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철학관 투어 전문 입니다만...
여기도 기숙사 보내래. 다른 철학관 가봐야겠어.
아이 친구 엄마는 날이 서늘한데도 나이에 맞지 않게 아아를 씹으며 말한다. 저 말에는 나의 공감과 좋아요를 원한다는 뜻이 묻어있지만 그랬구나 라며 거리를 두는 말을 뱉어본다.
아이 키우다 보면 엄마들끼리도 친구가 된다. 나이는 다 다르지만 애들 5학년이면 엄마도 나이 불문하고 5학년 수준이다. 그래서 친구가 될 수 있다. 이 엄마 둘째와 우리 큰애가 친구이고 이 집 첫째는 중3이 된다. 나는 아직 그 세계를 모르지만 대입만큼 고입도 중요해진 시대라는 말을 들었다.
아이가 중3이 되며 이 엄마는 유명하다는 철학관을 투어 하기 시작했다. 예약도 3개월 6개월 이후가 허다하고 특히 유명한 곳은 돈도 너무 비싸다. 종이에 상세하게 써주는 할머니도 있고, 다양한 입시 책자를 쫙 펼쳐 놓는 입시전문 철학관도 있다. 어디서 알아냈는지 강남에 유명하다는 철학관들은 기가 막히게 잘 찾아다닌다. 그리고 다녀와서 나에게 커피 마시자는 말을 한다.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명리학을 공부하고 주변 사람들 임상이 필요했다. 나는 사주를 통해 MBTI처럼 성향 분석하는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사주를 알고 그 사람을 만나면서 관찰하는 것이 나름의 명리 공부 방법이다. 이 엄마도 친한 지인이기 때문에 나에게 가족 사주를 알려줬다. 그래서 가끔 남편, 아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 그들의 입장에서 상황을 해석해 줬던 것이 이 집 평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엄마 마음의 평화에 도움이 되나 보다. 나에게 자꾸 말하는 것 보면.
학교 진학을 위한 철학관 투어 후 그 엄마가 나에게 리뷰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제 갔던 철학관에서 원하는 3개 학교 중에 집에서 가장 먼 곳 한 군데를 찍어 줬는데 왜 그런 것 같아? 혹시 동쪽 방향이 아이에게 좋아서 그런가? 너무 멀긴 한데 좋다면 보내야 할까?
다른 철학관에서 애가 내년부터 공부를 안 할 테니 올해 바짝 시켜야 한다고 하는데, 갑자기 공부를 안 한다는 게 여자친구 사귄다는 말이지? 안 되겠어. 남자 고등학교 보내야겠어.
자꾸 기숙사 고등학교 보내라고 하는데 우리 애가 아침에 못 일어나거든. 내가 깨워줘야 하는데 어떻게 기숙사를 보내. 기숙사 학교인데 통학을 시키면 같은 효과가 있으려나?
어렵다. 이 엄마 전화가 무섭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내가 이 가족을 통해 배운 것들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며 약속시간을 잡아본다. 애들 하교시간 근처로 해서 스몰사이즈 마시며 들을 수 있도록.
이 집 큰 아이는 겉으로는 리더십 있고 강해 보이지만, 속이 너무 여린 아이다. 그리고 사주 구성상 엄마의 사랑을 바라면서도 엄마가 주는 사랑에 아이 스스로가 상처받고 아파하는 관계이다. 물론 이 엄마가 의도해서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포장으로 준 것이다. 하지만 받는 아이는 겉으로 사랑이라 기쁘게 받지만 뜯어보면 결국 남는 것은 상처라 혼자 아파한다. 사랑을 준거라 굳게 믿고 있는 엄마한테 왜 상처 주냐 따지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이 아이는.
조선시대 옛말 같은 군대에서 배 아프면 배에 빨간 소독약 발라준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사춘기라는 병명은 아이의 아픔과 진심을 사춘기라는 처방과 함께 덮어 버리는 아주 위험한 진단명이라 생각한다. 사춘기라는 진단이 나오는 순간 배에 빨간 소독약 발라주는 행동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사춘기의 문제가 아닌 아이의 외침인 것을. 이 엄마는 아이가 못 된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보니 사춘기가 심하게 왔다고 말했다. 살이 찌면 허리가 아프니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좋겠다는 엄마 말에 ‘내가 아는 아줌마 중에 엄마가 젤 뚱뚱한 거 알죠?’라는 말로 응대하고, 집을 나가 버리겠다는 등의 협박을 하는 아들 말에 이 엄마는 너무 아파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아이가 더 아프다. 사랑해 달라는 외침이다. 특히 동생보다 자기를…
때로는 부모가 사랑을 주는 것보다 상처를 덜 주는 것이 더 현실적인 사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 집 아들과 엄마는 떨어져 있어야 서로 덜 상처 준다. 그래서 많은 철학관에서 이 엄마에게 아이 상처 주지 말고 떨어져 있으라는 말을 돌려서 집에서 먼 학교, 기숙사 등을 추천한 것이다. 그 학교가 최선이라서가 아니라 최악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새삼 그동안 들렸다는 철학관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한 곳들이 아니라, 해야 할 말을 해주는 곳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들을 마음이 없다. 원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이 엄마는 철학관 Shopper를 할 것이다. 어느 날 이 엄마 입에서 별점 5점 리뷰가 나오는 그 철학관은 피해야 할 곳이지 않을까. 손님 또 오게 하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곳 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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