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은 감정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편할 수 있는 분들은 읽기 전에 충분한 여유를 갖고 판단해 주세요.
기분이 좋았던 첫 경험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지 않고 삼켰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같은 것을 삼켰다.
입 안 가득 씹히지도 않는 공허한 감각.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생각은 멎고 몸만 반응했다.
왜, 언제, 얼마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절제라 부르던 어떤 경계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고, 무엇을 건넸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받는 동작이 몸에 배어 있었고, 거절이라는 개념은 점점 형태를 잃어갔다.
그것이 나를 얼마나 무너뜨릴지, 얼마나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갈지, 이젠 상관없었다.
무너지는 것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어쩌면 조금은 평온했다.
하지만 그 거짓된 행복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그 후의 일상은, 가벼운 악몽처럼 조금씩 세상이 어긋났다.
눈을 떠도 풍경이 덜 선명했고, 말을 해도 그 목소리가 낯설었다.
감정은 무너졌고, 말끝은 자주 흐릿해졌다.
몸은 움직였지만, 생각은 어디쯤에서 묶여 있었고,
감정이라는 것은 물속의 그림자처럼 번졌다.
무언가를 집어넣을 때만 겨우 균형이 잡혔다.
아무 감각도 없을 때, 살아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밤이 되면, 방은 조금씩 모양을 바꾸었다.
천장은 낮아졌고, 벽은 가라앉았다.
창문 사이로는 색이 없는 손이 스쳤다.
그 손이 들어왔는지, 그냥 바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루는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어디도 젖은 곳은 없었다.
나는 그저 누워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다가왔고, 그 존재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답은 없었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꿈이었는지,
기억이었는지,
아니면 그 사이의 어딘가였는지.
모든 것이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밤이면, 무수한 얼굴들 속에서 나는 한 사람을 골라 말을 걸었다.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얼굴이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혼자인 것보다, 혼자일 때 마주하는 내가 더 낯설었다.
익명의 말들,
이름 없는 살결,
지워지는 온기.
다음 날이 오면,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흔적도, 말도, 의미도 없이.
언젠가의 밤.
방 안은 고요했고, 누군가 곁에 있었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서로의 체온만이 느리게 이불 위로 퍼져갔다.
그녀가 말했다.
“괜찮아?”
그 목소리는 바다 멀리서 밀려온 물결처럼 천천히 방 안을 스쳤다.
그 순간, 나는 숨을 멈추었다.
방이 기울었고,
천장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모든 사물이 그 자리를 잃었고, 시간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나는 소리 없이 부서졌다.
다른 밤,
작은 음악과 어지러운 불빛 속.
사람들의 얼굴은 물을 부은 종이처럼 번졌다.
나는 방 안에 있었지만, 발끝은 바닥에서 떨어져 있었고,
손끝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그때,
흐릿한 시야 너머로
하얀 문 하나가 열렸다.
문은 움직이지 않았고,
대신, 그 형태가 조용히 허물어지듯 흩어졌다.
눈처럼, 고요하게,
천천히 방 안을 내려앉았다.
스탠드는 회전했고,
소리는 멀어졌으며,
심장은 있었지만,
박동은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이대로 잠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 하나만이 남았다.
눈을 다시 뜨지 않아도
세상은 그렇게 계속 흘러갈 것만 같았다.
그 생각은 파도처럼 가라앉았고,
나는 더 깊은 곳으로
침몰해 갔다.
세 번째 밤.
욕실이었다.
어두웠고,
찬기운이 있었다.
텅 빈 욕조에
몸을 천천히 담갔다.
심장은 두세 번 크게 울렸다가
점점 작아졌다.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이후, 나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어느 날, 스쳐 본 얼굴이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볼은 꺼졌고,
입술은 말라 있었으며,
눈동자에는 무언가가 빠져나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사람이라기보다
빛이 닿지 않는 물체 같았다.
시선을 떼면서조차 감정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시기의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형체만 남은 무언가, 소멸에 가까운 물질.
고요했고, 무감각했고, 투명했다.
무엇을 바라는 것도 없었고,
어디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나는 아무 소리도 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