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곰 Nov 04. 2024

글을 쓴다는 것

어릴 때 내 기억을 더듬어보면 말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또래보다 말이 늦었고, 입을 뗀다 하더라도 긴 단어는 말하기 힘들었다. 한글도 늦게 깨쳤다. 한글의 생김새에 관심은 많았으나 그게 글자로 인식되는 건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엄마는 그때의 내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언제 말을 잘할지, 한글을 언제 뗄지 언제나 걱정이었다고 말하신다. 어쩌면 나에게 장애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집안 곳곳에 한글과 한국어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던 걸 기억한다. 내가 자연스럽게 한글과 한국어를 깨우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특단 조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글자 하나하나와 노래 운율에 호기심만 가득했을 뿐, 그게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였다는 걸 알아차리긴 힘들었다. 


그렇게 겨우 뗀 말은 두 글자였다. 

아빠는 아빠

엄마는 엄마

할아버지는 할부

할머니는 할미

이모는 이모

이모부는 이부


모든 단어를 두 글자로 줄여서 말했다. 

세상의 온갖 것이, 아마도 내 눈에는 두 글자로 채워진 단순한 세계였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셨다. 그래서 가끔은 우리 집에 오셔서 공부를 가르쳐주셨고,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 때 외가댁에 놀러 가면 외할머니가 노인정과 시내 복지관에서 배운 노래를 나에게 들려주고 그 가사를 쓰게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외할머니가 배워온 노래가 모두 드라마 주제곡 아니면 당시에 어르신들을 강타했던 송대관과 태진아, 현철 같이 트로트라는 거였다. 나는 흥겨운 노랫가락에 몸을 맡겨 춤을 추고 외할머니가 알려주신 글씨를 조금씩 익히면서 한글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웃긴 얘기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장기자랑 시간 때마다 내가 트로트를 불러서 담임 선생님이 적잖이 당황했었다. 그러나 초1 때 담임 선생님은 내가 노래 부르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셔서 매번 파스퇴르 우유와 과일맛 사탕을 챙겨주셨었다.


집에는 늘 책이 가득했다. 한쪽 벽을 채우다 못해 아빠 서재가 있을 정도였다. 부모님은 젊은 시절부터 독서광이셨다. 가끔 부모님이 안 계실 때 오래된 책을 뒤적거리면 그분들이 언제인지도 모를 시기에 숨겨놓은 낙엽이 찰랑하고 떨어지기도 했다. 책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고 한글을 알기 시작한 이후부터 나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디선가 얻어온 위인전 시리즈, 방문 판매나 마트에서 싸게 세트로 파는 동화 전집 등을 집에 꽂아놨다. 그리고 내가 책을 한 권 읽으면 언제나 어떤 내용인지 물어봤다. 독후감도 쓴 기억이 있다. 이에 대한 보상은 확실했다. 칭찬과 용돈이었다. 아마도 유치원 때부터 아빠 구두를 닦으면 용돈을 준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점점 오르는 세상 물가에 내가 가진 돈은 턱없이 부족했고, 독서 후에 받은 용돈은 그 부족함을 채워줬다.


내가 글 쓰고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고 느낀 건 중학생 때였다. 아마도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과제로 낸 내 글이 선생님들 눈에 띄어서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상과는 멀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 상의 주인공이 나라고 했을 때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나는 또다시 과제 때 낸 시 한 편이 뽑혀서 가을 학교축제 때 직접 그림과 함께 학교 입구에 전시되기도 했다. 


학교 반 뒤에서 조용히 있던 내가 말하는 걸 좋아한다고 느낀 건 역시 중학생 때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전교생들이 보는 학교 축제, 학년 별로 떠나는 수련회 장기자랑 시간이면 나는 트로트를 불렀다. 대중 앞에 서서 관심을 받고 박수갈채를 받는 건 나의 희열이었다. 그러던 중 몇몇 친구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쉬는 시간 때마다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말마다 까르르 웃으며 귀를 기울이는 친구들의 모습이 꽤나 흥미로웠다. 아 나도 말을 잘할 수 있구나? 


고등학생 때 나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국어 선생님이 이끄는 문예부에 섭외되어서 고등학교 생활 내내 글을 썼다. 대부분 수필이었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내야 하는 시보다, 내 생각을 차분히 늘여놓으며 쉽게 말할 수 있는 수필이 좋았다. 그렇게 학교에서 받은 상장도 수북이 쌓였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본격적으로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도 책을 낼 수 있을까?",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면서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쓰던 일기장에 어떤 책을 쓸지 끄적거렸다. 


그렇게 10년도 더 지나 서른 살이 넘어서 첫 책을 냈다. 


말도 못 하고, 한글도 모르던 내가, 작가가 되었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꿈은 마음속에 계속 품으면 언젠가 이뤄진다는 대학교 은사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부족함을 이기고자 노력하면 꿈은 이룬다. 잊지 않으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책 열 권을 내봐야겠다. 새 꿈이 생겨버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