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따라 일요일 아침마다 목욕탕을 갔다.
그 기억은 여전히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나는 이른 아침 목욕탕에 감도는 고요함과 입구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목욕탕 냄새가 좋았다.
작은 탈의실을 지나 유리문을 열면, 뜨겁고 습한 공기가 훅 하고 나를 덮쳤다. 할머니와 나는 수증기로 사방이 뿌연 욕탕을 가로질러 자리를 잡았다. 물을 끼얹을 때 쓰는 바가지와 세숫대야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후미진 구석자리로. 그런 후 나는 할머니를 따라 온탕에 몸을 담갔다.
할머니는 햇빛에 바짝 말려 뻣뻣해진 초록색 떼수건을 따뜻한 물에 잠시 담갔다가 크고 두툼한 손에 그것을 끼우고는 때를 밀기 시작했다. 억세고 힘 좋은 할머니 손이 지나간 자리는 금세 벌게졌고, 열을 품으며 따끔거렸다. 하지만 내가 가장 싫어했던 건 때수건으로 내 얼굴을 벅벅 문지르는 순간이었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저항의 몸짓을 하는 내게 할머니는 "이렇게 하면 얼굴이 맨질맨질 예뻐진다."고 했다.
매주 일요일 아침은 때도 없고 죄도 없는 내 얼굴의 '수난의 날이자 기쁨의 날'이었다. 목욕이 끝나면, 냉장고 속 시원하고 달콤한 딸기 우유를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따라 냉탕에 겁도 없이 발을 들였다가, 그 차가움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온몸에 오소소 닭살이 돋았던 기억,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이마와 콧등 위로 툭 떨어지던 순간의 감각, 그리고 온몸에 퍼지던 딸기 우유의 달콤함은 목욕탕의 냄새와 뒤섞여 내 안에 진하게 각인되어 있다.
할머니 방에 놓인 검은색 미닫이 수납장 한켠에는 늘 박카스 한 상자가 놓여 있었다. 하루라도 빼먹으면 안 될 것처럼 할머니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박카스를 꺼내 마셨다. 어느 초여름 밤, 할머니가 이제 그만 자라며 한참 재미있게 보고 있던 TV를 꺼 버리자, 나는 투덜거리며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말했다. "나중에 나 어른되면, 엄마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자동차 사주고 할머니는 박카스 한 병만 사줄 거야" 할머니는 눈을 한 번 흘기고는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 못 이기는 척 다시 TV를 켜 주었고, 나는 히죽 웃었다.
그렇게 목욕탕과 박카스는 할머니의 하루와 내 유년 시절을 잇는 작은 의식으로 남아 있다.
할머니는 이제 박카스를 마시지 않는다. 내 얼굴에 때를 밀어줄 수도 없다. 할머니 몸은 날마다 작아지고, 약속이나 한 듯 모든 기관이 느리고 약해졌다. 세상의 중력을 더는 이겨내기 힘들다는 듯, 넓고 꼿꼿하던 등은 둥글게 굽은 지 오래되었다. 걷다가 가끔 멈춰 서 허리를 펴고 길고 긴 한숨을 내쉬는 할머니를 보면, 내 마음도 조용히 무거워진다.
사과를 좋아하는 할머니 방 한 켠에는 늘 빨간 소쿠리 안에 그보다 더 붉은 사과가 쌓여 있다. 언젠가 사과 껍질을 벗기는 할머니 손의 느리고 조용한 움직임을 보았다. 오랜 세월을 건너온 굵은 뼈 마디와 그것을 감싸는 투명하고 얇은 피부 위로 세월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크고 두툼했던 할머니의 손은 어느새 흐르는 시간을 닮아가고 있었다.
나는 매일 바빴고, 할머니를 자주 잊었다.
가끔 할머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못다 한 말들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또 와. 응?"
다짐이라도 받듯, 말 끝에는 늘 '응?'이 따라붙는다. 일을 끝마치고 돌아온 할머니를 향해 후다닥 달려가 매달리고, 응석을 부리던 나는 그 시절 내 키만큼 작아진 할머니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나 항상 잘 살고 있어. 그러니까 할머니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돼."
내가 시집가는 날에도 할머니는 손으로 내 등을 여러 번 길게 쓸어내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가서 잘 살아. 응?"
돌아오는 주말에는 할머니를 만나러 가야겠다. 세상에서 가장 동그랗고 예쁜 사과를 사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