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링과 결핍, 그리고 감정의 수납공간
State
오늘 아침, 평소보다 일찍 나왔다.
드디어 조금씩 리듬을 바꿔보려는 마음으로.
하지만 버스는 늦었고,
가는 길에 또 버스가 사고가 났다.
기사님이 신호등에서 멈추지 않고 우회전해서
자전거를 치었다. 너무 놀라 소리 질렀다.
이후,
중간에 내려 다른 정류장까지 걸었고,
다른 노선을 갈아타 다시 회사로 향했다.
그렇게까지 애썼는데,
도착 시간은 평소와 같았다.
Thought.
이쯤 되면 조금 어이가 없다.
노력의 결과가 이럴 때,
'변화'란 게 과연 가능한가 싶다.
일찍 일어나고, 움직이고,
겨우 마음 다잡았는데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무시하고 지나간다.
Note.
이 아침의 분노는
단순한 사고 때문이 아니라,
내가 시도하는 모든 게
되돌아오는 것 같은 그 감각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다시 내일을 계획한다.
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움직였다.
그게 오늘, 내가 붙잡은 감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고가 경미하길 바란다.
멀쩡해 보이셨지만,
부디 후유증 없이 잘 지나가기를.
오늘을 기록하고
나는 내일을 다시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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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주 떠오르는 말이 있다.
"변화를 시도하는데도, 왜 삶은 이토록 그대로일까?"
아침에 일찍 눈을 뜨고, 새로운 루틴을 시도하고,
조금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쪼개 보려고 하지만.
그 결과는 늘 같거나 더디기만 하다.
마치 터널 속을 운전하는 기분.
고립된 채 어디론가 가고는 있지만,
앞도 옆도 잘 보이지 않는다.
삶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은 대개 반복되는 무력감에서 시작된다.
변화를 시도해도 결과는 비슷하고, 오히려 더 지치는 날이 있다.
이런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터널링(tunneling)’이라고 부른다.
터널링은 인지적 시야가 좁아진 상태다.
선택지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감정이나 문제에 인지적 초점이 과하게 몰입되어
주변의 가능성과 자원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
그 결과 작은 실패도 과도하게 받아들여지고,
시도는 왜곡된 평가를 받는다.
내가 뭔가를 하고 있음에도, 그 시도는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오히려 “내가 뭘 잘못했나” 같은 불신이 쌓인다.
이 터널링의 바닥에는 대개 결핍이 있다.
단순히 자원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충족되지 못한 정서적, 관계적 필요 말이다.
예를 들면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공간의 결핍,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관계의 결핍,
표현에 대한 정당한 보상의 결핍 같은 것들.
나의 경우는 이렇다.
나는 감정이 많은데 하나하나 이해하고 정리하는 게 어렵다 보니 쌓이는 감정의 양은 생각보다 많고,
성실하게 처리하는 게 버겁고 정리가 안되었다.
그래서 반대로 생각하지 않고 넘기다 보니 느낌만 남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오히려 내가 너무 별 생각이 없나? 하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다.
그건 방어가 아니라, 포기와 유예의 합에 가까웠다.
지난 두 달 동안 생각하며 느낀 것은
감정을 담아둘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흘러야 할 감정을 ‘삼켜야만’ 했던 시간들.
그 감정들은 결국 탈진이나 무기력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요즘 나는 하나의 질문을 품는다.
“이 감정, 지금 어떻게 수납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기분이 어떤가요?’라는 말과는 다르다.
느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감정을 안전하게 쌓아두고,
필요할 때 흘려보내는 구조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그것이 내가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가장 작은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
내일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