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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김정운 지음

by 노충덕


책이 나왔을 때 ‘시선 끌려는 카피를 뽑았구나.’, ‘그래서 어쩌라고’ 생각하고 흘려보낸다. 또, 『남자의 물건』이라는 책 광고, 저자나 출판사가 선택한 제목으로는 내 지갑을 열지 못했다. 지난해 세종시로 전출 간 선생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에디톨로지』가 재미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도 사서 읽는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저자가 앞에 적은 책 보다 먼저, 2009년에 낸 거다. 사무실 서가를 둘러보다가 저자 김정운을 떠올리며 읽는데, 시대 경험이 비슷하여 손뼉을 치고 웃어가며 읽는다.


초판을 낸 2009년 기준으로 40대 후반 남자의 삶을 성찰하며,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사는가에 대한 답으로 ‘재미있게 살아야’하는 까닭을 문화심리학으로 풀어간다. 프롤로그가 압권이다.

‘가끔’ 후회하는 남편과 ‘아주 가끔’ 만족하는 아내는 ‘문명적 불만’이다!


다섯 CHAPTER가 도발적이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계절이 바뀌면 남자도 생리한다. 도대체 갈수록 재미없는 이유는? 우리는 절대로 지구를 지킬 필요가 없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십니까?’


프롤로그 : 그동안 우리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경제의 문제에 관한 거대 담론에 일방적으로 설득을 강요당하며 살아왔다. 그러는 사이 오직 나만이 책임져야 할, 내 구체적인 실존의 문제는 외면하도록 철저히 학습되었다. 그 결과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공허한 ‘남의 이야기’뿐이다. 삶의 재미는 ‘내 이야기’가 있을 때 생긴다. 건강한 사회는 각자의 ‘내 이야기’가 풍부한 사회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조명은 정서다. 모든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형광등 불빛 아래서 예뻐 보일 여자는 없다. 나도 형광등을 끄련다.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이란 ‘하루 중 기분 좋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에 결정된다.’ 막연하게 좋은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좋은 것은 항상 구체적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내 삶이 즐거워지지 않는다. 국회 여야의 비율이 달라진다고 우리 부부의 체위가 바뀌지 않는다. 정치인을 아무리 욕해도 내 지루한 일상이 바뀌지 않는다. 내가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즐거운 느낌이 반복되는 나만의 리추얼이다.”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피부접촉을 통한 정서적 안정을 추구한다. 스킨십이 박탈된 상태에서 자란 원숭이는 면역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불안 증세를 보이다 일찍 죽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나도 반성하고 스킨십을 자주 해야지. 뇌가 신경을 많이 쓰는 부위는 손과 입술, 혀 순서란다.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통한 의사소통과정이 박탈당하면서 에로티시즘의 왜곡이 나타난다고 앤서니 기든스(영국 사회학자)가 말한다. 봄에 발정하는 수컷처럼 설레어야 옳다. 망각할수록 삶은 만족스러워진다. “내 존재는 내가 즐거워하는 일로 확인되어야 한다.”


은행 비밀번호를 기억하기 쉬운 번호로 정하는 과정을 심리학에서 ‘메타코그니션(Meta-cognition)’,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 한다. 자신을 돌이켜 보는 자기반성 능력의 심리학적 기초가 된다. 사람은 바쁘면 바쁠수록, 정신없으면 정신없을수록, 자기반성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정서를 공유하는 일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이다. 사람은 안 바뀐다. 더 중요한 사실은 자신을 둘러싼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 즉 맥락적 사고는 ’ 재미‘, 더 나아가 성공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삶의 재미는 삶의 맥락을 바꾸는 능력에서 나온다. 사는 게 재미있는 사람만이 맥락에 따라 자신을 바꿀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줄 안다. 관점(Perspective)을 바꾸라는 김정운의 이야기는 역지사지와 같다고 본다.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자신이 상대방의 일방적인 훈계와 계몽의 대상이 되면 자존감은 여지없이 망가진다. 자존감은 인간만의 존재 확인 방식이다. 인간의 기초적인 상호작용 형태인 의사소통은 ‘순서 바꾸기(turn-taking)’와 ‘관점 바꾸기(perspective- taking)’에 의해 유지된다. 하나라도 망가지면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산업 사회에서 가치 투여란 노동시간에 비례해 나온다. 근면과 성실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야기다. 잉여가치론, 새마을 운동, 새벽별 보기 운동, 천리마 운동은 산업 사회의 동일한 철학에 기반을 둔 쌍생아다. MB정부의 얼리 버드론도 마찬가지다. 21세기는 노동시간이 더 이상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 재미와 행복은 21세기 시대정신이다. 문화심리학적 시각에서 사회주의가 망한 이유는 단순하게도 재미없어서란다. 사회주의는 구체적인 감각으로 느껴지는 재미와 행복을 생산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몰락했다고. 세상의 모든 일은 우리가 세운 원칙과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내 모습에서 ‘수컷의 향기’가 사라지게 놔 뒤서는 안 된다. 사회적 지위나 정치적 사건을 기억하는 일이 내 삶의 가치를 높여 주지 않는다. 내 삶에서 기억해야 할, 의미 있는 일들을 꼼꼼히 챙기는 일만이 삶의 속도를 낮춰준다. 내 존재는 내가 좋아하는 일, 재미있는 일로 확인되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존재를 확인하게 되면 내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내 존재를 찾아 헤맬 일은 없다. 가장 훌륭한 노후 대책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공부하는 일이다.

“아내가 고등학교 동창들과 찜질방에 간다면 가능한 한 오래 놀다 오라고 한다. 유럽 여행 가는 것보다 가격은 수십 배 싸고, 그 심리적 효과는 수백 배 높기 때문이다.”


독자가 읽은 김정운의 세 번째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2009년 6월 초판, 본문 300쪽 분량으로 ‘쌤앤파커스’에서 내놓은 거다.


P.S. 2016년 9월 9일


P.S. 2024. 9.27 <별일 없어도 읽습니다> 를 출간한지 석달이 됐다.


P.S. 2024. 9.27 <별일 없어도 읽습니다> 를 출간한지 석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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