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충덕 Feb 29. 2024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4,500자    학병 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

2018.6.1.(금)에 쓰고 오늘 다시 읽는다.  좋은 책이다. 국민학교를 다닌 연배라면 한국 현대사를 파악하는데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책을 읽고 쓰는 까닭은 책이 하는 말을 요약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기억하여 읽은 책들에서 계통을 세우고 나의 관점을 바로 세우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보기 드문 출판물이다. 김건우가 후기에서 ‘문학은 일반의 통념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라고 밝힌 국문학자가 쓴 역사책이다. 유신 이후 현대사는 경험으로 일부라도 안다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부터 유신 이전까지는 교과서에서 배운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에 힘입은 해방, 한국전쟁,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승만의 독재와 부패, 4.19. 5.16. 박정희, 경제성장, 불균형, 군부독재와 민주화 등의 키워드 외에는 아는 게 없던 차에 만난 연구결과물이다.   

   



    20개의 테마로 꾸민 책은 인물 중심으로 풀어간 역사서라서 평전 냄새를 풍긴다. ‘해방된 청년들,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로 서장을 시작한다. 테마 1. ‘학병 세대가 서 있던 자리’, 테마 2. ‘장준하, 우익 반공주의에서 통일 지상주의로’는 김준엽과 장준하의 평전이다. 학병으로 일제에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중국 임시정부로 가 광복군이 되고, 미군의 지원을 받아 한반도 진입작전에 참여하기로 되었다가 해방을 맞는다. 두 사람은 테마 3. ‘서북 지역주의와 도산 안창호’, 테마 4. ‘월남 지식인들, 《사상계》를 만들다’, 테마 5. ‘《사상계》그룹, 근대화의 모델을 제시하다’, 테마 6. ‘제2공화국과 국토건설본부의 구상’, 테마 7. ‘《사상계》 그룹의 와해와 대학의 변화’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테마 3. ‘서북 지역주의와 도산 안창호’에서 한 가지를 확인하고, 안창호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조선왕조 내내 차별받던 서북지역(평안도)에 구한말부터 미국 선교사의 의료와 교육활동을 통한 미국화가 진행되었고, 월남한 이후 반공, 친미, 보수 세력의 뿌리가 된다. 서북지역 청년들이 제주 4.3 사건에서 행사한 폭력의 뿌리를 본다. 안창호는 “먼저 기호 사람들을 제거하고 난 후에 독립해야 합니다.”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언사로 서북파와 기호파의 갈등을 보였다.     


   테마 4. ‘월남 지식인들, 《사상계》를 만들다’, 테마 5.‘ 《사상계》 그룹, 근대화의 모델을 제시하다’, 테마 6. ‘제2공화국과 국토건설본부의 구상’, 테마 7. ‘《사상계》 그룹의 와해와 대학의 변화’는 월남한 30대 지식인들이 《사상계》라는 잡지를 통해 지식인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고, 1950~1960년대 대한민국의 싱크 탱크 역할을 했음을 다룬다. 장준하, 서영훈, 백낙준 등. 백낙준은 한국인 최초로 예일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 교육 이념의 근간이 된 ‘홍익인간’을 안출하고, 문교부 장관으로 도 마다 국립대를 두는 방식을 시행한다. 사상계사는 진단학회, 국어국문학회, 한국철학회의 학회지를 발행하여 문사철을 아우르는 허브 역할을 했다. 서북 출신에 편중된 사상계 그룹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자유와 민주 사회 건설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품고 최초문학상인 ‘동인문학상’, 중국 근대화를 견인한 《신청년》에 견줄만하다고 자평한 《사상계》, 주한 미 공보원을 통한 로스트의 근대화론(나중에 따로 다룰 것임)을 현실에 적용하는 등 “오늘날에 보이는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들이 기반과 방향을 잡았다”라고 평가할 수 있다. 5.1 6 이후 경제개발계획은 쿠데타 세력이 독자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상식을 확인할 수 있다. 1965년 대학사회가 ‘연구비’를 빌미로 국가 통제에 차례로 편입되면서 대학에 적을 둔 교수들이 《사상계》를 그만두며 와해되었다. 역시 돈이다. 이후 대학에 국가의 감독과 통제가 뿌리를 내린다.      


   테마 8. ‘선우휘, 반공 국가주의와 지역주의 사이에서’는 작가이자 군인이자 기자였던 선우휘를 통해 서북파의 지독한 지역주의를 보여 준다.     


   테마 9. ‘정권 참여 지식인들과 정치참여 논리’는 어용학자의 등장과 활동상을 보인다.     


