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태도, 애티튜드에 관한 글이다. 동기는 어떤 일을 하도록 하고 사고와 행동을 유지하게 시킨다. 나아가 성과를 내고 개인이 만족하려면 전념이 필요하다. 누가 시키거나 강요해서 전념할 수 없다. 자발성이 있어야 한다. 또한,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자본이 지배하는 문화에 내재한 (반문화의 관점에서) 돈을 버는 것 말고도 가치 있으니 전념하는 일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가치 있는 일을 성취하고 깊이 있는 삶을 원한다면 무언가에 전념하는 것이 도움이 되고 필요하다는 책이다.
가정용 전화기와 휴대전화의 교체주기를 비교하기는 세상의 변화 속도가 빠름을 인식하는 지표로 삼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정보화 사회라거나 4.0 시대라 하며 창의성을 요구한다. 유연성은 민감성, 융통성, 독창성, 정교성, 조직성과 함께 창의성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창의성을 기르려면 학교는 인지적 유연성을 강조하며 융통성 있게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연성은 한 가지 범주 내에서 다양한 사고를 하는 것이고, 융통성은 여러 범주를 넘나들며 사고하는 것이다. 창의성을 강조하는 일은 세상이 빨리 변하니 변화하는 삶에서 누락되거나 도태되더라도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야만 함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창의성이 앞서게 하기도 하지만, 뒤처지지 않기 위한 조건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살펴보거나 뉴스를 볼 때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나는 누구이고, 자신의 존재 의미가 무엇이며,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지’ 생각하고 학창 생활을 하는 학생이 절반을 넘지 않을 것이다. ‘위기’와 ‘전념’의 개념으로 정체성을 구분한다. ‘위기’란 정체성을 찾으려고 고민하고 노력하는지의 문제이고, ‘전념’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개념과 다르지 않다. 적지 않은 중고생은 삶의 방향감이나 뚜렷한 목표가 없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왜 하는지 모르며 충동적이고, 자존감이 낮은 정체감 혼미의 상태에 있다. 이 중에 많은 학생은 차차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한 후 개인적 정체성을 확립한다. 정체성이 확립되면 삶의 방향이 분명하고, 자존감이 높으며, 현실적이고 안정감 있는 대인관계를 맺는다. 문제는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지 않고 정체성이 확립된 것처럼 행동하는 ‘정체성 유실’ 상태다. 공부에 전념하고 권위에 맹종하고, 사회적 인정 욕구가 강하여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성인기에 들어 뒤늦게 정체성 위기를 경험한다. 소수이지만 ‘전념’만 하는 것은 목표달성이 좌절될 경우 존재 자체를 송두리째 무가치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전념은 필요하고 중요하나 자발성과 가치라는 체로 걸러낸 일에 전념해야 한다.
보통사람이 전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전념이란 제목의 책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전념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는 인간은 후회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떠올려보자. 공감의 정도가 다를 수는 있다. 선택한 길에 대한 자부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없지 않다. 또 하나는 불확실성이다. 불확실함은 존재에 불안을 느끼게 하니 전념하기 어렵다. 전념하기의 핵심은 자신의 시간을 통제함에 있다. “죽음은 삶의 길이를 통제한다. 그러나 삶의 깊이를 통제하는 것은 자신이다”. 끝.
“우리가 이겨야 할 대상은 결코 자연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다. - 레이첼 카슨
P.S. 2022년 어느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