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4장:균열

by Grey

불안정한 생활이 오래 이어졌다.
밤은 늦게 끝났고, 낮은 자주 흐릿했다.

무언가를 멈추는 일보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쪽이
그 무렵의 나에겐 덜 두려웠다.



​서울 한복판, 상가 건물 3층.
나는 가게를 열었다.
조명은 은은했고,
테이블은 손으로 직접 닦으며 놓았다.
문을 처음 열던 날,
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나는 잠시 멈춰 선 채, 바라보았다.


무언가 시작되는 감촉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감촉일 뿐이었다.
확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엔 손님이 들어왔고,
이따금 웃음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꽉 찼던 자리가
저녁 늦게까지 비어 있었다.

숫자는
하루의 기분을 정했고,
날씨는
마음의 결을 흔들었다.

그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괜찮은 일도 아니었다.


정산은
수치를 가르는 일이 아니었다.
감정을 정리하는 일이었고,
어떤 날엔
그마저도 두려웠다.

진열대에 놓인 액자 하나,
그림자 진 의자의 다리.
모든 것이 낯설고,
조금씩 무거워졌다.

기대는 줄었고,
의심은 늘었다.
하루 중 몇 번씩,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공기처럼 떠돌았다.


가게 안을 오가는 걸음은
일의 흐름이 아니었다.
불안이 걷고 있었고,
문 앞에선 언제나
‘문제가 올 것이다’라는 예감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숫자는 아직 버틸만했지만,
상상은 언제나
최악을 향해 흘렀다.


그 무렵부터
‘그만두고 싶다’는 문장이
내 안 어딘가를 떠돌기 시작했다.
소리 내지 않았고,
다만 귀 기울이면
언제나 그 말이 들렸다.

생활은 이미 커져 있었고,
지우기엔
너무 많은 것을 품고 있었다.



포커는 불확실했고,
삶은 더 불확실했다.



그래서 멈추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은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감정은 결국 넘쳤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
함께 일하던 형,
연인,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

나는 무뎌졌고,
예민함이 말끝마다 번졌다.

신경질은 습관이 되었고,
작은 말다툼은
이유를 잃은 채 길어졌다.

가게를 정리할 즈음엔
관계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닿아 있었다.

오래 만났던 연인과도
눈을 맞추지 않게 되었다.
애정은 남았지만,
그 애정은 더 이상
말로 가지 않았다.


처음엔
그들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변한 것은
내 쪽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사람은 감정을 읽는다.
나는 그 단순한 이치를
잊고 있었다.


통장엔 잔고가 남았지만,
곁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무너진 것은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을 지탱하던
내 마음의 구조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일은 겉으로 멀쩡했지만,
감정은 매일 조금씩
금이 갔다.

그 금이
흙처럼 무너져 내리는 순간,
나는 그것을
아무런 표정 없이 지켜보았다.




그 무렵,
나는 내 안의 심연을
지나치게 오래 들여다보았다.

회복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저 바라보는 일로는
더 깊은 어둠에 닿을 뿐이었다.


삶은,
버틴다고
항상 지켜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날들은
버티는 일조차
무의미해졌다.

그 가게는
붕괴라는 긴 이야기 속에서
잠시 멈춰 선
하나의 장면에 불과했다.



돈은
기준이 될 수는 있어도,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수익은 남았지만,
평온은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무너짐은
피했더라면
더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무너진 흔적이 아니라,
불안정한 기반이
스스로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쌓을 수 있는
작은 틈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런 틈조차 볼 수 없었다.

남은 건
공허함이었다.

그리고
그 공허는
내 자의식을 타고
더 깊은 곳으로
문을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