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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Jan 07. 2024

우리 집 거실에 TV와 소파는 없다

서재에 살다

 소파를 사면 창밖으로 던지겠다는 말을 믿고, 내 뜻을 따라 30년 넘게 함께 사는 아내가 양보한 덕분이다. 


   가끔 집에서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조선조 양반가옥이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돼 있고, 사랑채는 바깥양반만의 생활공간이었음을 부러워한다.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는 여자이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먼로가 글을 통해 자신만의 창작 공간이 필요했듯이, 나도 나만의 공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고 있다. 몇 년 전 강의를 듣다가 연수 강사인 건축가에게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나만의 공간을 꾸밀 방도를 물었더니만 답을 하지 않더라. 그가 나처럼 개인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요즘의 주거 공간인 아파트에서 사랑채와 같은 공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답을 하지 않았으리라 추측한다.

   나만의 공간인 사랑채를 바라는 것은 책을 쌓아두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때로는 바깥바람을 들이고, 비가 오면 창문을 열어 빗소리와 흙내음도 들어오게 하고, 흡연도 편안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노래방이나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사랑채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다. 아파트란 공간의 폐쇄적 개방성과 요즘 남자의 꼬락서니는 여자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인지라 사랑채만 있다면 불러들일 친구들을 상상 속에서 만난다.



   내가 꿈꾸는 사랑채를 조선 지식인들은 어떻게 꾸미고 살았을까 궁금한데 마침 사들인 신간이 『서재에 살다』로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은이 박상철은 수경실(修綆室;긴 두레박줄)이라는 서재를 갖고 있고 19세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정조 치세인 이때를 조선의 쇠퇴기가 아니라 다양성의 문화가 싹트고 꽃피던 시기로 본다. 동국대 황태연 교수의 SERICEO 특강과 『공자와 세계』에서도 같은 시각을 볼 수 있다.

   북학과 연행이라는 키워드로 19세기를 바라보며 이와 관련된 학자, 역관, 여항 지식인(벼슬을 하지 않는 일반 백성, 여염의 사람들)들의 책사랑, 독서, 시서화, 서재 만들기를 소개한다.     


   하나는 정조대에 들어서 임란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들을 찾아내 그들의 사적을 책으로 엮었고, 충무공 이순신의 문집이 제대로 정리되어 간행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정조는 강희제와 건륭제로부터 배우고 북학의 길을 열었으며 활자와 출판으로 조선을 깨웠다. 홍재는 정조의 서재다.

   홍대용은 북경 유리창에서 중국 지식인(엄성 등)을 만나 교유하였으며 우정을 나눴다. 박지원은 열하일기로 세상을 흔들었고(고문이 아닌 탓에), 돈을 꾸는 편지글과 ‘양주학(官, 富, 仙으로 통칭되는 인간의 욕망)은 없습니다’에서 가난해도 해학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간서치 이덕무에 관한 이야기도 책 병풍, 책 이불로 꾸며진 서재를 팔분당으로 소개한다.

   높은 관직에 나가지 못했으나 가장 많은 내사본을 소장했던 유득공은 중국 한자로부터 조선의 문봉이라 평가받고, 조선의 역사를 알리고, 연경에서는 '이십일도회고시'는 인기가 상한가를 쳤다. 그는 정조로부터 수많은 책을 받았고 유일무이하게 내사본의 목록도 만들었다.     

   이외에도 개혁사상가로 평가되는 박제가, 조수삼 이이엄(가난한 시인의 서재), 남공철의 이아당(움직이는 글자로 찍은 책), 정약용의 여유당(조심스러운 학자의 삶), 김한태의 자이열재(나를 위한 서재, 우리를 위한 서재), 서형수의 필유당과 서유구의 자연경실(위대한 유산), 심상규의 가성각(19세기 문화를 이끈 경화세족), 신위의 소재(소동파에 미치다), 이정리의 실사구시재(지식인이 현실을 구원하는 방식), 김정희의 보담재완당(스승을 기리는 집), 초의의 일로향실(차로 맺은 인연), 황상의 일속산방(세상에서 제일 작은 은자의 서재), 조희룡의 백이연전전려(백두 개의 벼루가 있는 집), 이조묵이 보소재(창조와 추종 사이), 윤정현의 삼연재(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 이상적의 해린서옥(역관의 의리), 조면호의 자지자부지서옥(언제나 모른다는 것을 안다), 전기소와 유재소의 이초당(아주 특별한 공동 서재)을 그려놓고 있다.    

 



   우리 집 거실에 TV와 소파는 없다. 대신에 신혼 초 벽돌과 송판, 철제 책꽂이를 거쳐 2000년부터 일룸 책꽂이를 거실에 들여놓았고, 책이 많아지면서 책꽂이 세트를 추가하는 방법으로 양면 거실을 채웠다. 창가에 책상과 몇 개의 화분이 있을 뿐이다. 서재는 아직 이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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