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5장:떠남의 형식

by Grey

가게를 정리했다.
가게의 불을 끄며 문을 걸어 잠글 때, 하늘은 유난히도 맑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방 안으로 틀어박혔다.
햇빛은 가려진 블라인드 너머로만 들었고,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도망친다.

누군가는 술,
누군가는 사랑,
누군가는 신.

나는 모니터 속 화면만이 유일한 세계인 듯 하루의 절반을 게임에 바쳤다.

몰입은 곧
현실의 대체였다.

열두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 동안,
장비를 맞춰 올리고,
끝없는 퀘스트가 던지는 보상에 내 마음을 맡기자,
마치 픽셀로 된 내가 더 나은 존재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실 속 나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대충 때운 끼니들은 무너진 일상의 증거였다.

게임은 내가 유일하게 무언가를 살릴 수 있는 장소였다.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살아 있지 않았기에.
실패해도 페널티는 재도전 버튼 하나로 지워졌다.
로그아웃과 동시에 남는 것은 빈칸뿐이었다.
다시 접속할 때마다 새로운 시작이 기다렸다.



막대한 공허 속에서,
나는 점점 현실로부터 멀어졌다.
가게 정리로 모은 마지막 자본으로 선물거래 계좌에 올인했지만,
차트는 내 목소리를 무시하듯 춤을 추었다.
한 줄기 반등만이 남은 희망이라는 생각에
더 넣고, 더 베팅하고, 더 기다렸지만
모든 클릭은 비극의 리듬을 타고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잔고는 알림음 하나 없이 사라졌고,
나는 한동안 계좌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지워진 숫자들보다 더 날카로운 것은
그 순간 비로소 찾아온 고독이었다.
실패의 흔적은 화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 심장에 깊은 균열을 새겼다.



도시는 나를 품지 않았다.
내 안에서도 되살아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버틸 힘조차 흔들리는 그날,
나는 모든 것을 털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차를 팔고, 통장의 마지막 잔액을 인출하고,
저금통까지 뒤져 모은 돈으로
비행기 표를 마련했다.
행선지는 마닐라.

이유는 단 하나였다.
포커뿐이었다.
남은 기술이자, 마지막 구원처럼 믿었던 그것을
마지막으로 붙잡아야만 했다.

그때의 나는 눈빛은 이미 스러졌고,
불타오르던 열망은 꺼진 등불처럼 잔해만 남았다.
속도만이 유일한 무기였고,
숨 가쁘게 떠돌아다니는 발걸음만이
내 안의 허무를 잠재울 수 있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지옥은 죽은 뒤에나 가는 곳"이라고.
그러나 나는 안다.
진짜 지옥은 바로 이곳,
현실이라는 이름의 무력감 속에
나 자신을 포기한 순간에 시작된다는 것을.

필리핀행은 구원이 아니었다.
무너진 내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희망은 이미 사라진 자리였다.
남은 것은
갑작스러운 결단과
끝없이 뒤쫓아오는 불안의 여운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떠났다.
모든 것을 잃고,
아무것도 믿지 않은 채.
그리고 그 낯선 땅 위에서
다시 한번 눈발 속을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