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알베르게에서 쉬다 보면 내 침대 주변에 누워있는 다른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다. 온몸이 뒤 쑤시는 탓에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다 보면 결국 눈이 마주친다. 거기서 살며시 인사를 건네면 대화가 시작된다. 서로 인사와 자기소개를 마치고 나면 그제야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할지 판단이 된다. 짧은 영어와 오 년 간 써온 프랑스어를 적절히 섞으면 말하지 못할 말이 없다. 단골로 나오는 질문도 있다. 나는 매 순간 똑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매번 똑같지도 않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 대답에 살이 붙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말을 듣고 영어와 프랑스어를 너무 잘한다고 칭찬일색을 하면 나는 그냥 미소를 살짝 짓는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똑같을 수 없는 대답으로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질문들이 있다. 그 질문들은 이렇다.
어디에서 출발했어?
어디까지 갈 거야?
내일은 어디 갈 거야?
어디? 어디? 어디? 모든 질문에 ‘어디'가 들어간다. 순례자들은 내가 어디 가는 걸 그토록 궁금해했다. 순례자들은 매일 다른 마을, 다른 지역에서 머물다 보니 장소적 질문부터 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게다가 똑같은 대답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여기 와 있는데, 어제 있었던 마을 이름을 대답할 순 없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무엇이냐면, 순례자들은 이 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순례길에 어떤 마을이 있는지 어떤 역사가 있는지 하나도 알아보지 않은 상태로 왔다. 그래서 내일 내가 어느 마을로 가야 할지는 오늘 일정을 마치고 알베르게에서 샤워를 하고 나서야 정했다. 다른 순례자들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모두 계획해 놓고 왔다. 누구는 수첩에, 누구는 스마트폰에, 또 누구는 기억력에 담아왔다. 나는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지혜를 구하듯이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방을 쓰는 순례자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아주 일부는 아무 계획도 없이 온 내 모습에 어이없어하며 혀를 찼지만 대부분은 거침없이 모든 정보를 쏟아내줬다.
스페인에서 온 남자아이가 내일 걷게 되는 길엔 ‘용서의 언덕’이 있다고 일러줬다. 나는 눈만 꿈뻑꿈뻑거리며 “뭔 언덕?” 하고 되물었다. 그는 다시 한번 스페인어로 용서의 언덕을 말해줬다. 알또 데 뻬르돈 Alto del Perdón. 아! 용서! 프랑스어 빠흐동 Pardon이랑 비슷한 단어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서야 용서의 언덕이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름 참, 고상하면서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그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저 멀리 용서의 언덕처럼 생긴 곳이 보이는 데도 계속 질문에 질문을 물어뜯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분명 언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언덕은커녕 산봉우리 하나를 넘는 기분이었다. 씩씩 대는 내 마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길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내 인생을 살펴봤다.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지 주변 인물들을 한 사람씩 생각해냈다. 그래, 미안한 사람은 많았다.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니까 잘못을 하고 실수를 저지른다. 그런데 나는 실패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실패 또한 내 인생을 값지게 해주는 거름이라 생각하기에, 나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라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배움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나는 타임머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쌀 한 톨만큼도 없다. 정말이지,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 건지, 이 언덕이 싫었다.
다시 한번 숨이 차오르고 씩씩 거리다 못해 열불이 터지고 있을 무렵, 주변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소리를 크게 외쳤다. 산 아래에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가!! 헤엑해엑”
“그래! 나를 용서해야지! 나를 용서하자!”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었다. 용서한다는 게 두 사람 이상 관계에서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나를 먼저 용서해 줄 필요가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 갑자기 가정환경이 어려워졌던 때가 떠올랐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부모탓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식간에 가장이 되어버린 내 모습에 크나큰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누구보다 어른스럽게, 누구보다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십오 년을 넘게 살아왔다. 흩날리는 바람결을 느끼는 것조차도 내겐 사치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나는 그 시절 나이에 맞지 못하게, 스스로 나를 혹독하게 대했다. 이제 용서의 언덕을 오르면서, 과거의 나를 놓아줘야 했다. 툭-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 순례길을 너무 힘들어하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용서하자면서 이렇게 외쳤다.
순례길에 온 나를 용서하자.
뿌엔테 라 레이나 Puente la Reina마을에 있는 성당 십자가는 내가 갖고 있던 마음의 짐을 더 놓을 수 있게 해 줬다. 영어 알파벳 와이 Y처럼 축 늘어진 예수의 두 팔은 너무도 가련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는 인간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사형터에서 목숨을 내놓았다. 겨우 서른셋 밖에 되지 않은 새파란 청춘이 그렇게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부활했다는 사실이 곧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간이 되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아마 이 와이자 십자가를 짊어지고 순례길을 걸었던 순례자에게도, 나처럼 십자가를 바라만 봤던 순례자에게도 커다란 위안이 되었을 거다. 그래, 용서의 언덕을 넘었으니 이제 위안의 길을 걸을 차례다. 다만, 언덕 같은 산만 다시 넘지 않기를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