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자기 운전석에 앉아 있다. 차는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운전을 못하는 나는 그 상황이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꿈속에서도 '아, 빨리 꿈에서 깨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필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보지만, 차는 멈추지 않는다. 핸들을 잡은 두 손은 왼쪽, 오른쪽으로 사정없이 움직인다. 뭘 더 어떻게 해야 하지? 더는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딘가에 쾅하고 충돌하기 직전에 나는 꿈에서 깬다.
나는 이 강렬한 꿈을 몇 년에 한 번 꼴로 꾸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주로 걱정거리가 있거나 심리적 압박감을 느낄 때 그렇다. 장소만 바뀔 뿐, 상황은 비슷하게 전개된다. 예전에는 끝없이 뻗은 고속도로였고, 이번엔 울퉁불퉁한 비탈길이다.
그 꿈은 아마도 현재의 내 생활을 대변하는 것 같다. 요즘 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곳에서 시작했다. 내 가족을 제외하면 요즘 나를 둘러싼 모든 게 낯설다. 공기도, 풍경도, 사람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나를 짓누르는 걱정은 대개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예상치 못한 변수들에 대한 것이다.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더 많은 변수를 동반한다. 난 여전히 그 녀석들이 버겁다. 칼라하리 사막의 미어캣처럼 두 발로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혹시 발생할지 모를 일에 대비한다. 그것이 언제,어떤 방식으로 나를 덮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난 인생을 사는 일이 남들보다 더 피곤한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원래부터 신호등 없는 교차로 같은 것인데 말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눈에 검은 천을 두른 채 상자에 더듬더듬 손을 넣어, 사물의 정체를 맞추는 게임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손길은 대부분 매우 조심스럽고, 불안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공포스럽고, 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니까. 나에게 불확실성은 그 상자와 같다. 그 속에 있는 건 물컹하고 미끈한 뱀일 수도 있고, 날카롭게 찌르는 뾰족한 물건일 수도, 부드러운 인형일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른다. 안대를 풀기 전까지는. 정체를 알고 나서야 '아 이거였구나' 하며 허탈한 웃음을 짓게 될 뿐이다.
어느 정도 살다 보니 두려움에 대한 임계점이 조금은 높아졌다. 일부러 나를 낯선 환경에 노출시키며 셀프 훈련을 해 보기도 한다. 부딪혀 보면 생각보다 별 거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나에게 알려 주고 싶어서다. 두려움에 대한 맷집을 키우는 거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에도 '처음'이 주는 기억과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방패 삼아 부딪혀 보기로 했다. 매번 가보지 않은 길 앞에서 갈등하고 주저하지만, 결국 내 발걸음은 그 길로 향한다.
이미 운전대는 잡았고,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어들 타이밍을 놓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멈추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길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피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