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었다.
8시를 조금 넘긴 시각.
도시는 이미 멀었다.
가로등 없는 도로 위로, 차량 한 대의 빛이 미약하게 퍼져 나갔다.
창밖의 나무들은 뿌리째 어둠에 잠긴 듯 지나갔다.
왕복 2차선.
속도를 줄이던 앞차.
그 곁을 스치려던 순간,
급커브.
조금 늦은 핸들.
조금 빠른 속도.
차체는 부드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도로 밖으로 밀려나갔다.
빛이 멀어졌다.
그리고 사라졌다.
한 점의 소리 없이.
차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진동도, 충격도, 대화도.
누군가가 물었다. 괜찮냐고.
나는 입을 다문 채,
내 몸이 나보다 먼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한참 뒤,
낯선 숨이 서늘하게 목 끝에 닿았다.
멜버른에 도착한 지 이 주.
같은 집에 살던 커플,
그리고 그들의 소개로 알게 된 집주인과 함께한 짧은 여행이었다.
400킬로를 달려 도착한 해안가.
바람은 간헐적이었고,
바다는 여름처럼 얕고 투명했다.
하지만 그 밤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경찰도, 견인차도.
우리는 지나가던 차를 세워 마을로 돌아왔다.
예약한 숙소 대신, 낡은 모텔에 짐을 내렸다.
창밖엔 벌레 소리도 없었다.
예정된 음식은 싸늘했고,
가져온 물건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계산기를 꺼낸 건 머릿속이었다.
누구와 얼마를, 어떻게.
숫자가 언급될수록 말은 줄고,
공기는 무거워졌다.
운전자는 집주인이었다.
무리한 추월, 그리고 느린 핸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같이 탔다는 이유로
책임도 나누자는 기류만이 남았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그는 식어가는 커피를 손에 든 채 내 얼굴을 살폈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정산이 끝났을 때,
주머니는 가벼워졌지만
기묘한 안정이 남았다.
다친 이는 없었고,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와 같은 옷차림으로
차분히 일터에 들어섰다.
이상했다.
꽤 큰 사고였지만,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이미 더 깊은 밤을 지나왔던 사람일 것이다.
그날의 충격은
숫자가 아니었고,
결과도 아니었으며,
어느새 익숙해진 연습에 가까웠다.
나는 예전에
더 차가운 벽 앞에 섰고,
더 가라앉은 새벽을 건넜다.
이번엔
무너짐이 아니라
내 안에서 무언가 다시 놓이는 감각에 가까웠다.
삶은 예고 없이 금이 간다.
그 금은
붕괴로 이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결로 바뀌기도 한다.
금 사이로 스며든 것들이
서서히 굳어가며,
그 사람을 만들어간다.
그날 밤,
나는 예전에 적어둔 문장을 떠올렸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틀렸다기보단
조금 부족했던 것이다.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살아남은 사람이 늘 강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삶의 금 사이에 끝내 머문 사람은
시간이 굳히고,
시간이 버티게 하여,
어쩔 수 없이 단단해지는 것이다.
그 말이
그 밤의 공기처럼
묘하게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