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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Jun 28. 2024

책의 정신

강창래 지음

   잘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인가? 나는 잘 팔리는 책과 좋은 책은 다르다고 본다. 팔리고 안 팔리고는 시장과 자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걸음 물러나서, 좋은 책과 많이 읽는 책도 다르다고 본다. 좋은 책은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카프카의 말대로 의식을 깨우치게 하든, 지식을 얻든,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독자에게 다양한 관점을 갖게 해 주는 것이 좋은 책이다. 

   페이스북에서 좋은 글(때로는 감춘 슬픔이 보여 안타까운)을 보고 온라인상에서 알게 된 분의 책이다. 이미 그의 글에서 <본성과 양육>,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사 읽었다. 좋은 책을 추천하는 안목을 믿고 그가 2013년에 내놓은 <책의 정신>을 읽는다. <책의 정신>은 메타북이다.


"책이란 무엇인가, 책을 읽는 행위는 무엇인가, 책에 담긴 생각의 정체는 무엇인가를 다룬 책"이 메타북이다."라는 말이 글로 남아있다. 쉽게 말하자면 메타북이란 ‘책에 관한 책’이다.     


  졸저 <독서로 말하라>는 독자가 책을 읽으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고, 그 조각들이 모여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 간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실천 기록이다. 이런 독서의 기쁨을 느끼기에 <책의 정신>은 독자에게 좋은 책이다. 저자의 말대로 ‘커피 한잔 마시며 읽어 교양과 상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가 말한 달콤한 독서라면 세 가지를 충족하여야 한다는데, 두 번째 ‘독후감을 끝낼 때’가 책을 제대로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세 번째 ‘공유’의 정신에 공감한다. 첫 번째 ‘즐겁고 행복한 일’은 그렇기도 하고, 배우려 정독할 때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첫째와 둘째는 강유원도 같은 생각이다.     


   첫 번째 이야기, ‘포르노 소설과 프랑스 대혁명’에서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보다 그의 연애 소설 <신 엘로이즈>가 프랑스 대혁명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신 엘로이즈>를 세종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며 세상에서 가장 긴 러브래터란 생각을 한다. “계급과 상관없이 섹스가 ‘호환’되는 것이라면 지배계급 역시 하층민과 같은 종류의 인감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귀족들만이 천부적인 특권을 가진다는 사회제도는 설득력을 잃게 된다.”(p.57) 이런 걸 알고 세계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 나는 교직을 떠났으니 다행이다. 포르노그라피의 역사와 계몽사상가 테레즈, 포르노그라피의 긍정성에 대한 글도 재미있다.     


   두 번째 이야기, ‘아무도 읽지 않은 책’에서는 “어떤 종류의 고전은 원전 읽기보다 그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p.104)고 말한다. 루터의 경직성(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읽으며 칼뱅의 경직성을 본다), 갈릴레오도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 토마스 아퀴나스의 역할, 번역의 중요성, 노이즈가 걸작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을 담았다.     


   세 번째 이야기, ‘고전을 리모델링해드립니다’에서는 고전은 ‘소크라테스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크라테스의 문제’란 소크라테스의 글이 남아있지 않고, 해석이 남아있어 생기는 문제를 말한다. <논어>도 소크라테스의 문제를 지닌다. 고전은 시대에 맞는 것에 편집자의 의도가 담겨 있기 쉬움을 주의하자고 한다. 예로 이 땅에서 ‘악법도 법이다.’가 악용된 사례를 보여 준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보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를 더 읽었으니 다행이다. (알려진 소크라테스는 제자 플라톤의 기록에서 존재하고, 크세노폰이 기록한 소크라테스가 덜 알려졌음을 예로 들었다.) <논어>가 싱겁다는데, <묵자 :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로 그 맛을 알아본다.      


   네 번째 이야기,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는 <책의 정신>에서 약 50% 비중(20개 챕터 중 9개다)으로 다룬다. 본성과 양육이란 역사적 갈등과 교육, 심리학, 사회과학에 미친 영향을 정리한다. 양육이 대세인 시대(사범대학, 82학번)에 배웠으니 저자가 소개한 <본성과 양육>은 정독하며 흩어진 퍼즐을 맞춰보는 기쁨을 느꼈다.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윤리 도덕 교사, 세계사 교사뿐만 아니라)이라면 읽어 보길 바라는 책이다. 베스트셀러였던 리처드 디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나 스티븐 핑거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그리고 <진화 심리학>은 물론 최재천 교수의 번역서인 <통섭>까지도 본성에 치우쳐 있음을 알게 된다. <본성과 양육>을 읽지 않았다면, 앞 네 권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많은 세월이 필요하거나 모르고 지날 수 있다.      


   마지막 이야기, ‘책의 학살, 그 전통의 폭발’은 이야기 제목에 딱 맞는 이야기다. ‘책은 지혜이지만 적의 책은 두려움이다’는 관점에서 책의 학살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21세기에도 진행되는 일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방화는 서구에 의해 윤색됐을 거라는 이야기, 17세기 이전의 문맹과 책의 권력화, 20세기 책의 학살, 도서관은 감옥(강병관의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의 저자도 이렇게 말한다) 일 수 있다는 는 이야기 등을 담았다.      


다섯 가지 이야기가 저자의 혼자 생각을 풀어놓은 것이 아니다. 모두 관련된 책을 읽고, 근거를 대며 쓴 글이다. 너무 늦게 본 것이 아쉽다.     


P.S. 두 번째 책 <별일 없어도 읽습니다>는 강유원의 <책 읽기의 끝과 시작>에서 방향성을 잡았다. <책의 정신> 도 방향성에 도움을 준 책 중 하나다. <책의 정신>은 2022년에 표지를 바뀌 다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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