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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Dec 25. 2024

한강 작가의 소설과 시를 읽는 성탄절

한강 지음

   1,800자로 메모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소설 두 권과 시집을 읽고도 미루고 있었다. 

   독서가로 살면서 한국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처음 받은 작가가 쓴 책을 읽을 수 있음은 큰 기쁨이다. 한강의 모든 책을 섭렵하고 소화하겠다는 다짐은 시와 소설에 가치를 크게 두지 않았던 독서 방향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우선 6권을 들여놓고 읽어 갈 순서를 출간 순으로 정했다. 평론가나 신문 기자가 생각하는 순서와는 다르게 시작했다.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은 이어진다. 네 개의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메모하려 들추어보니 왜 이곳에 붙여 두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옷을 벗고, 고기를 먹지 않는 아내를 남편의 시선에서 본다. 채식만 한다는 것은 의미를 담고 있다. 기존의 삶, 보이지 않는, 드러나지 않지만 누구나 아는 구조, 상하, 명령과 복종, 권위와 순종이라는 수직구조, 체제로 볼 수 있고, 이를 거부, 저항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형부의 시선에서 몽고반점을 가진 처제의 몸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비디오 아티스트였던 형부가 영혜의 몸에 그린 꽃과 후배 J의 행위에 이어진, 처제 형부 간의 섹스로 선을 넘는다.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배어 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이후 남편과 이혼 후 정신병원으로 영혜를 찾아가는 언니의 관점이다. 나무가 되겠다는 영혜를 지켜보는 언니다.     


   트라우마, 육식 거부, 나무가 되겠노라는 영혜의 이야기다. 밀리터리 영화처럼 독립 변인과 종속 변인이 드러나지 않으니, 독자가 찾아내고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쉽지 않다는 거다.     


『희랍어 시간』

   말을 잃어가는 희랍어 수강생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희랍어 남자 강사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적어 줄거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남녀 간 성적 접촉도 없다. 희랍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 간에 동병상련하는 상황에서 순간의 만남만이 있을 뿐이다. 『백 년의 고독』처럼 중첩된 이름은 없지만, 문장을 읽으며 잠시라도 딴생각하고 읽는다면 화자 누구인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화자가 생략된 대본을 읽는 듯하다. 가급적 시간을 내 끊어 읽지 않고 읽어야 할 소설이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어디에서 읽었는지, 들었는지 기억할 수 없어도, ‘괜찮아’란 시만 기억한다. ‘회상’은 아팠던 광주에 관한 기억으로 쓴 시일 거다. ‘여름날을 간다’는 차창 밖의 나무들과 스치는 나의 시선에서 계절의 바뀜을 표현한다. 이렇게 짧게 여름과 가을의 교대 순간을 잡아낸 거다. 

   초판이 2013년이니 10년이 지난 시점에 읽는 시, 한강 작가의 의식이 써간 시를 온전하게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시집 끝에 조연정 님의 해설을 읽지 않고 메모하는 중이다. 메모를 마치고 해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수험생의 시각에서 시를 읽었기 때문이리라. 나의 독서 방향 혹은 넓게 읽겠다는 내 생각조차도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202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라는데 나는 읽고, 아내는 집 안을 청소하고 이십여 개 화분에 물(청소와 물 주기에 나는 조금 거들었을 뿐)을 주고 밥을 짓는다. 차분하게 보낸 만족한 하루다.     


P.S. 내란 행동대장 변호인단이 내일 기자회견을 한다니 말이 안나온다.  공권력은 내란 진압에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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