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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Jan 26. 2024

산문집 :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김인선의 유고 산문집

   빤스만 입고만 다닐 수 있는 영역에서 자가용으로 20분 거리에서 한가위를 보낸다. 긴 시간 운전하지 않아도 되니 점심을 먹고 나면, 지루함을 느끼는 때가 온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를 읽는다. 김인선 글모음, 유고 산문집이다.    


 

   친구(김대현)의 눈으로 본 작가 김인선의 모습은 이러하다. 일찍 먼 나라로 간 김인선과 친구는 “음악에 대한 기호만큼 그 사람의 계급을 확인시켜 주는 것도 없으며, 자신의 교양과 지적 과시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도 없다”라는 부르디외의 말에 공감한다. 이름을 날리던 <뿌리 깊은 나무>에 삼 년 정도 다녔으나, 다른 잡지사에서 오래 붙어있지 않았는데, 전혀 인스퍼레이션이 없는 곳이라 그러하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는 핀잔에 지식 자체보다 그것을 깨치면서 느끼는 기쁨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 그 ‘깨우침의 기쁨’을 포기하지 못하고 평생 공부만 했다. 김대현의 인격은 에피쿠로스 20 퍼센트와 스토아학파 30 퍼센트, 노자 50 퍼센트로 완성되었는데 비해 김인선은 유물론과 견성과 성 프란체스코로 완성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사라져 가는 것을 사랑했고, 활짝 핀 꽃보다 시들어 말라가는 꽃과 풀을 더 좋아했고, 소멸하는 것의 아름다움, 생명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김대현은 최고의 산문가로 이문구를 꼽았는데, 한자 어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문구에의 문체에 대한 아쉬움을 김인선이 채워주었다고 평가한다. 김인선의 글은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글쓴이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솔직한 글이다.” 공감한다. 하여 읽어가며 밑줄 친 글을 옮겨 다시 읽는다.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의 마음을 알겠더라. 꽃 같지도 않은 것이 그나마 피는 흉내만 조금 내다 말라비틀어져 버린 내 청춘. 지혜는 실패한 자들의 회한. 처자의 마음을 얻고 싶거든 꽃을 바치지 말고 꽃을 들고 다닐지어다. 호박을 볼 적마다, 저렇게 푸근하고 넉살 좋게 사는 것 좀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생각만 그렇지, 실제 사는 속내는 오두방정도 요런 오두방정이 없다. 식물은 새벽녘과 해 질 녘에 잠깐 사람이 알아듣는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내게는 그런 소리를 듣는 사람이 성인이고 성인의 이야기를 듣고서 제가 들은 것처럼 그럴듯하게 거짓부렁을 하는 사람들이 시인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일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고맙지 아니하던가. 어린 참새들이 깝죽대는 이야기. 한 해를 기다렸다가 며칠 몇 주 살자고 나온 놈을 내가 잠깐 즐기자고 꺾어버리는 게 찝찝한 것이다. 봄바람은 죽자고 불어 제치건만, 이제 겨우 손톱만 한 파란 싹 몇 개가 얼굴을 디밀어놓은 정도다. 신성한 밀어 앞에 어찌 차종의 차별이 있으랴. 꽃이 피는 데 무슨 이유가 있던가. 있다 한들 내가 그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 세상에서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모두 꽃처럼 이유 없이 피어나는, 또는 끝까지 피어난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아니던가. 남 좋아죽겠다는데 대고 소금을 뿌리는 성미는 아니다. 그저 누가 벚꽃 운운하며 침을 튀기면 말없이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다. 매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도 병이다. 병도 중병이다. 같은 병도 나 같은 가난뱅이가 걸리면 중병이 된다. 쉬엄쉬엄, 달팽이 시집가듯 손을 놀리시는 것 같은데. 밭이 캔버스라면 농부는 화가지 싶다. 달님 혼자 몰래 산 너머 물레방앗간으로 바람피우러 가는 시각이었다. 조물주의 무한한 선의와 터무니없는 무책임, 인생의 환희와 허망함이 요약된 존재가 개구리.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는 다의성이야말로 자연이 내는 소리의 가장 깊은 매력. 거미의 생계는 팍팍하다. 먹잇감 하나를 구하기 위해 허공에 매달려 며칠씩, 길면 일주일을 굶주리는 게 거미다. 그런 놈들의 밥그릇을 엎어버렸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심했다. 돈벌레처럼 나대지 않고, 하루살이처럼 연민을 자아내지도 않으며, 나방처럼 수선스럽지도, 말벌처럼 음험하지도, 귀뚜라미처럼 뚱딴지같지도, 개미처럼 집요하지도, 노린재처럼 약삭빠르지도, 딱정벌레처럼 갑갑하지도, 흡혈 모기처럼 표독하지도, 파리처럼 외설스럽지도 않다. 인간으로 추정되는 동물들. 임도는 산허리에 끈처럼 둘러 있다. 낙화 위로 저녁의 고요가 쌓이고.      


