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온라인 콘텐츠가 눈과 귀를 쉽게 즐겁게 한다.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고 흥미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한다. 콘텐츠에 의지하면 이미 그날의 가장 좋은 시간은 우리를 떠난 뒤다. 독서는 희망이 되어 버렸다. 희망이되 유튜브에 밀려 간신히 존재하는 희망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은 구실을 찾고, 무엇인가 하고 싶은 사람은 방법을 찾는다.
독서는 정보를 얻거나 지적인 호기심을 해결하는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독서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제품의 설명서를 읽거나 화초를 기르는 방법을 소개한 책을 읽고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책을 본 것일 뿐이다. 독서를 통해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는 일은 독서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한 권의 책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지만, 여러 책에서 그물망처럼 연결된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단단하게 해가는 일이야말로 독서다.
지구 온난화나 환경오염이란 문제 상황을 경험하면서 왜 이런 상황까지 왔는가, 해결책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일은 학자가 할 일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환경 문제의 원인과 과정을 여러 가지 책을 읽어가며 나름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베이컨의 사고방식, 사상과 철학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심각한 환경 문제의 밑바닥에 깔렸다.’는 의미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이런 의미를 독서로 얻기까지 세계사 지식을 토대로 「신기관」, 「종의 기원」, 「에티카」, 「구약성서」, 「침묵의 봄」, 「오래된 미래」 , 「불편한 진실」,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 등을 읽었을 때 가능하다. 이것이 전문서평가의 서평이 존재하는 이유다.
공자의 인식론의 두 기둥인 學而思(경험에서 배우고 생각함)와 闕疑闕殆(의심스러운 것은 비워두고 위태로운 것을 비워 둠)로 思而不學(생각하기만 하고 경험에서 배우지 않는 것)과 不知而作(알지 못하면서 사유로 지어내는 것)이 헛된 것임을 논증하고 있다.
P.S. 책 읽기를 좋아하는 개인 생각이다. 정답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