   테마 10. ‘김교신과 무교회주의 기독교’, 테마 11. ‘유달영의 재건국민운동본부와 덴마크 모델’, 테마 12. ‘오산학교의 무교회주의와 지역공동체’, 테마 13. ‘국가주의 철학에 맞선 류영모와 함석헌’, 테마 14. ‘한신(韓神)을 만든 김재준과 제자들’, 테마 15. ‘통합의 중재자 강원룡’,      


   테마 16. ‘가톨릭의 학병 세대, 김수환과 지학순’에서는 개신교와 가톨릭이 대한민국 건설과정에 끼친 막대한 영향을 근거를 들어 분석한다. 일제강점기 기독교에 영향을 미친 일본인 우치무라 간조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러일전쟁하지 말자, 전쟁의 이익은 강도의 이익이다.”라고 설파한 근대 일본의 지성이었다. 루터의 ‘만인 제사장론’이 무교회주의 바탕에 있다. ‘농심(農心)’과 ‘평생교육’을 남긴 유달영도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았다. 국민학교 다닐 때 덴마크의 그룬트비를 배운 기억의 뿌리가 유달영에게 있었구나. ‘김범부와 박종흥의 국가주의 철학(한때 박종흥의 책을 좋아했다)’에서 화랑도와 신라정신을 끄집어내 애국을 강조하는 국가 이데올로기로 변환하고, 국민교육헌장을 만드는 데는 독일 철학의 영향이 있었다고 밝힌다. 류영모와 함석헌이 국가주의 철학에 저항하는 거멀못의 소임을 해내고.      


   테마 14에서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후까지 기독교의 분파를 설명한다. ‘선교 지역 분할 협정’에 따라 서북지역은 미국 북장로가, 함경도와 간도는 캐나다 장로교회가 선교한 지역이다. 서북지역은 평양 신학교와 미국 북장로교 계열 교회들로 1953년 전국 기독교 총 교세의 삼분의 이에 이르고 이후 예수교장로회(예장)를 형성한다. 함경도와 간도 지역의 교회는 캐나다 연합교회의 지원의 받아 기독교장로회(기장)로 훗날 한신 그룹으로 발전한다. “예장과 기장의 분열은 그 배후에 미국 장로교와 캐나다 연합교회의 노선 차이로 이해될 수도 있다.” “김재준은 해방 공간에서 공산주의를 포괄하는 기독교적 건국이념을 발표하여 나중에 한신을 중심으로 전개될 진보주의 기독교의 씨앗을 뿌렸다.”(p.178) 김재준의 생각은 서북 장로교인들과 색다른 관점인데 해방기 광범위한 중도파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테마 15. 는 WCC(세계교회협의회) 활동으로 박정희가 감히 건드리지 못한 기독교계 거물 강원용 평전에 가깝다. 강원용은 ‘크리스천아카데미’ ‘중간 집단 교육’을 통해 수많은 민주화 활동가를 만들어 냈다.      


   테마 16. 은 김수환과 지학순 평전이다. 평전에서 1962~1965년에 걸쳐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의미를 배운다. 이는 

“세계 가톨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교회가 전통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현대 세계의 변화에 맞춰 쇄신해야 한다는 것, 성직자 중심에서 벗어나 평신도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교회가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미사에서 라틴어 외에 모국어 사용이 허용되고, 김수환과 지학순은 당시 가톨릭의 변화를 한국 상황에 맞게 적용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7.4 남북 공동 성명을 남북한 집권자들의 정권 연장을 위한 권력 정치의 술수라고 정확히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 말을 했다.”는 문장에서 김수환과 저자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음과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의 미련함이 안타깝다현재 정치권이 7.4 공동성명을 보는 시각은 무엇인가?      


   테마 17. 에서 천관우의 ‘반계 유형원 연구’가 학사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에서 인정한다고 한다. 말년에 전두환 취임식에 참석하여 변절했다는 평가는 자신을 지키기 힘들 만큼 가난에 쪼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테마 18. 에서는 민족주의는 1960년대에 들어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통치자의 지배 논리이면서 동시에 그에 대항하는 세력의 저항 논리로 함께 기능한다.

   테마 19. 는 조지훈과 김수영 평전이다.     


   테마 20은 한국 우익의 기원을 밝힌다. 한국의 정통 우익은 김준엽이다친일 하지 않은 학병 세대다. 김준엽이 임시정부 환국 때 돌아오지 않고 중국에 남아 중국을 공부하고, 고대에서 아세아문제연구소를 운영하고 총장으로 역임하며 오늘날 한국의 학계에서 중국 연구는 사실상 김준엽이 기초를 모두 놓았다고 평가한다. 그가 정치에 나서지 않은 것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삶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헌법 개정이 이루어질 때 개정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는 문장 명기를 강력하게 주장하여 관철한 ‘정통 우익’ 다운 역사 감각이 있었단다. 대한민국 설계자들은 친일로부터 자유로웠으나 일본 제국에서 교육받은 세대들이다. 또한, 건국과 전후 국가 재건과정에서 미국이 끼친 절대적 영향력을 생각할 때, 서북지역 월남 지식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대한민국 설계에 큰 비중을 갖고 있었다.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통계로 놀라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방기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극좌와 극우는 ‘한 줌’에 불과했다. 1946년 여름 미 군정청에서 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나라 만들기’의 과제와 관련하여 자본주의 체제를 원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14%(1,189명), 공산주의 체제 선호자가 7%(574명)였음에 비해 사회주의 체제를 바란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70%에 이르는 6,237명이었다고 한다. 이 시기의 대중은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제3 이념으로 이해했던 듯하다.”(P.272)     

   대전대 교수인 김건우가 지은 <대한민국 설계자들>은 느티나무책방에서 2017년 3월 본문 293쪽 분량으로 내놓았고, 2018년 1월에 4쇄를 찍었다. 독자는 무신론자다. 좋은 책을 읽었다. 2018.6.1.(금)에 쓰고 오늘 다시 읽는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