   어깨 위에 돼지 대가리를 올려놓은 서울 놈. 북어 대가리네 고추는 강남 부잣집 아이처럼 쑥쑥 반듯반듯 자라는데, 우리 아이들은 사흘 굶은 비루먹은 강아지 꼴을 해서 비실비실 땅바닥을 핥고 있다. 생각이 고름이 되어 해골 속에 가득 고이는 증상. 인연과 호오의 차별 없이. 소박과 고졸古拙은 마음에 스미는 바가 있다. 토고한테는 지고, 프랑스와 스위스에게 이기는 게 군자의 길. 아는 이야기 이 할에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팔 할을 섞어 모두 다 제가 잘 아는 이야기인 것처럼 버무려 눙치는 솜씨에. 갈고닦은 화장술. 늙음에 대한 여자들의 투쟁은 언제 보아도 애절하고 조잡하고 장엄하다.      


   개들의 행복 속에는 천국의 일면이 담겨 있다. 하면서 살다가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몰골로 퇴장하려는 야무진 계획이지만. 그 많은 사람이 모두 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는 건 불합리한 가정이다. 높은 곳으로 날아올라 위대한 영적 충만을 맛보게 된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은 찌그러지고.     

 

   짜장면만 파는 세상에 태어나서 청국장 없다고 칭얼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일이 어디 한둘이던가. 산에 낙엽이 그득 쌓인 것처럼, 세상에는 저렇게 허망하게 떨어진 낙엽이 너무나 많다. 할머니의 좋은 점은 마음 놓고 연세를 여쭐 수 있다는 거다. 나는 도대체 왜 여자 나이는 물어보는 게 실례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여자 나이 캐묻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역시 천국이라는 게 딴 세상에 따로 있어야 할 이유가 도무지 없는 것이다. 피조물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공물은 그저 재미있게 사는 거. 길 잃은 개처럼 낯선 뒷골목이나 시장바닥을 어슬렁거리는 게 더 좋았다. 별꼴이 반쪽이다. 그리 모질게 굴었던 것은, 녀석은 봄이 오면 멀리 팔려 가야 할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에 뜬 달 외에는 어떤 위로도 없을 것. 나는 녀석이 나를 좋아하지 않기를 원했다. 겨울이 깊어지면 지난 계절들이 전생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게으르기로 정평이 난 인간이 이런 쓸데없는 짓에는 또 놀라운 끈기와 근면을 발휘한다. 꿈은 개꿈이 진국이다. 해방 후 기독교가 우리 전통문화 말살의 선봉에 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파괴한 우리 전통문화는 일제 사십 년보다 더 크고 깊었습니다. 기독교 앞에서 우리 민족의 숨결이 어린 전통들이 미신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까치의 수다, 종다리나 꾀꼬리의 미성, 오리의 낙천, 까마귀의 오만과 해학, 부엉이 소리는 그런 소리와 얼마나 다른가.      


   ‘사라진 사내’의 그 사내는 정말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궁금하다. 회심곡을 들어봐야겠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는 (주)메디치 미디어에서 2019년 7월 초판을 본문 378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평생을 시멘트벽에 갇혀 산 사람이라면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으리라. 도회지에서 살다가 촌으로 옮겨 살거나, 촌에서 태어나 도회지로 옮겨가 사는 사람이라면 현재와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김인선의 체념이 해맑고, 허풍도 있지만 과하지 않고, 그가 죽고 나온 책이라 더 그의 글을 만날 수 없어 아쉽다. 김인선은 남자다. 책을 사기 전에 여자로 짐작했다. 내 짐작은 맞는 때가 드물다.    

 

P.S. 2019.9.12. (목)에 쓴 글이다. 읽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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