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천생연분은 나만이 아니었다.

남편이 와이프복이 좋다고요?

by grey수
남편이 와이프 복이 좋다고요?


신년운세를 보러 간 철학관에서 남편이 와이프 복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나왔다. 무언가 손해 본 듯한 느낌은 매운 음식을 확 당기게 만들었다. 집에 와 입속으로는 매운 것이 들어가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이 남자가 무엇을 그리 덕 보고 살았는지 빠른 속도로 리스트업 하기 시작했다.


나는 선봐서 3개월 만에 결혼했다. 정확히는 100일 좀 넘어서. 독립하고는 싶은데 결혼이 가장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방법 같아서 선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 선본 남자와 결혼을 훅 해버렸다. 체크리스트가 하루 20개 넘는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한 나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결혼해서 큰 우환은 없었지만 역시나 관계에서 힘들었다. 시어머니는 자상했던 둘째 아들이 장가를 가자 상실감 그 이상을 며느리가 채워주기를 바라셨다. 콩쥐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못하면 그 질책이 둔탁하지만 울림 큰 힘듬이었다. 효자 남편은 강한 어머니를 잘 버틸 며느라기가 필요했던 것일까. 그렇게 10년이 흐르자 시어머니는 나를 좀 받아들이고 인정하셨다. 최전방 군대 이야기 같은 K며느라기 스토리 정도 되어야 와이프복 좋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노 땡큐고 울트라 반사다. 도대체 왜 나는 남편의 좋은 복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야 하는 팔자라는 말 인가. 어느덧 와이프 복에는 희생코드가 박혀 버렸다.





그 이후 철학관에 가지는 않았지만 사주와의 끈은 이어졌다. 인생의 답답함 끝에 명리학을 배우고 스스로 사주를 보기 시작할 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자신과 남편 사주를 봐 달라 했다. 공부가 길지 않아서 낯선 사람은 어렵지만, 오랜 친구의 사주풀이는 배경지식 덕분에 덜 어려웠다. 친구 사주는 예상대로 야망 있고 노력하며 사는 사주 구성이었다. 배우자, 자식 운도 괜찮았다. 다만 생각보다 외로운 사주고 친구가 말을 아꼈던 친정과의 힘듦이 컸구나 싶어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친구 남편의 사주였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헉, 하는 소리를 감추기 위해 괜한 기침을 해야 했다. 그간 친구를 통해 들어왔던 남편과 사주의 주인공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알던 대로 선한 기질을 가진 건 팩트, 하지만 그 남자는 배우자 복이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배우자로 인해 힘들게 살아갈 사주팔자라는 의미다. 그래 맞다. 이 남자를 평생 힘들게 할 그 배우자가 앞에 앉은 내 친구다. 이제 공은 나에게 넘어왔다. 컴퓨터 하드 돌아가는 소리처럼 머리 급히 돌리는 소리가 들렸을 것 같다.


“다 좋아. 둘이 천생연분이니 이렇게 라도 맞추며 사네. 딴 남자 만났음 진작 헤어졌겠어.”

그리고 미련을 싹 없애도록 모성애 자극하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남편 아니면 금쪽같은 네 아들 못 만났잖아.”

족집게 같은 말이지만 사주를 떠나 뻔한 인생사 잔소리다.




배우자 복이 없는 남편이라는 말을 들으면 내 친구가 느낄 억울함은 너무 클 것 같았다. 사실 친구는 스스로 많은 것을 맞춰주고 살아간다 생각하기에 말해줘도 못 받아들일 것 같았다. 반대로, 사주 그대로 해석해 주면 미안한 마음에 남편에 대한 분노를 거둘 수 있을까 싶었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 친구가 다행스럽게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돈은 도대체 언제 벌리냐며.


이후 난 시간 두껍게 반성했다. 그동안 친구의 하소연 들으며, 남편분의 흉 레퍼토리에 매번 처음 듣는 듯한 공감과 좋아요로 반응했건만. 멀쩡한 남자를 더 나쁜 남편으로 만든 공범자가 되어 버렸다. 분노의 하소연들은 사실 ‘친구의 시각’이었던 것이다. 친구 남편분은 결혼으로 인생이 꼬였음을 느끼며 고생 많이 하고 있던 것이다. 안 맞는 내 친구를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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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우자에게 좋지 않은 상대라는 것을 듣게 되면, 어떤 생각을 갖고 옆에 머물러야 덜 괴로울까. 하필 내가 있어 상대를 힘들게 만든다는 것은,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일 것 같다. 마치 부모가 널 괜히 낳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내 남편이 와이프복이 좋다는 것이 얼마다 다행스러운 일인지 희생코드 낙인찍었던 생각을 간사하게 뒤집어본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쑥 크는 씁쓸한 배움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배우자 운이 안 좋은 사람은 상대가 아무리 잘해줘도 배우자에게 감사하다고 못 느끼고 힘들어한다는 내용이었다. 힘듦 또한 객관성을 떠나 받아들이는 사람의 시각이란 뜻이다. 뭘 해줘도 와이프가 본인을 힘들게 한다고 느끼는 것은 친구 남편의 시각이고 결국은 어떤 배우자를 만나도 배우자가 본인을 힘들게 한다고만 느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철학관을 가면 듣는 얘기가 ‘혼자 살아야 한다’, ‘결혼 늦게 하라’는 말이다. 내 친구 억울 하겠다. 뭘 해줘도 불만스러운 남편 옆에서 살아감은 힘든 당사자보다 더 까맣게 슬플 것 같았다. 보람과 희망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가. 그것도 마주 바라봐야 하는 부부의 관계에서.




철학관에서 와이프복이 좋다고 한 얘기를 남편 한데 생색내며 말해줬다.

당신이 다 내덕으로 잘 사는 것이라고. 그런데 갑자기 똑똑해진 남편이 한마디 물었다.


"그러면 너 아니고 딴 여자랑 결혼했어도, 잘 사는 거 아냐?"










사진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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