿음을 지켜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프랑스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타오르게 했을까? 무엇이 프랑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게 했을까?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단순히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정신적 지주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들에게 대성당은 믿음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대성당은 하나의 건물에 지나지 않았지만 각자의 마음에는 성당이 하나씩 있었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큰 성당을 크게 세운 게 아닐까 싶다.
** 대성당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빠리지앵들 모습이 담긴 영상 https://youtu.be/Pq0iGvSTcCY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엑스 교구의 한 신부님에게 내가 느낀 바를 얘기했더니 신부님의 말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게 나도 믿기지 않아. 그들은 교회를 무척이나 미워하고 있는데 말이지... 분명한 것은 그들 사이에서 주님이 일을 하셨다는 거야."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 소식이 전해지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복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여러 단체에 복원 기금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원을 충분히 하고도 남을 돈이 모여졌다. 프랑스 내외 대기업들이 큰돈을 선뜻 내놓으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즉각 정부를 향한 비난과 뭇매를 때리는 일로 번지고 말았다. 세계 곳곳에서 가난과 폭력 여러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선 십원 하나 내놓지 않다가 대성당이 무너지자 큰돈을 금방 내놓은 대기업들의 모습이 안일하게 보였던 것이다.
현재까지도 대성당 복원은 진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화재 당시에 쏟아진 지붕의 잔해들은 아직도 성당 내부에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성당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고정만 시켜놓았을 뿐이다. 프랑스 정부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논의를 계속하고 있지만 큰 결과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전통 방식으로 복원을 하면 다시 화재 위험성에 노출이 될 것이고 현대적 방식으로 복원을 하면 그 옛것의 온전한 모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대성당으로서의 기능이 아니라 공원이나 수영장처럼 공공을 위한 기능으로 탈바꿈하자는 의견도 내놓았다. 대성당 소유권이 국가에 있기 때문에 정부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 입장에서는 노발대발할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화재로부터 2달이 지나고 올해 6월엔 파리 대교구장 미쉘 대주교의 주례로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화재 이후 첫 미사 봉헌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주교좌성당은 미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이것이 유일하고도 본래의 존재 이유입니다. 제가 몇 번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이곳은 절대 관광장소가 아닙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완전한 복원이 될 때까지 누구는 40년이 걸리고 누구는 20년이 걸린다고 말하지만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닌 것 같다. 다시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게 하고 대성당의 본 기능을 되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의 콰지모도가 말한 것처럼 '언제든 오세요 무슨 계절이든 그대가 원할 땐 여긴 그대의 집'이 되어야 한다. 언젠가 다시 대성당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서로 위로하고 기도하던 프랑스 사람들 마음에 내 마음도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