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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Dec 19. 2023

덕분에 잠깐이라도 멈춥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지금도 답하지 못한다.

   상급학교에 모두 진학하니 나도 진학했고, 젊음이 아까워 가기 싫은 군대도 의무이기에 가야 했다. 남들 다하는 결혼도 했다. 직장을 갖고 승진을 위해 노력했다. 모두 경쟁이었던 거다.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도 궁색하다. 그냥 열심히 살아온 거다. 딱히, 남편으로, 아빠로, 직장인으로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봉급 받아 저축해서 집을 사고, 차를 사고 뭐 그렇게 살아온 게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 가도 알지 못한다. 그저 하나의 부품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목적과 방법이 교과서에 없었고, 배운 바도 없다.     



   『소유냐 존재냐』를 읽으며 다른 철학 서적을 읽었던 때와 많이 다른 기분을 느낀다. 몇 권 안 되는 읽어 본 철학 서적은 재미없고, 특히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는 읽기 쉽지 않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과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특별한 눈을 가졌고, 그 눈으로 해석한 이 세상의 내 삶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나는 수용할 수밖에 없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무한한 진보와 위대한 약속’(자연의 지배, 물질적 풍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방해받지 않는 개인적 자유 등 - 에리히 프롬도 서구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갖고 있다)을 이미 이룬 것처럼 보이나, 개인적 이기주의의 추구, 인간의 탐욕, 자연과 적대적 관계 등이 우리를 곧 좌절시킬 거로 예측한다.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를 풀고,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윤리, 자연에 대한 태도와 같은 인간의 가치와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도 당장 치러야 할 희생이 두려워 다가올 재난을 알면서도 막으려 노력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시, 어법, 용어로 소유와 존재의 차이를 쉽게 구별해 주고, 학습, 기억, 대화, 독서, 권위의 행사, 지식의 소유와 인식, 신념, 사랑과 같은 일상 경험에서 소유와 존재를 비교해 준다. 구신약 성서와 독일 신비주의 사상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통해 소유와 존재 양식을 이해하게 돕는다.     

두 가지 생존 양식의 기본적 차이에 대한 분석하고, 소유양식에 따라 살아온 삶을 내던지고, 존재 양식에 따라 삶을 살라한다. 몇 가지 조건(p.224)을 지키도록 하면 인간의 성격은 변할 수 있다고 본다.   


   소유양식이란 무엇인가? 에서

   소유양식이란 내가 내 재산을 어디서 어떻게 벌었느냐또 내가 그 재산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나 자신의 문제일 뿐 누구도 상관할 바가 아니다내가 법을 어기지 않는 한내 권리는 제한받지 않으며 절대적이다라는 원리에 따라 사는 것이다.

   현대 인간은 사유재산, 이익, 힘을 만들고 유지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므로 다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본질에서 내가 어떤 물건을 가지고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은 사는 과정에서 한순간에 불과하다.

   소유양식과 관련하여 “언어가 소유지향을 강화한다.”, “각자의 몫이 타인의 몫과 아주 똑같아야 한다는 의미의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강한 소유지향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소유양식에 따라 산다는 것은 인간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불행을 예고한다.     

 

   존재 양식이란 무엇인가에서

   독립, 자유, 비판적 이성이 전제된 삶이 존재 양식이다. 존재 양식은 능동적인 것으로 자기의 인간적인 힘을 생산적으로 사용한다는 내면적 능동성을 의미한다. 능동성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변화를 낳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의도적 행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존재 양식이란 주고공유하고 희생하려는 의지다이와 같은 존재 양식에 따라 살아야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전하는 소유와 존재의 새로운 측면 몇 가지를 옮겨 본다.

모든 새로운 발걸음은 실패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그토록 자유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소유에 의한 안정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이상을 가진 사람들,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전진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찬양한다.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버리고, 전진하고, 불확실한 것을 버텨내는 생활 태도가 불가능하며 영웅만이 가능하다고 믿어버린다. 영웅은 우상이 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그들에게 넘겨주고 우리 자신은 지금 있는 곳에 머문다. --- “우리는 영웅이 아니므로.”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험으로부터 생기는 걱정과 불안은 ‘존재 양식’에는 없다. 소유는 사용 때문에 감소하는 어떤 것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존재는 실천 때문에 성장한다. 탐욕은 소유지향의 당연한 결과다.

기쁨은 소유를 포기한 결과이며 슬픔은 소유물에 집착하는 자가 맛보는 기분이다. 진정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생명에 집착하지 않는 것, 생명을 소유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은 우리 곁에 없으며, 죽음이 닥쳐왔을 때는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에 죽음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 소유양식 속에 사는 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나 존재 양식 속에서 산다면 그렇지 않다. 삶을 긍정한다. 존재 양식은 지금, 여기에만 존재한다. 소유양식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만 존재한다.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사회에서 에리히 프롬은 “부처, 에크하르트, 마르크스, 슈바이처의 사상에는 소유지향을 포기하라는 철저한 요청, 완전한 독립성의 주장, 형이상학적 회의론, 신이 없는 종교성, 동정과 인간적 연대의식에 의한 사회적 능동성을 요청하는 사상적 유사점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가 기대하는 새로운 사회는 경제적으로 건전한 소비가 이루어지고, 국가는 건강한 소비 규범을 확립하는 것이다. ‘충분한 정보와 자신의 결정이 효과를 가진다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책임 있는 참여가 이루어져야 하고 관료제적 운영이 인도주의적으로 대치돼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 한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소유양식에 푹 빠져 있는 인간과 사회에게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 산업광고와 정치선전에서 모든 세뇌적 방법 금지

- 풍요로운 국민과 가난한 국민의 격차 줄이기

- 연간 보증 수입을 보장해 주는 시스템

- 가부장제로부터의 여성 해방

- 정부, 정치가, 국민에게 문제 해결을 조언할 수 있는 협의체 설립 운영

- 정보를 효과적으로 보급하는 체제 확립

- 과학적 연구는 산업 분야와 방위에서 분리

- 핵무기 폐기  


에리히 프롬이 던진 화두가 이성으로 판단할 때 모두 옳다고 하지만, 소유를 버리기 어렵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끄덕이고 잠깐씩이라도 멈출 수 있음은 다행이다.      


P.S. 2015년 6월 27일 오후 6:09에 쓴 기록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grhill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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