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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Mar 05. 2024

고종시대의 재조명

이태진 지음

고종시대의 재조명



   황태연 교수의 』갑진왜란과 국민전쟁』을 읽고, 구한말의 역사를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웹 검색으로 그간의 연구 성과를 검색한다. 읽는 과정에서 신문기사와 페이스북에서 논란이 있어 저자 이태진을 검색하니 한때 국사편찬위원장이었다고 한다. 보수 정권에서 위원장이기에 진보 정권에서 비난을 받는 듯하다. 보수든 진보든 역사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전박근혜 대통령 시절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왜곡은 명백한 잘못이다. 친일을 극복하지 못한 뉴라이트 역사관도 문제다. 그렇다고 재야 역사학자들의 고대사 연구도 믿고는 싶지만 근거가 공인되지 않아 마음 정하기가 어렵다. 『고종시대의 재조명』도 논란의 대상이다. 내재적 발전을 주장한다는 부정적 인식과 아직도 친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그래서 뉴라이트라는 비판이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종 시대를 재조명한 것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책 한 권을 읽고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사람이 세상을 망치는 것처럼, 읽지도 않고 반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싶지는 않다.      


   저자는 서문에서 “지금 우리에게 구한말의 역사는 반면교사로만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즉 이 시대는 우리 민족사에서 국왕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의 무능과 무기력이 가장 심하게 드러난 때로서, 지도층이 그런 지경이었으니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런데 저자는 늦게 시작한 공부에서 이런 부정적 역사상이 일본 침략주의에 의해 조장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즉 일본은 고종 황제와 대한 제국 정부의 무능과 무기력을 강조하여 망국의 원인을 전적으로 한국의 내적 결함에 돌려 그들의 통치를 정당화하려 했던 것으로 파악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본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등의 침략주의 사관을 극복하는 기초를 다지고자 9편의 논문을 책으로 엮어 『고종시대의 재조명』으로 내놓은 것이다.     

   『고종시대의 재조명』을 읽으며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친 것과는 정반대의 내용들, 혹은 전혀 다루지 않았던 내용을 접하며 황당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도대체 한국 역사학자들은 지금껏 무엇했단 말인가? 아직도 친일파들을 역사에서 제거하지 못한 영향이 이렇게까지 역사에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라는 자괴감이 든다. 독자에게 이런 충격을 준 저자마저도 친일사관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뉴라이트 계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도 한다.

   

   구한말이 쇄국 정책을 펴는 은둔국가라는 인식은 한 아마추어 서양 역사가의 심한 편견과 일본 침략주의 책략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한다. 일본은 대한제국이 광무개혁을 통해 자력으로 근대화의 가능성을 보이자 그대로 두면 한반도 장악(정한론)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그 군사력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제로 침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스러운 사실은 민권운동의 시작으로 알려진 독립협회의 관민공동회, 만민공동회가 일본 공사관이 새로 출범한 대한제국 황제권을 약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독립협회 지도부의 일부 친일분자들을 사주하여 일으킨 소요의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종황제는 유약한 군주가 아니라 동도서기론에 입각한 개화를 추구한 개명군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한다. 동학혁명 당시 청군 출병은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보고 겁을 먹은 국왕이 자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위안스카이가 반청 감정이 거세지는 조선에서 민중을 제압하기 위한 목적과 내정간섭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강요한 것이라 한다. 물론 대한제국의 일부 관료와 죽이 맞아서 한 일긴 하지만. 태극기 제정과정에서 고종은 정조의 군민일체 정치사상을 도안에 담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점을 주장한다. 청의 속국화 정책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고종은 지식과 정보의 수집을 위해 중국 상해로부터 3만여 권의 서적을 사들이고 집옥재라는 고종의 도서관을 만들었다. 1896년 아관파천 후 대한제국 출범을 앞두고 황성 만들기 사업으로 서울의 근대적 도시 개조사업이 처음으로 추진되었고, 황제가 ‘익문사’라는 통신사를 가장하여 비밀 정보기관을 운영한 사실을 밝힌다. 근대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비추어 이 같은 사실들은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중요한 사실들이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 자체가 우리가 일본 침략주의 왜곡의 덫에 단단히 걸려들어 있었다는 반증이라 한다. 고종황제가 무능하고 유약한 군주라는 이미지는 일제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그 결과 해방이 된 시점에서 고종황제는 아버지 대원군과 왕비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나라를 잃은 바보스런 군주가 되었으며, 이 왜곡이 해방 후 지금까지 반세기가 되도록 방치되어 있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고종시대의 재조명』은 서장과 제1부 편견과 오류 비판에서 고종황제의 암약설 비판, 한국은 과연 ‘은둔국’이었던가?, 갑신정변의 허위성(일사 내외; 어서의 허위성), 청군 출병 과정의 진실. 제2부 고종의 국기 제정과 군민일체의 정치이념, 고종의 개화를 위한 신도서 구입사업, 18~19세기 서울의 근대적 도시발달 양상, 대한제국의 서울 황성 만들기-최초의 근대적 도시개조사업, 고종황제의 항일정보기관 익문사의 창설과 경영이라는 주제로 구성된 학술서적이다. 읽기에 쉽지 않다. 딱딱하다.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에서 2000년 8월 초판을 내놓았고, 독자는 2015년 초판 6쇄, 본문 452쪽 분량의 학술서적을 읽은 거다.    



P.S.    2017.10.16.(월)에 쓴 글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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